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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enna Dec 16. 2021

왜 그래

by 김현철

  불을 질렀다. 아들과 학원에서 숙제로 내어준 문제집을 풀다 답답한 마음, 화는 못 내고 심호흡에 가깝게 깊은 숨을 내 쉬다 눈에 들어온 라이터. 착착 소리를 내다 코 풀던 휴지에 불을 붙였다. 생각보다 금세 화르륵하고 붙는 불에 아이들도 나도 놀랐다. 얼른 옆에 있던 유리컵으로 덮으니 금세 꺼져 다행이었지만 휴지 뭉치 하나에 연기가 자욱해진다. 예전에 동생들과 초를 켜놓고 놀다 방에 불이 나 크게 혼이 난 이후로 불장난이란 하지 않았는데... "자 이렇게 산소를 차단하면 불이 꺼지는 거야..."라고 말은 했지만 아이들도 안 할 짓을 하다니 엄마로서 낯이 서지 않는다.




 문득 고등학교 때 즐겨 듣던 노래가 생각났다. 너무 오랜만이라 제목은 기억이 나지 않고 '도대체 왜 아무런 말도 없는 거야'만 맴돌아 검색하니 친절하게 찾아준다. 김현철의 '왜 그래' 맞다. '왜 그래'였지. 난 노래를 못하니 크게 음악만 틀어 놓고 소리는 내지 않은 채 입만 뻥긋 거리는 립싱크로 고함을 질러본다. '도대체 왜~ 아무런 말도 없는 거야. 미안해서 못하는 거야~ 하기 싫어 안 하는 거야~' 아니 헤어지는 연인 간에 있을법한 이 가사가 아들이 공부 안 해 속 터지는 나의 상황에 이렇게 맞아떨어질 일인가. 아이들은 립싱크하는 내 모습에 눈물까지 흘려가며 웃는다. 남의 속도 모르고...


 어릴 적 다섯 아이를 키우던 엄마는 엉망이 된 집에 아이들끼리 싸우다 울어대면 마루에 대자로 누워 크게 노래를 불렀다. 노래도 잘 하지만 큰 소리로 목청껏 "한 많은 이 세상~~ "으로 시작해 나훈아의 무시로까지 쭈욱 내 지르면 징징대던 울음이 조금씩 튠 다운되듯 작아지다 아예 조용해졌다. 울음을 그치고 크게 노래하는 엄마를 바라보며 귀 기울여 듣기 시작할 때쯤 되면 몇 곡조 뽑아낸 엄마가 벌떡 일어나 청소를 시작했는데 마술처럼 금세 집이 말끔해지곤 했다. 아들 하나 붙들고 하는 공부에도 멘탈이 탈탈 털릴 질경인데 다섯 명이나 키우던 엄마는 도와주는 사람 하나 없는 시골에서 힘든 시간을 어찌 보낸 걸까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빗자루와 걸레로 몇 번 쓱쓱 문지르기만 해도 반질하던 옛 집과 달리 청소기를 종류별로 두고도 먼지가 쌓이는 우리 집은 무엇이 잘못된 것이며 배달 어플 하나 없이 삼시세끼 일곱 식구의 끼니 한번 거른 적 없는 엄마는 도대체 어떤 사람이었을까?

 

 비록 소리 없는 공연이지만 몇 곡 내질렀더니 속이 후련해진다. 배가 당기도록 한바탕 웃은 아이들도 제 자리에 앉아 차분히 숙제를 끝냈다. 노래 한 곡이면 이렇게 풀릴 걸 괜히 언성을 높여 아이들 마음을 상하게 할 뻔했다. 아마 며칠간 차에서 줄기차게 '왜 그래'를 듣게 될 것 같다. 그리고 내일 점심은 엄마와 함께 하며 쓸데없이 불 지르지 않고 화를 누르는 법에 대해 조언을 들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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