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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가의 버드나무 Mar 03. 2022

나의 스페인어 학습 경험기

스페인어는 영어와 같이 라틴어 계열의 언어이다. 

두 언어는 어순이나 문법과 어휘마저도 비슷하다. 

따라서 두 언어권의 사람들은 두 언어의 유사성으로 인해 상대의 언어를 쉽게 배울 수 있다. 즉 스페인 사람들은 영어를  영어권 사람들은 스페인어를, 개인차가 있을 수 있으나 비교적 수월하게 습득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인해 나는 스페인 사람들이 영어를 잘할 줄 알았다. 영문학을 전공했어도 여전히 영어 울렁증이 있던 나는 남편이 스페인 주재원으로 발령이 나고 우리 가족 모두 스페인에서 살게 되었을 때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스페인 사람들과 영어로 소통하다 보면 나의 영어실력이 향상될 거란 기대 때문이었다.


그러나 현실은 나의 생각과 달랐다. 스페인어가 영어와 비슷해서 배우기 쉽다고 했지만 스페인에서 영어로 소통하기는 쉽지 않았다. 


스페인은 40 년 동안 프랑코 총통이라는 독재자의 지배를 받았다. 그는 미국을 적대국으로 여겼고 적대국의 언어인 영어교육을 금지하였다. 프랑코 총통이 죽은 후 스페인 교육 당국이 영어교육을 실시하여 2~30 대는 영어로 소통할 수 있었다. 그러나 영어교육을 받지 못한 윗세대와는 영어로 소통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결론은 스페인 대부분의 사람들과 영어로 소통할 수 없으므로 스페인에서 생활하기 위해서는 스페인어를 배워야 한다는 것이었다.


회사에서는 주재원 가족들이 스페인 생활에 적응하기 쉽도록 주재원과 그 부인들을 대상으로 스페인어 강습을 제공했다. 개인적인 이유로 인해 2달 늦게 스페인에 도착한 나는 그만큼 늦게 스페인어 학습에 합류했다. 수업을 쫓아가기 위해서 남다른 노력이 필요했다. 


당시 우리나라에서 문법 위주의 영어교육에서 탈피하고자 하는 여러 움직임이 있었다. 나 또한 영어교사로서 문법 위주의 교육에 회의를 갖고 있던 차라 나의 스페인어 학습에 문법 중심 학습이 아닌 새로운 시도를 적용해 보기로 했다.


우선 외국어 학습을 할 때 내가 배워왔고 한동안 가르치기도 했던 문법 위주의 공부 방식을 탈피하기로 했다.

문법에 대해 지나치게 따지지 않기로 했다. 즉 미주알고주알 문법에 대해 분석하는 습관을 버리기로 했다. 현지 원어민의 말을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의 전략으로 통문장 그대로 외웠다. 어린아이들이 말을 배우는 원리와 똑같이 따라 하고 반복했다.


주방이나 거실 등 시선이 닿기 쉬운 곳에 단어카드를 붙여놓거나 단어장을 들고 다니며 수시로 외웠다. 언어소통 시 정확히 문법을 갖춘 통문장이 아닌 단어만 얘기해도 상대방은 알아듣는다. 


나의 전략은 통했고 두 달 늦게 합류했지만 금방 수업을 따라갈 수 있었다. 또한 시장을 가거나 아이들을 데리러 학교를 오고 가면서 마주치는 스페인 사람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프랑스인들은 자국 언어에 대한 대단한 자부심으로 외국어를 배우지 않는다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그런 풍문은 믿거나 말거나 신빙성은 떨어지지만 일리가 없는 것도 아니었다. 왜냐하면 20여 년 전 당시 프랑스 또한 영어로 소통하기가 쉽지 않은 나라였기 때문이다. 스페인 또한 자신들의 언어에 대한 자부심이 유별났다. 그러나 그들의 자부심은 외국어를 배우지 않는 것이 아닌 자국의 언어를 세계로 전파하고 보급하는 데 힘을 쏟았다.


