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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enna Jan 25. 2022

병원 문간방 살이

 수술이라고 하기도 거창하지만 다리 뒤쪽에 생긴 작은 혹을 떼러 입원을 했다. 내 맘대로 진단하고 길어야 하루 이틀 정도면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일주일 가량 입원을 해야 한다고 하니 미루다 잡은 날짜가 하필이면 명절 전이다. 아! 아쉽다. 이번 설이 언제인지 미리 달력을 봤더라면 의사 선생님께서 권해주신 날짜대로 설을 끼고 입원을 했을 텐데 나의 생각이 짧았다.

 



 아이들은 일주일 동안 엄마를 보지 못한다고 하니 밥은 어떻게 먹느냐, 잠은 어디서 자느냐 걱정이 태산이다. 남편도 아이들을 전적으로 보는 것은 자신이 없는지 어떡하지를 반복한다. 다행히 엄마가 아이들을 봐주시기로 해 안심이지만 동선을 최소화시키려다 보니 이리저리 전화하느라 정신이 없다. 입원하기도 전에 받아야 하는 검사는 총 세 가지. 층을 옮겨가며 재빨리 끝냈음에도 점심시간이 훌쩍 지났다. 병원 밥 얻어먹기는 틀린 듯하고 입원 수속을 한 뒤 환자복만 입은 채 이곳저곳 탐험하듯 돌아다녔다. 지하 1층엔 식당과 편의시설, 1층엔 스타벅스, 2층엔 내가 좋아하는 샌드위치 전문점까지 있으니 하루 종일 여기에서만 놀아도 심심하지 않을 듯하다. 편의점에 들러 마실 물, 간식거리에 평소 아들이 좋아하지만 절대 사지 못하게 하는 콜라도 두 캔이나 담으며 가슴이 뜨끔했다. 코로나로 병실 면회가 되지 않으니 이렇게 신날수가! 커튼을 치고 있으니 오롯이 내 세상인 것 같아 신기해 다시 주변을 둘러본다. 마치 어릴 적 만든 작은 비밀 공간에 들어와 있는 기분이다. 같은 병실에 계신 분들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시다 어느 순간 모두 잠이 드신 듯하다. 들어오며 꾸벅 인사는 드렸지만 아직은 나 혼자만의 공간이 신기하고 좋아 커튼을 걷고 싶지가 않다.


 낮잠 시간은 약속하지 않은 듯 않았지만 누군가가 일어나 불을 켜면 그때부터 다시 시끌벅적 오후 타임이 시작된다. 각자 가지고 온 간식을 나누어 드시기도 하고 손자 손녀 얘기에 주변 사람들 일상 이야기까지 화재가 끊이지 않는다. 궁금함을 견디지 못한 누군가는 커튼을 살짝 젖혀 내 침대를 흘끗 들여다본다. "엄마야~~ 가습기가 있다야." 평소 가습기에 집착하는 내가 들고 온 휴대용 가습기를 두고 하는 말씀이다. 노트북은 왜 들고 왔는지, 멀쩡하게 걸어 들어와 무슨 수술을 하는 건지 내가 존재함에도 곁에 없는 듯 비밀 이야기를 나누시는 어머니 뻘 되시는 분들이 귀여우시다.


 저녁 시간이 될 때까지 미뤄둔 책을 읽다 식사를 마치고 슬슬 저녁 마실을 나간다. 1층에 있는 스타벅스에서 디카페인 아메리카노를 한잔 시켜 초콜릿을 오물거리며 주변을 둘러보니 손님은 셋이다. 흰 가운을 입은 의사 선생님, 검은색 상복을 입은 여자분, 그리고 환자복 차림의 나.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특이한 조합은 병원이라는 위치 조건에서만 가능하다. 수술이 끝나면 2층에 있는 샌드위치 점에서 환자복 브런치 타임을 가지는 건 또 어떨까 며칠 뒤가 기다려진다.



입원하기 전 애들 걱정은 말고 다녀 오라며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준 친구들, 수술 전에 보양 하라며 이런저런 먹을거리를 사다 준 언니들의 걱정이 무색하게(?) 나의 입원 첫날은 룰루랄라 즐거운 하루다. 그래서 남편은 이런 나의 상황을 예상하고 "파이팅!"이라는 강한 기만 넣어주고 떠났을지도 모르겠다. 며칠간 화장실을 마주 보는 병원 문간방 신세지만 오늘 하루는 그래도 오랜만에 느껴보는 여유와 호사가 가득하다. 내일은 수술을 마치고 내 누워있어야겠지만 넷플릭스라는 숙제를 즐겁게 해 볼 참이니 슬기로운 병원생활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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