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배가본드 Jul 18. 2024

내 생애 단 한 번

12년 전

외국에서 살 때 데리고 살다 잃어버린

루루와 주주입니다


늘 그랬듯 그날도 학교에 갔다가

아직도 집에 들어오지 않고 있습니다

< 1 >


루루와 주주를 처음 만난 것은

2012년 어느 날 아침입니다

뒷마당 구석에

갓 태어난 고양이 넷이 꼼틀거리고 있었습니다


함부로 손을 댔다가 사람 냄새를 묻히면

엄마 고양이가 자기 새끼 아니라고 외면하거나

아예 물어 죽이기도 한다고 들어서

그대로 두었습니다


하지만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고양이 엄마는 나타나지 않았고

3일째 되는 날

넷을 집 안으로 데리고 들어왔습니다


전기담요를 깔고

아기들을 수건으로 싸고

분유 타서 젖병 물리고

그렇게 키웠습니다


아기들은 하루가 다르게 자랐고

가사 도우미 아주머니가 그중 둘을 데려갔고

남은 두 마리가 루루와 주주입니다



< 2 >


루루와 주주가 손바닥만 할 정도로 자라자

이불속에서 안고 잤습니다

그런데 자꾸만 새벽에 저보다 먼저 일어나서

잠든 저의 얼굴을 사냥합니다


고양이 살금 살금 살금

고양이 깡총


그렇게 매일이 사냥당하는 걸로 시작되는데

아침잠이 많은 저는 이걸 감당할 수가 없었고

루루와 주주는 마당으로 쫓겨나는 신세가 됐습니다


루루와 주주를 반려묘로 생각한 적은 없습니다

야생동물의 천국인 그곳에서

엄마 없는 갓난 고양이를 그대로 두면

까마귀에게 얼굴을 쪼아 먹히거나

떠돌이 고양이에게 해코지당했을 게 분명하기에

생존 능력을 가질 때까지만 데리고 있다가

있어야 할 곳으로 보내 주려 했었죠



< 3 >


넉 달이 되었습니다

도마뱀을 잡아옵니다

개구리를 잡아옵니다

두더지를 잡아옵니다

자기보다 작은 건 다 잡아옵니다

동네에 이런 동물도 있었나 싶을 정도로 잡아옵니다


한번은 참새 잡는 걸 봤는데

심각한 표정으로 살금살금 뒤로 몰래 다가가더니

사거리 내에 들어오자 번개같이 도약해서

손으로 목을 눌러 버립니다.


아기라고만 생각했는데

저는 루루와 주주에게 사냥을 가르친 적이 없는데

가르치긴커녕 한밤중에 마당 잔디밭에 서있다가

발뒤꿈치를 사냥당한 적만 많은데

대체 사냥은 어디서 배운 걸까요


그래, 이젠 됐어

그 정도면 됐어


루루와 주주를 산으로 데려갔습니다

아이따족이라는 원주민들이 사는 산속 마을이었습니다


루루야

주주야

잘 지내야 해


산을 내려옵니다

5분쯤 갔을까

멀리서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립니다

발걸음을 멈춥니다

소리는 점점 커집니다

가까워집니다


루루와 주주였습니다


아빠

우릴 두고 가지 말아요



< 4 >

 

그렇게

루루와 주주를 다시 집으로 데려왔습니다


지금은 아닌가 봅니다

아직은 제가 필요한가 봅니다


하루는 바람을 쐬러 나갔는데

천둥 번개가 치며 장대비가 퍼붓습니다

꼼짝없이 물에 빠진 생쥐 신세입니다

열대 지방에서는 가끔 있는 일입니다


저 멀리서 도우미 아주머니가 

우산을 들고 뛰어옵니다

여기 있는 거 어떻게 알았어

그러자 도우미의 대답입니다


Sir가 저쪽으로 갔다고 루루와 주주가 그랬어


그랬습니다

루루와 주주는



< 5 >


또 넉 달이 지났습니다


이젠 학교에 갈 나이가 된 루루와 주주

해가 뜨면 어디론가 사라졌다

해 떨어질 때면 들어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루루와 주주가 들어오지 않습니다

다음 날에도, 다다음 날에도

들어오지 않습니다


저는 그 아이들을 찾지 않았습니다

빌리지 커뮤니티보드에 전단을 붙이지도 않았습니다


올 것이 왔으니까

할 만큼 했으니까

그 아이들이 있을 곳은

여기가 아니니까


임자 잃은 밥그릇 두 개

마당에 남았습니다


사람들은 저에게 물었습니다

어차피 그렇게 방생할 거면 왜 데려다 키웠냐

또는

그렇게 네 돈 들여 키워 놓고 왜 방생하냐


어떻게 물어도 제 답은 같습니다

똑같은 물음이니 답도 똑같지요


그것이 옳은 일이니까




루루와 주주가

지금도 어딘가에서 생존해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그들이 응당 살았어야 할 삶을 찾도록 도와주었음을

보호자라는 이유로 그들의 삶을 가지려 들지 않았음을

루루와 주주가 끝까지 한 번도 몰랐어도 괜찮습니다


어느 관계에서나

주는 쪽이 있고 받는 쪽이 있습니다

늘 저에게 주는 사람이 있습니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처럼 무엇도 아까워하지 않으며

그러면서도 오늘은 무엇을 줄지 매일 생각합니다


제가 맺어 온 무수한 관계들 속에서

저는 늘, 언제나, 매 순간, 받는 입장이었습니다

뭐를 받아도 받는 입장이면 받는 입장에 가까웠지

한 번도 뭔가를 주는 입장이 되어 본 적이 없습니다


루루, 주주와 저의 관계에서

저는 줄곧 주는 입장이었다고 생각해 왔는데

전에는 해 본 적 없던 이 생각 자체를 준 게 루루와 주주이니

이 관계에서도 저는 받는 입장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 저도 누군가에게

주는 입장이 되어 볼 수 있다면

생애 단 한 번이라도 그렇게 될 수 있다면

지금, 바로 지금 그럴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 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힘 빼라, 힘 빼라... 그건 대체 어떻게 하는 건데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