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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aven헤븐 Dec 11. 2023

아프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인터넷에 '손목 터널 증후군'을 검색했다.

손목 터널 증후군에 걸리기 쉬운 사람들로, 장시간 컴퓨터를 사용하는 사무직, 미용사, 요리사, 주부가 나왔다.


나에게 진짜 손목 터널 증후군이 생긴 것인 지는 모르겠지만 증상이 비슷하고, 미용사 빼고는 거쳐왔던 직업들이고 지금도 매일 하고 있는 일이다.

장시간 컴퓨터 앞에 앉아 글 쓰고, 그림 그리는 것은 안 하더라도 요리하고 집안 일 하는 것은 안 할 수가 없다(다 내가 좋아하는 일이다). 그래, 십분 양보해서 요리와 집안일도 며칠 미룰 수 있지만 양치하고 씻는 일은 해야 하지 않는가.


그동안 무리하며 겨우 달래 오던 손목이 심각하게 아프게 되면서 칫솔 쥐고 머리 감는 일조차 어려워졌다.

며칠 쉬면 괜찮을 줄 알았는데 좀 나은 듯하여 부엌일이라도 하고 나면, 그만 또 통증이 심해지곤 했다.


강제 휴식기에 들어갔다.


2년 반동안 작가로 열심히 활동하면서 종종 아프긴 했다. 어떤 때엔 눈을 너무 많이 사용하여 건조증 때문에 앞이 캄캄해서, 어떤 때엔 허리가 너무 아파 앉아 있을 수가 없으니 엎드려서 글을 썼다. 누가 보면 베스트셀러 유명 작가 납셨는 줄 알겠다. 다 내가 좋아서 한 일인데 좋아하는 일에 미친 것이라고 밖에는 설명이 안 된다.

활동 중에 아파서 하던 일을 가지 쳐야 하는 경우가 있었지만 이번엔 가지치기 정도가 아니라 완전히 그만둬야 할 판이 되었다.


이게 손목만 아픈 게 아니라 눈, 허리, 무릎까지 돌아가면서 반복적으로 아프다 보니 일상생활도 편치 못하고, 신경이 잔뜩 예민해졌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것도 하지 못해 누워있는 시간이 아까워 오디오북이나 강의를 틀어놓고 들었다. 그래서 늘 머릿속이 시끄러웠다.


마지막으로 그림책 두 권을 더 출간하고, 결국 다 내려놓았다.


손목이 아프면 의외로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이때 매일 만보이상 걷던 나의 오른쪽 무릎에도 통증이 생겨 환자처럼 누워 있는 날이 잦았다. 두 손, 두 발이 묶인 것이다.

누워서 강의를 들어도 이 내용을 정리하여 써먹은 경험을 글로 남길 수가 없으니 문득 부질없단 생각이 들었다. 멍하니 누워 천장을 바라보다가 그동안 나의 손목이 얼마나 일을 많이 했는지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게다가 내가 그토록 좋아하는 '손으로 만드는 일'을 전혀 할 수 없다면 남은 인생이 얼마나 불행할지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지금부터라도 입에 붓을 물고 그림 그리는 방법을 훈련해야 하나, 아니면 발가락에?

그러고 보니, 그토록 손을 혹사시켰으면서도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지 알아본 적도 없다.


이 얼마나 마음씨 나쁜 몸의 주인인가.


그저 아프면 잠시 쉴 틈을 주었다가, 생산성이 떨어지는 것을 더는 볼 수가 없어 파스를 바르고 손목 보호대를 차는 것이 전부였으니.


한 동안 푹 잘 쉬고 나니 이제 이만한 글을 쓸 수 있게 되었다.

음성 인식을 시켜 텍스트로 변환시키는 방법도 있지만 역시 키보드로 입력하는 방법이 제일 좋다.

좋아하는 글쓰기와 요리를 죽을 때까지 계속하려면 조금씩 느리게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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