회사에서 제공하던 스페인어 강습은 재정 문제로 인해 6개월로 끝났다. 우리에게 스페인어를 가르치던 선생님은 무료로 스페인어를 계속해서 배울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알려주었다.


최근 우리나라에도 국제결혼과 더불어 많은 해외이주노동자들로 인해 다문화 가정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따라서 그들을 돕기 위한 다문화 정책이 시행되고 있다. 그 정책 가운데 외국인 이주민을 위한 한국어 교육이 있다.


1998년에서 2000년까지 2 년간 우리 가족이 살았던 스페인에도 국제결혼 및 취업 등으로 많은 외국인들이 거주하고 있었다. 또한 태양의 나라인 스페인에서 햇볕을 즐기면서 여생을 보내고자 하는 은퇴자들이 유럽 각국에서 몰려들었다. 왜냐하면 좋은 날씨뿐 아니라 스페인의 물가가 상대적으로 싸기 때문이었다. 그런 은퇴자들이 장기 체류를 하다 눌러앉기도 했다. 스페인은 이들 외국인에게 무료로 자국의 언어를 가르쳤다. 


인구 2만의 작은 도시인 비토리아 각 자치구마다 각종 학교시설에서 스페인어 수업이 상시로 개설되었다. 외국인을 위한 스페인어 학습자료도 많이 개발되어 있었다. 비디오 및 오디오 어학 자료를 열람할 수 있는 시설도 개방되어 있었다. 본인의 의지와 열정만 있으면 얼마든지 이용할 수 있는 편의 시설과 학습 기회가 제공되었다. 


이를 위해서 스페인 자치 정부는 비용을 지불해야 했다. 

국수주의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예산낭비라고 비난받을 수도 있는 일이다. 


그러므로 이 일은 단지 자국 언어에 대한 자부심만으로 가능한 일이라 할 수 없었다. 그러나 큰 그림에서 본다면 자국민을 위한 일자리 창출에 기여할 수 있다. 또한 외국인들에게 무료 강습을 제공함으로써 스페인에 대한 좋은 인상을 심어줄 수 있다. 풀뿌리 외교로서 이보다 좋은 방법은 없을 듯싶다. 그리고 이런 좋은 인프라는 더 많은 외국인을 스페인으로 불러들여 관광 및 내수 소비를 진작시킬 수도 있다. 


스페인어를 배우는 동안 나는 다른 나라에서 온 많은 외국인들과 교류를 할 수 있었다.


중국인 이민자인 메이 씨를 통해 아이들의 중국어 가정교사인 로즈 씨를 만날 수 있었다. 아일랜드 출신인 20 대 올리브 씨는 아이들의 영어 가정교사가 되었다. 


또한 소련 연방을 비롯해서 공산권이 해체될 때 스페인으로 이주해온 내 또래의 루마니아 여성을 만나기도 했다. 그녀의 말에 의하면 공산주의 정부는 겨울마다 전 국민에게 털외투와 모자를 주민들에게 배급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 옷과 모자를 사용하는 사람은 매우 적었다고 한다. 국가에서 국민들을 위해 공짜로 옷을 나누어 주면 좋을 텐데 왜 그런 현상이 일어났는지 궁금했다. 그 이유는 제품의 품질도 좋지 않고 대부분의 주민들이 똑같은 디자인의 옷을 입고 싶어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인간의 개성과 본능을 도외시한 획일적인 공산주의 정책은 주민들의 마음을 얻지 못했고 결국 실패로 끝났다. 스페인어 학습 기간 중 그 생생한 증언을 공산권 주민의 입을 통해 들었다. 


스페인 정부의 무료교육 덕택에 지속할 수 있었던 스페인어 학습 경험은 나에게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지금은 많이 잊어버렸지만 할리우드 영화 속에 가끔씩 삽입되어 나오는 스페인어를 들으면 반갑다. 그리고 뜻이 이해되니 신기하기만 하다.  


출처 : 인터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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