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 동산>(안톤 체홉)을 읽고
"사실, 이제야 모든 게 다 잘됐어. 벚꽃 동산이 팔리기 전까지만 해도 우리는 걱정하고 괴로워했지만, 문제가 완전히 해결된 다음에는 모두 다 평온하고 활기까지 띄니 말이야.." <벚꽃동산>(안톤 체호프, 열린책들)
우리는 언제 위로를 전하고 언제 축하를 드려야 할까. 이 일은 항상 분명할까? 관습에 따라 생일, 합격, 결혼 등 개인에게만 특별한 일이 있을 때 우리는 축하를 보내는 듯하다. 그렇다면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진 일에도 축하를 전할 수 있을까? 나의 막내는 그 일을 해냈다.
막내 : 삼촌 저예요. 추석 축하드려요.
삼촌 : 하하하. 고맙다.
나 : (조금 멀리서)건강하세요. 라고 말씀드려야지~
막내 : 그건 명령이잖아요. 그걸 어떻게 말해요.
누구나 하는 명절 인사는 거부하고 아무도 건네지 않는 축하 인사를 건넸다. 창조적 무식함을 장착한 막내는 어쩐지 100년 묵은 통나무룰 쪼개는 쐐기 같다. 막내의 에피소드를 며느리들만으로 구성된 단톡방에 올렸다. 명절의 피곤함을 웃으면서 조금 날리면 어떨까 싶었는데 반응은 의외였다. '삼촌은 축하를 받아도 되지만 며느리에게는 안 되요. 축하 받을 수 없어요." 그렇다 며느리에겐 불가한 일이다. 물론 며느리에 따라 다르겠지만 아직까지는 많은 며느리가 그러하다.
나에게도 아직 추석 축하는 어울리지 않다. 올해는 다행히 일을 시작한 나를 고려해서 시어머니가 제사를 다시 가져가셨다. 아프신 뒤로 내게 온지 4년만에 제사가 되돌아갔다. "니가 놀 때는 괜찮았지만 지금은 일 하니까네." 말은 안 할 수록 이득이다.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엔 플러스할 게 도통 없다. 1을 몸으로 더하면 말로 마이너스 1을 행하시기 때문에 늘 0언저리를 맴돈다. 안타깝게도 1을 받으면 아들에게 최소 10을 넘기는 펀치가 날아간다. 이런 어리석은 도미노는 끝이 없다.
시어머니들은 보통 집안 대소사를 앞두고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 스트레스로 인한 화는 언제 풀리는가? 며느리가 허리를 굽혀서 일하고 불편하게 밥을 먹을 때이다. 이 일의 불통은 어디로 튀는가? 며느리가 일을 안 하면 화가 나는 일, 일을 해서 기분이 하늘을 날아갈 것 같은 일 모두 며느리에게는 불편한 감정이 되어서 아무것도 안하고 싶게 만드는 엄청난 효과를 불러온다.
그러니 며느리는 명절 축하를 해맑게 받아들일 수 없다. 친구의 시어머니는 명절 특수를 노리신다. 며느리를 하대할 수 있는 특수. 며느리에게 끝간데 없는 미움을 받을 용기를 100프로 파워 충전해서 며느리를 맞는다. 며느리가 가장이면 아들 기를 살리기 위해 기를 쓰고 며느리를 하대하고, 며느리가 집에서 '놀고' 있으면 노는 죄를 다스리기 위해 하대한다. 행여 친척들이 보고 있다면 이 상황은 더욱 왜곡되어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며느리를 더욱 거칠게 하대한다. 이 과시욕은 낯 뜨거울 정도여서 부끄럽다. 친척 앞에서 시전하는 며느리 하대 퍼포먼스는 안타깝게도 친척들의 관심을 1도 끌지 못한다. 이런 적극적이고 비틀린 퍼포먼스를 볼 때면 갈낙탕에 막 던져진 낙지가 생각난다. 낙지는 온 힘을 다해 죽어가고 있다. 옛 세대가 붙잡고 있는 것이 꼭 그렇게 보인다.
