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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혜지 Nov 12. 2024

애 키우면서 하기 좋은 일이라는 것

진짜 있냐고

 브런치에 올린 나의 첫 글이 3만 뷰를 넘었다. 정말 우울하고 슬픈 날 적은 일기 같은 글에 많은 분들이 공감을 해주신 것 같아서 너무 감사했다.

남편은 한편 조금 억울해 보이기도 했다. 자기가 교수가 되는 과정 동안 내가 하고 싶던 운동이나 취미들을 많이 지원해 주었고 항상 나를 위해 기도 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다정한 배려 속에서도 나라는 사람이 사라지고 있는 것은 참 슬프고 우울한데 남편의 배려가 없다면 이 시대의 엄마들은 너무나 힘들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방치형 부모 밑에서 자랐다. 내가 5학년일 때 집안이 너무 어려워서 부모님은 3학년, 6살 동생을 나에게 맡기고 일을 하러 나가셨다. 중국집 옆에 딸린 작은 방에서 셋이 알아서 먹고 알아서 놀며 자랐다. 모든 아이들이 기뻐하는 방학식날 강원도에 있는 할머니댁에 맡겨졌고 개학식 전날 강원도에서 집으로 올라올 수 있었다. 부모님과 일상을 함께하고 여행을 가고 추억을 쌓는 친구들이 부러웠고 나는 꼭 내 아이를 내 손으로 키우고 싶다고 생각했다.


 양가 부모님의 손을 빌릴 수 없는 지역으로 이사 와서 어쩔 수 없이 나는 정말로 '아이를 키우며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했다. 이 세상에는 정말 아이를 키우며 하기 좋은 일들이 넘쳐나 보였다. 그리고 실제로 아이를 키우며 일을 하는 분들도 많아 보였다. 나 빼고 다 애도 키우고 돈도 버는 것만 같은 세상이었다.


 결혼하고 아기가 생기기 전 케이크 토퍼와 파티 풍선을 만드는 법을 배웠다. 그리고 임신을 하고 육아를 했고 또 임신을 하고 육아를 했다. 2020년 둘째를 낳던 주에 인기검색어에 '우한폐렴'이 등장했고 그 폐렴은 코로나라는 이름으로 바뀌며 모든 엄마들을 벌벌 떨게 하였다. 200여 명이 다니는 어린이집에 다니던 우리 아이들은 코로나 확진자가 한 명이라도 생기면 휴원을 하였다. 정원이 200여 명이니 거의 몇 달은 집에서 엄마표 놀이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케이크토퍼와 풍선 재료들은 아주 좋은 엄마표 놀이의 재료가 되었다.


 둘째가 100일이 지나고 공인중개사 공부를 시작했다. 부동산에 관심은 1도 없었지만 그나마 내가 잘하는 것이 공부라고 생각해서 도전했던 것 같다. 하지만 어학을 전공한 나에게 법은 꽤나 생소했고 2문제 차이로 떨어지고 말았다. 나름 과민성대장증후군을 앓아가며 저녁마다 공부를 했으니 열심히 했다고 이야기하고 싶다.


 이 모든 것들을 하며 나는 필라테스와 헬스로 10kg 이상 감량을 하였다. 운동을 직업으로 삼으면 어떨까? 하며 필라테스 지도자 자격증을 취득했다. 보통 오전 좋은 시간대의 일자리는 공고가 나오기 전에 알음알음으로 끝나는 듯해 보였다. 그래서 저녁 시간대에 일을 해보았다. 일주일에 단 하루 저녁 7시 50분! 남편이 그래도 그 시간만큼은 꼭 일찍 오겠다고 약속을 해주었다. 수업을 준비하고 하원하고 저녁도 준비하며 혹시라도 남편이 늦을까 조마조마하던 시간이었다. 저녁을 먹고 수업을 하면 배에서 소리가 날까 봐 빈속으로 센터에 가서 시급 3만 원짜리 수업을 했다. 배가 고파서 집에 걸어오며 배달 앱을 켜고 먹고 싶던 연어를 담았다. 배달비까지 하니 31,000원이었다. 조용히 휴대폰을 다시 가방에 넣고 집에 와서 삶은 계란을 까먹었다. 나름 돈을 번다고 돈을 아껴 쓰려는 내 모습에 웃음이 나왔다.


 이제 이 일을 하기로 한 이상(자격증 취득에 500만 원 돈을 쓴 이상) 업으로 삼아서 계속 일을 하고 싶었다. 그런데 내년에 우리 아이는 초등학교를 간다. 학교는 방학이 2개월이라고 했다. 일하는 엄마들도 육아휴직을 낸다는 초등학교 1학년 엄마가 된다. 둘째는 다섯 살, 이제 조금 커서 아픈 이벤트는 덜 할 것 같았는데 나에게는 방학이라는 것이 기다리고 있었다! 애 키우면서 하기 좋은 일이라는 거 진짜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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