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피피플에게, 회피피플이, 조금 더 너그러워지길
‘회피’는 어딜가도 환영받지 못한다. 할 일을 미룬다는 점과 그게 결코 당사자에게 건강한 습관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회피를 취미 삼는 나도 인정한다. 해야 할 일을 외면하고 도망치는 건 좋지 않다. 알면서도 회피형 인간들이 계속해서 회피하는 이유가 뭘까. 대체 그렇게 피해서 되는 일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 왜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다는 듯이 행동할까. 감히 글 쓰는 회피형 인간으로서 말한다. 회피는 마냥 안 좋은 일이 아니다. 회피에도 장점이 있다.
먼저 아주 잠시지만 스트레스를 받지 않을 수 있다는 점. 할 일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고개를 돌리면 순간 할 일이 내 곁에서 사라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망각은 인간에게 주어진 선물이라고 했던가. 회피하면 이 말에 완벽히 통감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지원금을 받기 위해 신청서를 써야 한다고 치자. 지금 당장 해야 하지만, 작성할 서류가 너무 많고 복잡하기 때문에 잠시 뒤로 미룬다. 그리고 내가 읽고 싶던 책을 꺼내 읽거나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며 산책을 한다. 머리 아프게 신청서를 작성하며 보낼 시간에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다. 이 얼마나 효율적이고 즐거운 시간인지.
신청서 작성 뿐만 아니다. 회피는 우울할 때 가장 효과 있다. 내일모레가 마감인 지원 공고가 있다. 그런데 어제 보았던 면접에서 떨어지고, 그 전에 이력서를 넣었던 많은 회사는 연락이 없어 우울하다. 우울하면 일단 아무것도 하기 싫어진다. 이런 나를 억지로 책상 앞에 앉혀 노트북을 열게 만들어도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 햇빛을 맞으며 걸어도, 카페에 가서 맛있는 음료와 디저트를 먹어도 이 우울함이 가시지 않는다. 아무 것도 나아질 것 같지 않을 때 내가 하는 최종 방법은 일단 드러눕기다.
바다 위를 유영하는 해파리처럼, 밥 위에 퍼져버린 달걀 후라이처럼 내 침대 위에 퍼져서 미동도 하지 않는다. 휴대폰도 보지 않는다. 이 우울함에 그 어떠한 자극도 위험하다. 가끔 이러고 있으면 눈물이 날 때도 있다. 그러면 그냥 운다. 잠이 올 때도 있다. 그러면 잔다. 이 시간에 내가 하고 싶은 걸 마음대로 하게 놔둔다. 그게 아무리 할 일을 외면하고, 자기파괴적일지라도 그냥 냅둔다. 내가 내 스스로를 믿고 다독여주는 방법이다. 이 시간이 아주 오래이지 않을 거라는 믿음과 하고 싶은 대로 해도 괜찮다는 다독임.
얼마가 걸리든 결국 이러고 있는 시간은 끝나기 마련이다. 우울하고 조용한 회피가 지나면 웃기게도 나에게 처한 상황을 마주볼 용기가 생긴다. 나 자신에 회피에 회피에 회피를 더하면 결론은 용기다. 더 불어나지 않는다. 그러면 바로 그 때. 내 할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이다. 이 시기를 놓쳐서는 안된다. 용기가 생긴 나를 꼭 붙잡고 할 일 앞으로 데려가야 한다.
할 일을 하지 않는 사람을 너무 나무라지 않았으면 한다. 물론 앞서 말했듯 회피는 좋지 않고, 그게 습관으로 이어진다면 끔찍하기 때문에 걱정하는 사람들의 반응도 이해한다. 하지만 회피는 그저 피하기 위한 게 아니라 할 일을 바라보기 위해 에너지를 모으는 시간일 수 있다. 할 일을 하지 않는 건 하기 싫어서가 아니라 아직 그 일을 마주할 용기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회피라는 명목하에 잠시 숨을 고르고, 긴장한 나를 다독여주고 난 뒤 다시 고개를 들어 씩씩하게 할 일을 마칠 수 있다. 그러니 피할 수 있는 건 충분히 피해보자. 그러고 난 뒤 내가 피했던 일을 다시 바라보자. 놀랍게도 별 일이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