그런데 시어머니들이 놓치는 것이 있다. 자신이 이 올가미에서 벗어나면 더 행복하다는 점이다. 세대가 다른 며느리에게 가정의례준칙을 무시한 차레상을 강요하고 민폐를 끼치는 친척 방문을 강요하는 일은 모두 남을 의식해서 하는 일일 뿐 자신의 행복과는 상관이 없다. 명절에 며느리에게 빌런으로 등극해 집집마다 유별난 스토리를 만들어내는 일은 그만두어도 좋다는 말이다. 시어머니의 세대는 그런 방식을 배워보지 못했다는 한계를 지녔기에 안타깝다. 벗어버리면 얼마나 편하고 즐거운지 경험이 없는 것.
나는 어머니들을 위해 선명한 선례를 찾아보기로 했다. 안톤 체홉의 희곡 <벚꽃 동산>의 류보비를 통해 우리는 그 자유로움을 간접 경험할 수 있다.
때는 5월 한 여성 지주 류보비가 파리에서 고향 러시아로 돌아온다. 고향의 저택을 둘러싼 벚꽃동산은 러시아에서 손꼽히는 아름다운 지역이다. 안타깝게도 8월이면 경매로 넘어가게 된다. 6년 전 남편이 죽고 한달 뒤 아들까지 강에 빠져 죽으면서 그 고통을 덜고자 파리로 떠났다. 애인과 함께 재산을 탕진하고 애인을 파리에 둔 채 딸들과 고향으로 돌아오는 길이다. 애인은 무책임한 호색한이었고 여지주 류보비는 씀씀이가 헤픈 순수하고 철없는 귀족이다.
총 2막으로 구성된 이 희곡은 1막에선 류보비가 고향에 돌아와 옛 하인들, 어린 시절 안면이 있는 농부의 아들이자 현재 부유한 상인인 로빠힌, 얼굴만 보면 '260루블만 땡겨줘'를 외치는 몰락해가는 지주가 등장한다. 이들에겐 곧 경매로 넘어가는 벚꽃동산이 주요 화제이긴 하지만 각자 하고 싶은 말만 하는 아무말 대잔치가 열리면서, 눈앞에 닥친 긴박한 현실을 안드로메다로 보내버린다. 상인 로빠힌을 제외하면 아무도 현실감각이라고는 없기 때문이다. 2막에서는 집이 경매에 넘어간다. 농부의 자식이어서 글을 못 읽지만 돈은많은 로빠힌이 벚꽃동산의 주인이 된다.
이 지역 농부의 자식이었고, 이제 부유한 상인이 된 로빠힌은 벚꽃동산이 경매로 넘어가기 전에 토지와 건물을 구할 방안을 알려준다. 그것은 귀족들에게 별장으로 임대하는 것이다.
로빠힌 : 임대하려면 쓸모 없는 이 집을 비롯한 낡은 건물들은 모두 철거해버리고, 시대에 뒤떨어진 벚꽃 동산도 벌목해야겠지요.....
류보비 : 벌목? 이 지방에 뭔가 흥미로운 아니 멋진 것이 있다면 그건 오직 우리 벚꽃 동산뿐이랍니다.
로빠힌: 이 동산에서 주목할 만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단지 크다는 사실뿐이죠.
이 와중에 류보비의 무능하고 해맑은 오빠 가예프는 저택의 오래된 책장을 어루만지며 이런 말을 한다.
가에프 : 100년 된 책장 기념제라도 열어줘야 하지 않을까?
로빠힌 : 당신들처럼 경솔하고 비현실적이고 기이한 사람들은 처음 봤습니다. 나는 다른 나라 말로 얘기하는 게 아닙니다. 당신의 영지는 팔리게 됐다고요. 정말 못 알아듣겠습니까.
이 대사를 우리 시대 명절로 가져와보자.
