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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부새 Nov 23. 2021

영화 미나리의 현실화 2

지하수와 용기 그리고 꿈 이야기

<지난 이야기>


상수원 완공 일정이 연기되면서 2023년 전에 집을 지으려면 지하수 대공을 파야하는 상황에 놓인 부부. 견적을 받기 위해 지하수 시공 업체 세 곳에 연락한 뒤 한 업체와 약속을 잡아 욕지도로 향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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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곳의 지하수 업체와 연락을 시도한 결과는 이랬다.


업체 1: "기업이세요, 개인이세요"해서 "개인이요"라고 답하니 "다시 전화드릴게요"하더니 연락 없음

업체2: 그 지역은 바다랑 가까워서 안나올 가능성이 높고, 나온다고 해도 2천만원까지도 들 수 있으니 그다지 추천하지 않는다고 솔직하게 말해주심

업체3: 천만원, 깎아서 900만원에도 허가부터 공사까지 다 해준다고 답사 일정을 잡자고 하심. 답사는 왔다갔다 해야하니 30만원 요구


막연히 2023년까지 손 놓고 기다릴 순 없고, 우리 땅에 물이 나오는지라도 확인은 해야겠더라. 그래서 가장 적극적이었던 업체3 사장님과 답사 약속을 잡았다. 그 주 토요일에 욕지도에 오실 수 있다고해서 우린 금요일에 내려가기로했다.


금요일이 되었다. 금요일 저녁 사장님이 전화오셔서 월요일에 오겠다고 하셨다. 알겠다고 했다. 토요일이 되었다. 일요일에 시간이 되니 일요일에 오겠다고 하셨다. 다시 한번 그렇게 하시라고했다. 어차피 일요일까지 있을거니까.


일요일이 되어 만나기로 한 오후 2시에 맞춰서 엄마, 이모를 데리고 등산을 마치고 점심까지 완료했다. 1시 45분경 전화를 드려봤다.


"오늘 교회가야해서 안갑니다"

네?? 오늘 1시 배 타시고 2시에 도착하셔서 뵙기로한거 아니냐고 ㅠ.ㅠ 했더니 교회도 가야하고.. 오늘가면 면사무소도 닫아서 내일 또 와야하고 그러니 내일 오겠다고 하셨다.


이미 사장님 맞춰 우리 일정도 계속 바꾼건데, 또 월요일에 온다고 하시니 우리는 배 시간도 늦춰야하는 상황이었다. 남편은 이렇게 시간 약속도 안지키시는데, 실제 공사를 하게되면 일정과 견적대로 진행이 안될 수 있다고 다른 업체를 찾자고 했다. 통영에 검색하니 여기 세군데 밖에 안나오던데... 여기 아니면 우리 공사 안해줄 것 같은데... 이런 마음에 "너무 그러지 마... 다들 비슷할거야... 면사무소 내일 또 와야하니까 그러시겠지..." 라고 열심히 정당화를 시도했다.


하지만 남편의 말이 분명히 맞았다. 신뢰하긴 어려웠다. 그래서 사장님에겐 죄송하지만 내일은 저희가 일정을 더 이상 바꾸기가 어렵다. 내일은 안오셔도 되고 필요하면 다시 연락드리겠다고 했고 사장님도 알겠다고 하셔서 좋게 마무리했다.


그리고 월요일이 됐다. 튤립을 심고 섬을 떠날 준비를 하는데 어제 그 사장님께서 전화가 3통이 와있었다. 받아봤더니

"나 지금 욕지도 배 타고 들어가는데예"

 ..??? 욕지도에 왜요? 당황한 사이 사장님은 속사포로 지금 배를 타고 들어가니 1시간 후에 봅시다라고 말씀하셨다. 어제 안오셔도 된다고 말씀드렸는데 어찌 오시냐고 했더니

"어제는 면사무소가 닫으니까 그랬고, 지금 내가 가니까 가서 봅시다."라고 무한 반복...


약속이 안되어있지 않았냐, 우리 배 타고 나가려고한다 얘기했더니 일단 만나서 얘기하자, 그럼 나 혼자 가서 보겠다, 그럼 지금 배 타서 5만원 냈는데 어떡하냐고 계속 막무가내로 나오셨다. 이쯤되니 아 이분이랑은 정말 안되겠구나 싶어서 단호하게 말씀드리고 끝냈는데,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 분과 일했으면 가슴 졸이는 일이 많았겠구나 싶었다.


영화 미나리에서처럼 우리는 오늘 허탕쳤다. 우리 땅에 물이 나오는지, 견적이 얼마나 되는지도 확인하지 못했다. 안그래도 막막한데 유일하게 적극적이던 업체를 남편이 강력하게 반대해서 홧김에 "그럼 지하수 오빠가 알아봐"라고 질렀고 그 이후 이 일의 책임이 우리집 CD (Creative Director)에게로 넘어갔다.


주민분들은 여기 주민들은 몇년을 기다렸는데, 1년 더 기다려서 상수도 되면 그 때 지으라고들 말씀하신다. 사실 그게 맞는 말이기도 하다. 하지만 난 왜 우리집 CD에게 한 군데 더 전화해보라고 질척이고 있을까?


내년에 우리는 미국으로 간다. 우리 둘 다의 삶에 큰 변화가 있을 것이고, 몇년 후엔 아이까지 태어날 것이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 삶이 바빠 잊혀지고, 지금 우리의 용기가 "아 우리 신혼여행 다녀와서 그랬었지" 정도로 회상할 수 있는 젊은 시절의 객기로 기억될까봐 그렇다. 이런 용기와 꿈을 가질 수 있는 시기가 또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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