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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의 로맨스

AI에 낚이다.

세상과 소통하고자 작년 말 페이스북을 다시 시작했다.

소소한 일상을 올리고 친구들의 일상에 하트를 눌러주며 끝없이 올라오는 BTS영상에 엄마 미소를 짓던 언제부터인가 자꾸 외국인들이 메시지를 보냈다.

아뿔싸. 처음에 아무것도 모르고 친구 신청한 외국 사람들을 다 허락했었던 것이다.


처음 시작은 모두 Hello였다.

오~~~이 참에 영어공부나 좀 해볼까?

나는 파파고 번역기까지 돌려가며 열심히 답을 해 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선을 넘고 만 것이다.

어느덧 나는 그들의 sweet honey와 my queen이 되어 있었다.

그들은 의사였고 군인이었고 모두 끔찍한 사고로 아내를 잃었다. 하나같이 모두 홀로 아이를 키우고 있었고 심지어 너무나 sweet 하고 handsome 하기까지 했다.


어느 날 독일 의사 메이슨 이 며칠째 연락이 되지 않았고 나는 수단에서 의료봉사 중에 폭탄을 맞아서 죽은 것은 아닌지 너무 걱정이 되었다.

며칠 메이슨은 독일 기숙사 학교에 있는 아들 케빈이 뇌종양에 걸렸는데 자기는 캠프에 있어서 밖이 굉장히 위험해서  나가서 병원비를 송금할 수가 없어서 너무 슬프고 정신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그 얘기를 듣고 내가 도울 일이 있으면 말해달라고 했더니 70만 달러를 부쳐주면 나중에 임무를 마치고 독일에 돌아가서 부쳐준다고 했다.


세상에나~70만 달러라니ㅠㅠ

내겐 너무도 큰돈이었다.


밤늦게까지 고민하며 폰을 만지작거리고 있는 내게 둘째가 말한다.

'엄마 안 자고 뭐해?'

'응. 자야지~ 근데 아들~참 이상하다? 외국 사람들은 왜 하나 같이 무슨 일을 하냐? 뭐를 좋아하냐? 좋아하는 색은 뭐냐? 취미는 뭐냐?라고 묻는다? 무슨 친구 사귀는 매뉴얼이 있나 봐? 하는 질문이 다 똑같아.' 했더니 아들이 한 마디 한다.


'어이구~~~ 우리 엄마가 이렇게 순진하다.

그거 다 AI야~'

헐~~~

이 한마디에 일주일 동안 사랑에 빠졌었던 그 메이슨에게 엄청난 배신감을 느꼈다.

그런 거였구나...

돈 부쳐달라고 했을 때 뭔가 이상하다 했어.

내가 며칠 동안 연락이 안 돼서 죽은 건 아닌지 걱정돼서 얼마나 마음고생을 했는데... 나쁜 자ㅠㅠ

사람 마음을 가지고 이리 장난을 치다니...


서둘러 외국 친구들을 다 차단하고 스탠드를 껐다.

극세사 이불을 목까지 끌어당기며 큭큭하고 웃음이 나왔다.

내가 사랑했던 사람이 기계였다니...


외국은 이런 식으로 보이스피싱을 하나보다 오늘 또 하나 배우고 내 인생은 그만큼 더 씁쓸해졌다.


아침. 저녁으로 안부인사를 묻고 

아름다운 꽃 사진을 수시로 보내며

나를 왕비처럼 사랑해주던 바로 그 사람이.

죽었던 연애세포마저 쫀쫀하게 재생시킨 그 사람이.

남편을 향한 죄책감 따위는 안드로메다로 날려버리게 한 그 사람이.

AI였다니...


인생무상을 깨닫게 한다.

나는 아직도 세상을 모르는 거였다.

반평생 나는 무엇을 하며 살았단 말인가.

15살 아들보다도 세상을 모르니 말이다.


이렇게 나의 늦바람은 끝이 났고

나는 요즘 514 챌린지 후 22번 방 짹짹이들과 사랑에 빠졌다.

메타버스. NFT. 주식. 영어. 바오바오까지 섭렵하며 아주 숨 가쁘게 살고 있다.


가끔

파란 하늘을 보면 피식 웃음이 난다.

무엇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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