며느리 : 어머니의 아들이 행복하려면 제사 같은 건 철거해버리고 시대에 뒤떨어진 상다리를 벌목해야겠지요.
시어머니 : 벌목? 우리 집안에 흥미로운 아니 멋진 것이 있다면 그건 오직 튼튼한 상다리뿐이다.
며느리 : 이 집안에서 주목할 만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단지 제사상이 크다는 사실뿐이죠.
이 와중에 시어머니의 해맑은 아들은 이렇게 말한다.
남편 : 100년 상다리에 니스칠이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며느리 : 당신들처럼 경솔하고 비현실적이고 기이한 사람들은 처음 봤습니다. 나는 다른 나라 말로 얘기하는 게 아닙니다. 제가 이혼을 하고 싶다고요. 정말 못 알아듣겠습니까.
다시 <벚꽃 동산>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보통의 서사라면 옛 지주를 저주하는 빌런이 등장해야 한다. 순진한 여지주의 등골을 빨아먹는 여러 빌런들이 등장하고 빌런이 욕망의 화신이라 다 같이 죽든가, 혼자 살아남아 세상을 호령하며 살아가거나 어쨌거나 대단한 복수극이 펼쳐진다. 이 대단한 복수극이 <토지>다. 우리들의 토종 여지주는 나라와 계급을 모두 잃고 혹독한 시련 속에서 살아남아 화려한 복수극을 펼친다. 이후가 중요하다. 그녀는 옛 시대에서 해방된다. 그 땅을 소작농들에게 나누어줌으로써.
<벚꽃 동산>의 주인공들은 자신의 토지를 되찾는 데 실패한다. 경매를 받고 싶어했던 오빠는 실패하고 로빠힌이 경매를 받아 새 주인이 된다. 이때 여지주의 오빠는 의외의 말을 던진다.
"사실, 이제야 모든 게 다 잘됐어. 벚꽃 동산이 팔리기 전까지만 해도 우리는 걱정하고 괴로워했지만, 문제가 완저니 해결된 다음에는 모두 다 평온하고 활기까지 띄니 말이야.."
토지를 찾는 데 실패했지만 오히려 자유롭고 활기차다. 서희처럼 옛 시대에서는 해방된다는 점에서 얻는 새로운 에너지이다. 그들은 잃을 것만 같은 상태를 벗어나자 오히려 자유외 해방감을 느낀다. 극의 전반부에 진행된 산만한 아무말 대잔치는 모두 불안했기 때문이었다. 타인의 선의와 기부 없이는 해결할 수 없는 자신들의 한계 앞에서 떨었던 것이다. 평생을 조상의 유산과 땅에 기생해 한가하게 살았던 그들은 텐션을 바짝 끌어올렸던 상황이 끝나자 드디어 깨닫게 된다. 내 것이 아닌 것을, 허울 뿐인 존재를 손에서 놓을 때에야 평온하고 활기찬 일상이 가능하다는 걸.
<벚꽃 동산>의 미덕은 벚꽃동산의 적이 경매를 받는 누군가가 아니라 오직 과거와 자기 자신 뿐이라는 점을 알려준다는 것이다. 그러니 토지 경매를 앞둔 그들이 상황을 타개한 해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과거와 안녕하고 빚더미에 앉은 유산에서 벗어나는 것이겠다. 그들은 예전의 생활로 돌아가지 못할 테지만, 행복하게 살아갈 가능성은 있다. 미련없이 과거와 이별하는 짐을 해치웠기 때문이다. 어머니들 그렇지요? 적은 자신입니다.
이별은 <벚꽃 동산>의 남매처럼 해야 하는 것 아닐까. 자신의 의지와 능력으로 불가능하다면, 혹은 부족하다면 타인에게 기대지 말고 순순히 헤어지는 것이다. 자신의 과거와 말이다. 이토록 순수하고도 노골적인 시대 전환이라니. 안톤 체호프는 참으로 범상치 않은 작가이다.
