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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enna May 30. 2022

브런치가 날 살린 걸까?

행운과 지랄 총량의 법칙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은 일기처럼 내 머릿속 정리되지 않았던 일들을 하나씩 기억해 보자는 취지였다. 출판을 하고자 하는 욕심도 많은 사람이 내 글을 읽고 동조해 주었으면 하는 거창한 바램 따위는 없었으나 조금씩 알아가는 브런치 작가님들과의 대화가 즐거웠고 한 번씩 꺼내보는 내 추억을 정리하여 글로 남길 수 있다는 것은 어릴 적 상자에 딱지와 구슬을 차곡차곡 모아가는 것처럼 뿌듯한 일이었으니까.




 며칠 전, 인스타그램 DM을 받았다. 운전 중이어서 자세히 보지도 못했지만 나의 가족과 친구에 대해 알릴 내용이 있다는 의미심장한 메시지. 주차를 하고 보려는 찰나 연기처럼 사라져 버린 메시지에 난 그 출처를 알 길이 없었고 단도직입적으로 당사자들에게 확인하기로 했다. A는 나와는 상관없는 내용이며 본인을 저격하기 위한 B의 의도적인 흔들기일 뿐이라 했으나, 단호한 내 요구에 따라 메시지를 보낸 B라는 사람의 연락처를 알려 주었다. 그러나 아주 가끔씩 오며 가며 인사만 나누던 A가 간과한 것은 호기심 천국에 궁금한 건 도저히 참아내질 못하는 내 집요함이었다.




 B는 Daum 포털 메인에 뜨게 된 글을 통해 날 알게 되었다고 했다. 오지랖일 수도 있으나 본인이 알고 있는 일이 사실이라면 나 또한 알아야 한다는 생각에 인스타그램으로 DM을 보내게 되었다고 했다. 신기했다. 브런치에 있는 내 글을 읽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도, 그것을 통해 나를 알아낸다는 것도. B가 이야기 한 내용들은 큰 바위 하나가 쿵 떨어지는 내용이었으나 이런 게 연륜이라고 하는지 의외로 나는 담담히 이야기를 메모하고 적어 내려갔다. 일이 이렇게 된 이상 사실 관계 확인이 필요했다. 이렇게, 나는 생애 처음으로 4자 대면이라는 걸 경험하게 되었다.


 B의 설명에 A는 거의 모든 것을 부정했다. 장난감 거짓말 감지기라도 가지고 와야 하는 것 아니냐는 소리가 내 입에서 나올만치 둘 사이에 일치되는 내용이 거의 없다시피 했다. 여기서 나의 직감은 점점 A를 향해가고 있었다. A의 말에 따르면 B는 히스테리컬하고 복수심에 불타는 미친 사람이어야 했으나 무례하지 않고 차분히 모든 상황을 설명하며 내가 건네는 불편한 진실 또한 인내심 있게 참아 내고 있었다. 100퍼센트는 아니지만 엄마는 내가 신기 있는 것 아니냐는 우스갯소리를 할 만큼 간판만 보고도 맛집을 찾아내고 남편 또한 사람을 보는 내 판단을 존중하는 편이다. 상대를 완벽히 설득할 수 없는 상황에 이번에도 직감으로 배팅을 해 보기로 했다. 그러나 의외로 A는 완강했고 우리는 결론을 내지 못한 채 찜찜하게 돌아와야 했다.


  그러나 아무런 결론도 없이 이렇게 끝이 난다면 당분간 미칠듯한 궁금함에 잠을 이루지 못할 수도 있다. 그래서 조금 치사하지만 A와 거래라는 걸 해보기로 했다. 내 판단에 자신의 안위를 위해서 B의 연락처를 냉큼 넘겨준 A라면 이번에도 가능성이 엿보였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A는 이번에도 순순히 모든 사실을 인정했다. A의 거짓말에 따르면 나는 이혼을 앞두고 별거 중인 여자가 되어 있었고 나의 남편은 먹이를 찾아 헤매는 하이에나가 되어 있었다. 고작 자신의 거짓말 하나 덮자고 나도 모르는 새 가정법원에 나를 데려다 놓고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아니라고 자신의 아버지를 걸고 맹세까지 한 A. 덕분에 나는 밤새 나를 바라보던 여러 시선을 곱씹으며 의미를 부여하고 있었다.




 앞서 A에게 나는 '작은 돌이 큰 파도가 되어 돌아온다'라고 조언했다. 다른 의미에서 한 말이었으나 순간을 모면코자 했던 그의 말이 그뿐 아니라 나에게도 쓰나미가 되어 돌아왔다. 이제 나는 쓰나미를 피해 또 다른 돌을 던져야 하는 입장이 되었다. 어느 때보다 말과 내 글의 무게가 버겁게 다가오는 하루이다. 순간을 모면하고자 쉽게 던진 거짓말에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하는 때가 되었다. 유유상종이라는 말이 무색하게도 A는 인복이 있는 편이었다. 그가 만나온 사람들은 그를 참아내고 기꺼이 도와왔는데 그는 모두를 저버렸다. 사람이 살면서 받는 복과 불행은 조금씩 다르겠지만 그 총량이 정해져 있다고 한다. '행운과 지랄 총량의 법칙'에 따라 모두가 이번 기회에 자신에게 남겨진 운과 남겨진 삶의 지랄 맞음에 대해 고민해 볼 때이다.


                   

 PS. 그간 억누르며 지내왔던 아껴둔 나의 지랄 본능 또한 꺼내고 싶은 오늘 (브런치 대나무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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