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제프 로트, <엉터리 저울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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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제프 로트는 내가 애정하는 작가이다. 그의 책들은 선명한 줄거리와, 거대한 연민, 외로움과 고독에 달관한 자만이 쓸 수 있는 묘사, 풍성한 색채감 그리고 너무나 전형적인 인물과 현대 소설에서 읽기 힘든 연극적 대사들까지. 심리주의와 사실주의 그 어느 쪽에서도 최상의 경지에 도달한 자의 문장을 읽고 있는 듯해서 행복감이 든다. 또한 한 장, 챕터 별로 읽어가면서 늘 마음을 저미는 문장들을 발견할 수 있는 흔치 않은 작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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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 암울하고 우울한 인물이 등장하지만, 소설의 분위기는 더할 나위 없이 풍자적이며 생동감 넘친다. 그가 자연 묘사나, 팬더믹이나 정치적인 거대한 시류를 연상케 하는 문장들은 한 지방, 한 국가를 축소시키는 간결성을 보인다. 한편 그 표현의 강도와 범위가 넉넉하고 정확해서 주인공의 극도로 고독한 내면을 더 끌어올려주는 역할을 한다. 마치 마술적인 느낌까지 든다. 로트의 책들은 카프카만큼 불멸의 지위를 얻지 못할지언정, 우리가 하루종일 카프카의 책들만 읽을 수 없는 것처럼 반복해서 손이 가 닿는, 그 정도로 인간적이며 그 정도로 충실한 문학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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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도 표제 "엉터리 저울추"가 가지고 있는 은유적, 상징적인 의미와 아이러니를 택한다면 당시 세태를 비판한다는 매우 쉽고 일차원적인 독서가 될 수도 있지만, 주인공 아이벤쉬츠의 본원적인 고독과 서서히 나락으로 미끄러져 내려가는 한 인간의 몰락의 일대기를 따라가면 이 비극의 현대적인 의미를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도덕적 실패와 사랑의 실패, 모든 면에서 실패로 귀결되는 한 인간의 행보를 로트는 경직된 관료주의에 대한 비판만큼이나 공들여 주조하고 있다.
물론 아이벤쉬츠의 또 다른 자아라고 할 수 있는 야틀로브커의 거대한 악의 모습도 흥미를 자아내는데, 무엇보다 팜므파탈인 야틀로브커의 애인 예우페미아의 존재는 아이벤쉬츠의 운명을 파국으로 이끌면서도 동시에 충만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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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조직-법을 집행하는 검정관이라는 상징성과 카프카적 함의, 민중들의 모습, 야틀로브커의 국경주점의 퇴폐적인 풍경, 밑바닥을 전전하는 집시들과 보헤미안들의 모습들을 아주 짧게 스케치하면서도 각 주변 인물들의 소속과 영역들, 그리고 그들의 전형성을 깔끔하게 포착해서 연결해주고 있다.
현대적인 각색을 통해 다른 장르로 발간되더라도 그 함의와 비극성은 일견 더 새로운 충격을 줄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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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트의 대표작은 아니지만 여태 읽었던 로트의 다른 책들에서와 마찬가지로 충만한 인간에 대한 애정과 관찰 그리고 섬세한 묘사와 우리가 흔히 세태라고 하는 것들을 그가 어떤 식으로 표현하고 있는지 주의를 기울인다면 이 짧은 소품의 비극적 의미와 간결한 현대성을 충분히 느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