이런 상큼한 <벚꽃 동산>에서 유일하게 씁쓸함을 안기는 사례가 있다. 과거와 헤어지길 거부한 늙은 하인 피르스는 바뀐 세월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늘상 나으리 걱정 뿐이며 농노 해방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그는 경매가 끝나고 원래의 주인들이 떠난 뒤 문이 잠긴 집에 갇힌다. 그리고 죽음을 맞이한다. 변화한 시대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이별하지 못하는 자의 비참한 끝. 이 극에서 그만이 쓸쓸하고 비참하다. 명절의 악습을 끝내지 못하고 전전긍긍하는 이전 세대의 부모님의 끝과도 닮았다. 스스로 끊어내지 않으면 갇힌다.
또 한 예를 살펴보자. 미국의 대통령 조 바이든이다. 그는 재선에서 공화당 후보 트럼프에게 밀리자 눈물을 머금고 해리스에게 민주당 대선 후보 자리를 내주었다. 그리고 9.11 테러 23주년을 맞아 당시 여객기가 추락했던 펜실베이니아주 소방서를 찾은 현장에서 다음과 같은 여유를 보여주었다.
남성(트럼프지지자): "당신 이름이나 기억해요?"
조 바이든: "내 이름이 기억 안나네요. 난 느려요."
남성: "넌 늙은 바보야!"
조 바이든: "그래요. 난 노인이죠. 잘 아시겠지만."
며느리 : 조상님 이름 기억하세요?
어머니 : 내 이름도 기억 안 난다.(자랑스러운 어머니상)
(이하 생략)
바이든은 트럼프 지지자들이 쓰는 모자를 쓰고 웃는다. 빨간 모자를 쓴 바이든의 미소는 얼마나 해맑은가.트럼프 지지자는 말한다. "이제 당신이 자랑스럽네요" 백악관 부대변인은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911테러 이후 양당 화합의 의미로 모자를 쓴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후보를 내려놓은 뒤에야 얻은 여유와 자랑스러움이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진 일에 축하를 보낼 수있을까. 아마도. 공평하게 주어지지만 모두 각자 다른 이유로 불공평한 시간에 끼어 있기 때문에 그 시간을 끝내기로 한다면 축하를 보낼 수 있을 것이다. 제사를 받들고 며느리 주변으로 의식의 공전을 하며 궤도를 한정짓는 어머니들은 피르스 같은 삶에서 벗어나길 결심한다면, 그 이별은 축하받을 것이다. 설날에도 추석에도 축하 인사가 서로에게 타당할 것이다. 당신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른채. 다음 세대가 문을 잠그고 떠나기 전에 스스로 이별하고 당신의 노년을 유년기처럼 다시 즐기기를 결심했다면 또한 축하를 보내도 좋을 것이다. 부디, 그들이 류보비처럼, 서희처럼, 바이든처럼 해방되길 간절히 바라본다.
<벚꽃동산>은 실제 러시아에서 가장 값지고 풍부한 땅이었다. 크림반도의 얄타지역으로, 러시아의 땅같지 않은 온화한 땅이었다. 그런 땅을 잃고도 웃을 수 있다. 어머니들은 세계를 호령하는 대통령으로서 민주당 대선후보를 넘겨준 것도 아니고, 얄타 지방의 가장 풍요로운 땅을 잃은 것도, 평사리의 황금들판을 잃은 것도 아닙니다. 고작 제사에 불과하단 말이예요. 그리고 얻는 것은 자유와 놀이시간 아들 부부와 행복한 대화입니다. '자랑스러운' 어른 말이에요. 그리고 이 글을 혹시 본다면 뜨끔할 아버님들. 제발 헤어지세요. 어머니와 며느리를 해방시키고 자랑스러운 아버지가 되세요.
우리 이제 서로서로 추석을 축하합시다. 건강하세요는 명령으로 들릴 수 있으니 주의하고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