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하수 백서

온전한 한 개

by 쓰을




멀리서 온 조카가 겨울 방학 동안 나의 가족들과 한 집 살이를 하고 있다. 동생의 딸 H 양은 나의 첫째와 동갑으로 사촌이자 베스트프렌드이다. 32평의 아파트엔 당분간 여자 셋 남자 셋, 총 여섯 식구가 지내야 한다. 고등학교 입학을 앞둔 딸과 조카(동갑내기)의 규칙적인 하루를 위해 아침을 꼭 먹이고 있다. 식구가 늘었으나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면 아침상의 심플함이다. 막내는 말했다. "엄마, 왜 우리집은 식비가 많이 든다는 거예요? 아침은 대충 먹고 점심은 학교에서 먹고 저녁이나 제대로 먹잖아요." 자기 배를 보면 식비가 왜 많이 드는지 금방 알텐데.


약간의 사치스러운 대안이 존재한다. 한결같은 대충 아침상의 궁색함을 덜어내고자 과일이라도 꼭 챙겨놓는 것이다. 오늘은 5개 들이 특대 감 한 봉지에서 감 2개를 꺼내 깎는다. 감 이파리를 떼면 움푹 패인 꼭지 부분을 세심하게 도려내야 먹을 것이 조금이라도 돌아온다. 식구 많은 집은 껍질도 최대한 얇게 깎는 데 신경을 집중해야 한다. 단단했던 감 하나를 쪼개놓으면서 잠시 이 공간의 엔트로피가 몇 배나 증가하는 걸 지켜본다. 풍요로운 느낌을 만끽하며 아침 식탁에 놓는다. 감을 바라보는 아이들의 눈길이 애미애비 못알아보는 눈빛으로 돌변한다. 내 마음의 엔트로피도 증가한다. 감을 바라봤을 때와는 반대로 빈곤함을 느낀다.


"엄마 식전 과일 되요?"

"안 됨"


당연히 될 리가 없다. 식전 과일을 허하는 집이 세상에 있다더냐. 있다면 적어도 한끼에 후식으로 감 5개 한 봉지를 해치우는 집은 아닐 터. 우리집 준칙에 따르면 식전 과일은 불가하다. 다만, 엄마가 몸살이 나거나 천재지변으로 인한 배송 불가 등의 이유로 마땅한 아침거리가 없을 땐 식전 과일도 허한다. 무엇보다 식전 과일은 소화를 방해한다. 소화와 위의 상관관계는 엄마의 상태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지 그 자체의 속성에 있지 않다. 하여, 내가 버젓이 부엌 식탁을 차지하고 있는 한 과일은 밥으로 배를 채운 뒤 마지막 순서가 되겠다. 과일로 먼저 배를 채우는 일은 쌀보다 과일 값이 싸지 않는 한 일어날 수 없는 것이다.


이렇게 과일 먹는 순서를 정했다고 해서 과일을 먹을 수 있는 순서가 내게 오는 것은 아니다. 나는 감을 바라보는 아이들의 눈빛을 보며, 아침 식탁에서 감을 먹는 걸 포기했다. '애들 내보내고 혼자 한 개를 깎아 먹어야지' 나에겐 아직 3개의 감이 있지 않은가. 실망하기엔 이르다.


아들들이 나갈 준비를 서두르자 나도 그 사이 감을 하나 더 깎았다. 성급했던 것인가. 아이들이 부엌으로 왔다 갔다 하며 감을 좀 먹어도 되냐고 물어온다. 현관에 있었던 거 아니었나? 어쩔 수 없다. 이번 감도 포기하는 수밖에. 나에겐 아직 2개의 감이 남아 있다. 아이들에게 감을 나누어주면서 황급히 나도 절반의 감을 와작와작 씹는다. 하지만 온전한 한 개를 먹지 않는 한 오늘 아침 나는 "감을 먹었다"고 할 수 없다. 하나를 더 깎는다.


멀리서 온 조카와 첫째가 나가며 부엌을 지나가는 순간 조카는 한 개 더 먹이고 싶어서 접시를 내밀었다. 접시를 내밀었던 건 접시에서 한 두개 가져가서 먹으라는 뜻이었는데 조카는 접시 채 가져다가 식탁 위에 놓아버렸다. 착하고 성실하고 고모를 배려하는 조카의 행위로 타당해 보이지만 나의 한 개는 또다시 실패를 맛 본다.

이제 나에겐 1개의 감이 남았다. 아이들이 모두 나가고 나는 나를 위해 정성들여 온전히 한 개를 다 깎는다.


"여보, 감 먹어요."

남편에겐 온전한 1개를 맛보였다. '배나 많이 나와라.'는 밖으로 뱉지 못했다. 온전한 한 개를 향한 아침의 고군분투는 허망하게 끝이 났다. 과일값은 대체 언제 떨어지나, 우크라이나 전쟁은 대체 언제 끝이 나나, 이 혼란한 정세는 언제 끝이 나나, 나나나. 단감 먹고 싶구나나.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집안일, 권리와 호의 사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