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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뮤즈 Apr 27. 2022

진짜 감동은 단 한 마디면 충분하다

그 한 마디가 가진 깊은 울림이 세상에 잔잔히 퍼질 때

더 간결하게, 더 강렬하게

 언어로 표현되는 말과 글은 강한 힘이 있다. 그러나 디지털 시대가 나날이 몸집을 키워가는 요즘, 텍스트에서 사진으로, 사진에서 영상으로 표현 수단의 비중이 그 무게를 달리하고 있다. 더 직관적인 표현을 원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긴 글을 싫어한다. 긴 글도 그 분량은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긴 하지만, PC에서 모바일로 주 사용 디바이스가 변화한 만큼 분명 더 짧은 글을 원한다. 그 작은 화면을 가득 채우는 긴 글은 쉴 새 없이 움직이는 엄지손가락을 이기기 힘들다. 그리하여 짧은 메시지의 중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 이제는 유려하고 장황한 텍스트보다는 액기스만 담은 한 마디가 군계일학이 된다. 얼마나 말을 잘하고 글을 잘 쓰냐가 아니라, 얼마나 간결하게 전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줄줄이 읊는 것보다 줄이고 줄이고 또 줄여서 마침내 한 마디만 남아도 그 의미를 명확히 전할 수 있어야 한다.


 훌륭한 한 마디는 빙산의 일각과 같다. 우리는 수면 위로 드러난 메시지를 받아들이지만, 수면 아래로 내려가면 메시지는 더욱 큰 가치를 지니고 있다. 그리고 그 메시지는 우리가 수면 아래 가치까지 생각해주길 바란다.






1. ktx 종점 안내 멘트

 고향에서 서울로 올라오는 길이었다. 저녁 기차를 타고 두 시간 남짓 달렸을 때 나는 무척이나 지쳐 있었다. 어서 집에 가서 눕고 싶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피곤한 탓에 몸도 무거운데 캐리어까지 끌어야 하다니. 게다가 기차에서 내리면 끝인가? 다시 지하철을 타고 꾸역꾸역 집까지 가야 하는데 말이다. 초점 없는 눈은 흔히 말하는 동태눈이었다. 그때 은은한 노랫소리와 함께 종점을 알리는 자동 멘트가 흘러나왔다. 그래 뭐, 내가 귀를 틀어막지 않는 이상 들릴 수밖에 없으니 들어야지. 그때만 해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정신을 번쩍 들게 한 한 마디는 그다음부터였다. 자동 멘트가 끝나면 차장이 직접 전하는 안내멘트가 나온다.


우리 열차는 잠시 후 마지막 역인 청량리역에 도착합니다. 청량리역에서 내리시는 승객 여러분, 가시는 목적지까지 안녕히 가십시오. 감사합니다.


 진짜 사람이 말하는 것이기는 해도 가이드라인은 정해져 있는 듯하다. 보통은 'OO역에서 내리시는 승객 여러분, 안녕히 가십시오.'라고 말한다. 그런데 그 사이에 추가된 '가시는 목적지까지'라는 말이 뇌리에 박혔다. 정말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분명히 느낀 점이 있다. 그가 생각하는 고객 여정은 이 역에서 끝인 게 아니라, 내려서 각자 향하는 최종 목적지까지 계속되는구나. 그곳에 닿을 때까지 고객을 생각하겠다는 마음이 담겨 있는 것 같았다. 여덟 글자에 담은 고객을 생각하는 마음은 깊고 진했다.






2. 오뚜기 제품 속 문구

 지난 설날, 간만에 집에서 배추전이나 부쳐 먹자며 어머니께서 알배추를 사 오셨다. 노릇노릇 구운 배추전을 맛있게 먹은 후 뒷정리를 하러 부엌에 갔다. 그런데 부침가루 유통기한 칸에 숫자와 더불어 어떤 글자가 적혀 있었다.


 

   마디가 뭐라고 가슴이 찡하게 울리는지. 튀김가루에도 적혀 있었는데, 멘트를 보아하니 코로나 극복을 주제로 삼은 듯했다. 하지만  넓은 의미의 응원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신을 응원합니다^^' 처음 봤을  열심히 부침개를 부쳤을 누군가를 응원하는 건가 싶었다. 정말   아닌 멘트 같지만  뻘뻘 흘리며 부침개를 부친 사람이 이것을 본다면 충분히 감동하지 않을까 싶다. 오뚜기는  짧은  마디에 담긴 힘을 알고 있었다. 게다가 머리를   마케팅이라고 느껴지는 것이, 유통기한 표시 부분은 사람들이 반드시   이상  수밖에 없는 위치다.  안에 진심 어린 응원 메시지를 담은 것이다.   글자로 고객의 마음을 건드리는 법을  알고 있다.






3. atm 생일 축하 문구

 atm 기기도 생일을 축하할 줄 안다는 것을 알고 있는가? 은행마다 멘트는 조금씩 다르다. 아래는 모 은행 atm 기기에 뜨는 멘트이다.


OOO님, 고객님의 뜻깊은 생일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사랑과 행복이 가득한 하루 보내시길 바랍니다.


 생일에 굳이 atm을 이용할 일이 몇이나 되겠냐마는 그럼에도 atm은, 아니 은행은 감동을 선사한다. 누군가 생일을 기억해준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기쁘다. 물론 은행에 고스란히 제공한 개인정보 덕분이겠지만 그래도 생일을 맞은 고객을 생각해주는 마음이 느껴진다. 거래가 끝난 후 메인화면으로 돌아가기 전 그 찰나의 순간에 짧지만 강렬한 메시지를 전한다. 짧은 시간이기에 더욱 잔상이 진하게 남는다.






소금 한 꼬집의 맛을 알아봐 주길 바라며

 이 짧은 한 마디들은 특별히 중요한 내용도 아니고, 반드시 알아야 하는 내용도 아니다. 무심코 지나치는 고객이 훨씬 많을 것이다. 그들 딴에는 알아도 그만 몰라도 그만이다. 기업도 바보가 아니고서야 그 사실을 모를 리가 없다. 그럼에도 기업은 고객에게 끊임없이 다가가려 한다. 고객이 거부감을 느끼지 않도록 아주 천천히, 그러나 부지런히. 이제는 멘트를 덜어내고 또 덜어내어 결국 단 몇 글자 남짓한 메시지로 진심을 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부지런히 향해가다 보면 고객도 소금 한 꼬집이 만들어내는 맛 차이를 분명히 알아차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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