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디자인과의 전공 수업은 이론도 있지만 실기가 절대적이다. 지금이야 입시도 실기 무시험 전형이 많아지기도 했고 수업에서의 모든 작업 과정이 그래픽 소프트웨어의 활용으로 테크닉의 비중이 커졌지만 예전에는 직접 붓을 들고 하는 소위 '그리는' 과정이 꽤 있었다. '그리기' 과정은 사실 얼마간은 선천적 재질이 필요해서 학생들 간의 실력 편차와 성적 변별이 확실했다. 하지만 그래픽 소프트웨어의 사용이 '그리기'의 기본 도구가 된 지금은, 'A 학생은 이 부분은 P샵의 이런 기능 사용했구나...... 그런데 B학생도 그러네...... 이건 유명 P샵 유투버의 작업을 거의 그대로 때라 했네......' 도구를 동일하게 쓰면서 생기는 스킬의 비슷화(?)라고나 할까? 평가의 난이도가 확 올라가는 시점이다. 이럴 때는 변별력이 확보되는 다른 평가 척도를 찾아야 한다.
결과물의 표현 방법은 나날이 새로워지고 작업 속도는 빨라졌지만 반면에 학생들 간의 디자인 시안 또한 비슷해지는 경우가 다반사라, 그래서 성적에서 가장 중요한 학생 간 변별력의 중요한 요소는 적어도 나에게는 결과물의 질(Quality) 보다는 작업의 태도(Attitute)가 되었다. 결석 안 하고, 과제 제 때 잘 내고, 수업 집중도와 이해도 높고, 더불어 디자인 완성도도 좀 있는...... 그러니까 하라는 대로 말 잘 듣는 학생이 그래서 성적이 좋다.
졸업 후에도 계속 학교로 연락하는 학생은 그래도 나름 사회에 잘 적응하고 있는 학생들인데, 연봉 순위는 대학교 성적 순위와 좀 다르다고 하는 것처럼 사회 적응 순위도 학교 때의 성적과는 좀 다른 양상을 보인다. 물론 성적보다는 태도가 좋았던 학생의 적응도가 훨씬 높다. 성적이 최상위권은 아니지만 예의 바르고, 매사에 자기 의견이 정확하고, 친구들과 원만하게 관계를 유지하는 친구가 사회에서도 잘 적응한다.
교수나 친구, 조교, 학식 아주머니, 매점 직원, 청소 아주머니 등 교내에서 만나는 사람을 대하는 태도도 물론 중요하지만, 사실 진짜 중요한 것은 학생으로서 자신의 수업에 임하는 태도로 보인다. 수업에 대한 진지함, 심각함이다. 교수는 오로지 학교에 있는 동안에만 드러나는 학생의 태도를 가늠할 수 있고 가족이나 친구들, 혹은 타인들과의 다른 관계에서 보이는 학생의 됨됨이는 사실 잘 모른다. 누군가의 아들, 혹은 딸, 누군가의 형이나 언니, 혹은 동생, 누군가의 친구, 누군가의 알바생 , 누군가의 손님으로서의 태도는 잘 모른다는 것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수업에 대한 태도가 좋은 학생은 부모에 대한 태도도, 친구, 교수, 아는 사람, 아는 사람의 아는 사람, 심지어는 개나 고양이, 새 같은 동물에 대한 태도도 좋을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 '집에서 새는 바가지 들에 나가도 샌다.' 뭐 이런 속담들은 그냥 심심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걸 수많은 졸업생들의 데이터베이스를 통해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지금 해야 할 일,
하면 안 되는 일,
해도 되고 하지 않아도 되는 일.
수업에 대한 태도는 사실 대단한 것이 아니다. 출결이 정확하고, 수업 중에 집중하고, 과제에 대한 열의를 다 하는 것 같은, 말하자면 '두말하면 잔소리' 같은 것이어서, 하기 싫어서 안 하는 것이지 할 수 없어서 못 하는 건 아니다. 성적이 안 좋은 학생에게서 유심히 보아야 할 것은 사실 성적 그 자체가 아니고 학생이 가지고 있는 생각의 태도일 경우가 많다. 지금 해야 할 일과, 하면 안 되는 일, 그리고 해도 되고 하지 않아도 되는 일에 대한 진지한 생각이 없고 경계가 모호해서, 결정을 미루고, 번복하고, 아예 무시한다는 것이다. 이 세 가지의 경계를 구분할 수 있다면, 그리고 실천할 수 있다면, 그것이 꼭 좋은 성적과 연결되지는 않더라도 실수를 줄이고, 더불어 모든 관계에서도 긍정적인 결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성적은, 그래서 우리가 알고 있는 머리 좋음이나 똑똑함 보다는 성실함, 영특함의 척도라 생각되는 것이다. 만약 이 대학에서, 이 전공에서, 이 수업에서 좋은 태도를 보이기 힘들다면, 좋은 생각의 태도를 보일 수 있는 다른 분야를 빨리 찾는 것이 좋고 그 결정을 내 책임 아래에 두는 것이 현명하다. 원인은 바로 나에게 있는 것이지 부모님이 돈이 없어서, 부모님이 이 전공으로 가라고 그래서, 성적에 맞는 대학을 찾다 보니까, 누가 그러는데 취업이 잘 된다고 해서, 그래서 오게 되었다는 이유는 입 밖으로 내지 말고 꿀꺽 삼키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