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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가의 버드나무 Mar 21. 2022

침대 문화에  스며든 개인주의


스페인을 비롯해 유럽을 여행하면서  우리 가족은 주로 캠핑을 했지만 호텔에 투숙할  경우도 있었다.  

우리 가족은  부부와 아이 둘로 이루어진  4 인 가족이다.  

스페인에서  호텔에 묵을 경우  사람의 수와 같은  침대가 있어야 투숙할 수가 있었다. 

즉 4인 가족이니 침대 4 개가 있는 방에 투숙해야 한다. 

그러나  침대 4개가 구비되어 있는 객실이 없을 경우 침대 2 개가 있는 방 2 개를 얻어야 한다.   


가끔  더블  침대 1 개와 싱글 침대 1 개가 구비된  방만 있을 경우  호텔 측은 엑스트라 베드(extra bed)  즉 간이침대를 그 방안에 넣어 주는 조건 아래에서만  투숙할 수 있게  했다.   

이  경우  우리나라는   더블베드에서   세명이 잘 수 있기  때문에   간이침대를 추가하지 않아도 투숙을 허용하는 편이다.  

그러나 서구인들은 그런 방법을 절대 허용하지 않는다.   

엑스트라 베드를  조건으로  내걸고 그에 대한  비용도  첨가한다.  

그들의 이런 태도에 대해 나는 그들 서구인이  상업적으로 철저하게 셈이 빠르며  까다롭게 군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런 원칙은   개개인의 자유와 권리 및  복지를  중시하는 가치관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아직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미성숙하므로 성인인 부모의 보호하에 있어야 하는 어린이지만 하나의  개별적이고 독립된 존재로 인정하는  가치관이  잠자리  문화에도 반영된 듯하다. 


20여 년 전 우리 가족이 살았던  스페인의 아파트 구조는  침실과  거실이  바로 연결되지 않았다.  

침실은  한 구역에 모두 모여 있었다. 

거실은 집안 한가운데 위치하고 있긴 하나  침실을 나오면 우리나라처럼 바로 거실과 연결되지 않았다. 

즉 거실도 하나의 방처럼 문을 통과해 들어갔고  부엌도 하나의 방으로 된 공간에 배치되어 있었다. 

그래서 각각의 공간을 연결하는  복도가 생기게 되었다.


영국 여행을 갔을 때  묵었던 민박집은 이층 집으로 위층에는  침실이 있고 아래층에는  거실과  주방이 있는 구조였다. 

생각건대 유럽인들의 주거 양식의  공통점은 침실이라는  사적인 공간을 거실이라는 가족의 공동생활이나 손님을  맞이할 수 있는 공적인 공간과  분리했다는 점이다.

따라서 서구인의 침실 공간의  배치는 폐쇄적이다.


폐쇄적 구조에선 침실과 거실을 독립된 공간으로 만들기 위해 벽을 세우느라 건축비도 더 들것이다. 

또한  이 두 공간을 연결하는 복도라는  불필요한 공간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건축비도 더 들고  공간 활용도도 낮지만 침실 공간을 폐쇄적인 구조로 만든 이유는 무엇일까? 


가족이라도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중시하는 개인주의 경향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반면 우리나라의 아파트의 거실은 하나의 방이 아니라  각자의 방에서 나오면 바로 마주하게 되는 열린 공간이다.   

거실이  집안 한가운데 위치하고 거실 양측으로  침실이 배치되어 있어 거실과 침실이 바로 연결되는 개방형 구조이다.   

거실에 있는 사람이   바로 침실로 들어갈 수 있고 나올 수 있다.  

접근이 쉬운 만큼 간섭과  지배도 쉬울 수 있다.


학창 시절  사회 시간에 서구문화는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중시하는  개인주의적인  문화이며  동양문화는 공동체를 중시하는  전체주의적인 경향이 있다고 배운 적이 있다.   

스페인에 살면서 또한 유럽을 여행하면서 얻은 경험과 관찰로 볼 때   일리가 있는 이론임을 새삼 느낀다.


우리나라 신문 사회면에  가족 동반 자살 소식이 종종  실린다.  

이는 자녀들을  개별적이고 독립된 인격체로 보기보다 부모에게 종속된 소유물로 보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한국의 피아니스트가  방송에  나와  자신의 어머니에 대해  얘기를 한 적이 있었다.   

그는 자신이  세계적으로  성공하게 된 것은  어머니의 희생과 헌신 덕분이었다. 

그러나  희생과 헌신이 큰만큼 어머니의 집착도 컸고 자신은  어린  시절 피아노를 치면서 그다지 행복하지는 않았다고  술회했다.   


자녀의 개인적인 인격을 존중하는 바탕에서  어머니의 희생과 헌신이  이루어졌다면   그 예술가는  피아노를 치며 행복하지 않았을까.

또한 그 어머니는 자식으로부터  어머니가 자신에게 집착하셨다는 소리를 들었을까.


가정법을  갖고  왈가왈부하기에  어려운 문제이다.  

서구적인  개인주의적 가치관과  전통적 가치관이   혼재하면서  나타난  시행착오이기도 하다.  


사소한 잠자리 문화의 차이를 확대 비약해서 해석한 면이 없지 않겠으나   우리의 무의식 속에는  자녀를  개별적인 인격으로 존중하는 면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무의식이 잠자리  문화에도 나타난 것이다.  


집착과 간섭은  자녀가 부모의 이루지 못한 꿈을 대신 이루어주는 보상의 대상이 될 때  일어난다.

부모로서   나  또한  자녀  존재 그 자체의  존엄성을 존중해주었기보다 나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자녀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힘들게 했음을  고백하며 반성한다. 

또한  자녀를 통해  성장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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