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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긍정 오뚜기 Dec 27. 2023

2023 한 해를 정리하며...

Chapter 3. 조언을 받아들이는 자세

 나는 한 학기전만 해도 문창과의 합평을 견디지 못했다. 전공 수업에서도 행사 준비를 위한 소설에 대해서도 합평은 내게 가혹할 뿐이었다. 잘 모르는 사람들이 내 작품에 대한 평가를 한다. 하지만 아무것도 모르면 내 작품이 그렇구나 하고 아무 생각이 안 들 수도 있다. 하지만 교수님께서 이미 이 말씀을 하셨다. 글을 보면 그 사람이 보인다고. 문학인들에게는 곧 글이 자신의 얼굴이고 표정이고 표현이라고. 내가 문학인이 맞는지는 잘 모르겠다만, 그 말을 듣고 한 문장 한 문장 쓰는 것이 두려워지기도 했고, 신중해지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학과 행사 때 실어야 했던 내 글에 대해서도 긴장을 많이 했다. 긴장을 많이 한 만큼 합평에서 지적을 견디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 다 끝나고 나서는 쿨한 척 앞으로 개선할 점이 많지만 해 나가면 된다고 스스로 다짐했지만, 인문예대를 내려가면서 기숙사로 향할 때 내 글이 이 정도밖에 안되나... 역시 재능이 없는데 이 길을 택한 건 잘못된 선택이 아니었나 이런 생각이 이어져 잠을 못 이루게 했다. 


 하지만 그렇게 합평을 받은 지도 1년이 다 되어 가니 점점 익숙해지고 하나의 생활습관이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앞으로 만약에 작가로 살 수 있다면, 어떤 댓글이나 평가에도 상처받지 않고 그 속에서 내게 진정 필요한 내용이 무엇인지 가려내어 받아들여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게 노력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엄마의 잔소리와 비슷하다. 우리 엄마는 말이 거친 편이다. 멘탈이 강한 우리 오빠조차도 견디지 못하고 그로 인해 삐뚤어졌었다. 엄마가 하는 말은 전부 옳지만 사실이어서 더 아프고 표현방식으로 인해 또 한 번 아프게 된다. 엄마는 말을 더 유하게 하려고 노력은 해 왔다고 하지만 자신이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에 고치기 힘들다고 하셨다. 고등학생 때까지만 해도 엄마의 이런 잔소리나 독설로 인해 상처를 많이 받았다. 그때는 수용의 자세가 없었다. 하지만 스물한 살이 다되어 가는 이 시점에서 나는 엄마의 말들을 전부 이해하게 되었다. 그때는 한 없이 나를 무너져 내리게 하는 말들로만 여겨졌는데...


 엄마를 이해하게 된 것은 사회에 조금씩 조금씩 발을 내디뎌 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물론 취준생도 아닌 나는 고작 뜨거운 물에 발을 담갔다가 빼는 정도가 맞겠지만. 알바를 구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또한 알바 면접이 잡혔다고 해서 바로 합격도 아니고 합격했다 해도 내가 원하는 시간이나 날짜를 조정하는 데에서 사장님들이 양해를 부탁한다고 하면서 내 스케줄은 이미 고정이 되어버리는 상황이 발생한다. 돈을 받기 때문에 알바생의 입장에서 요구를 하는 것은 합당한 일이 아닌 게 되어버린다. 또한, 애초에 3달 정도 하겠다고 했다가 한 달만 하고 도망가는 알바생들이 생길까 봐 그럴 것 같은 사람들은 면접에서 바로 탈락시켜 버린다고 한다. 나 또한 면접 때 나도 모르게 실수로 채용 담당자에게 그런 인상을 남기고 말았다. 바보 같은 내 실수로 인해 좌절하고 절망하면서 후회했다.  


 '내가 너무 곱게 컸구나. 수능 끝나고 닥치는 대로 알바를 구해보는 거였는데... 그때 이런 실수들을 했으면 지금은 다 깨닫고 더욱 수월하게 알바를 구할 수 있었을 텐데...'


 나는 내가 또래에 비해 경험치에 대해서 적어도 뒤처지지는 않는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엄마가 말하는 내 주변의 아들들이나 딸들은 이미 나를 앞서질러가고 있었다. 엄마의 비교가 옳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주변에 그런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사실인 셈이다. 어찌 됐든 나는 그들보다 경험치가 부족한 나이 먹은 피터팬이다. 아직도 나는 모르는 게 너무 많았다. 어렸을 때는 내가 성인만 되면 뭐든 잘 해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성인이 되고 나서도 나는 나였다. 엄마는 지금이라도 깨지고 부딪히면서 배울 수 있는 게 많아서 부럽다고 했다. 그러니 내가 동생보고 중학생이라서 부럽다고 하는 말은 엄마가 나한테 스무 살이어서 부럽다고 하는 말과 같다고 했다. 그래, 생각해 보면 그 말들은 해봤자 변하는 게 아무것도 없는 말이지. 엄마 말대로 미리 깨닫고 더 열심히 공부했다면 지금 편입을 준비할 필요도, 대학과 집 사이의 거리가 이렇게 멀어질 일도, 돈 때문에 걱정할 일도 줄었겠지. 


 하지만 어쩌겠는가. 과거의 나도 나인걸. 언제까지 원망만 하고 있는다고 과거의 내가 미래를 바꿔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니 지금의 나는 무엇이라도 도전해야 한다. 두렵다고 박혀 있기만 하면 지금 하는 후회를 서른 살이 되어서도 하고 그 후에도 똑같은 실수를 되풀이하는 인간이 될 것이다. 나는 그건 절대 용납할 수 없다. 고등학생 때 인생에 있어 나름의 큰 위기를 넘고 나서 깨달은 중요한 사실이 있다. 나는 나 자신을, 내 삶을 놓아버릴 수 없는 인간이다.  살아가기로 한 단 하나의 선택지 밖에 없다면, 이왕 사는 거 행복하게 살아보고 싶다. 그렇기에 세상에서 마음이 가장 단단한 사람이 되는 것이 내 신념이다. 어떤 힘든 일이 닥쳐와도 5분 만에 털어버리고 크게 웃을 수 있는 경지에 도달하고 싶다. 그래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으니 말이다. 결국에는 다 털고 앞으로 나아갈 걸 알고 있다면 조금이라도 그 시간을 줄이는 게 효율적이고 현명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합평도 더는 무섭지 않다.  난 요즘은 친구들에게 합평을 오히려 요구하고 있다. 주변에 좀 객관적이고 직설적으로 말을 잘하는 친구에게 일부러 찾아가 친구고 뭐고 다 생각하지 말고 무조건 까라고 했다. 그 결과 잠시동안 마음이 조금은 아려왔지만 그 후에는 내게 도움이 되는 사실들을 주워 들고서 여유로운 마음으로 감사를 표할 수 있었다.  고등학생 때처럼 나를 지적하는 말들에 상처받아서 안 들으려고 하는 막무가내 구제불능의 나 자신은 온데간데없었다. 그렇기에 도전도 하고 싶었고 세상에 깨져도 보고 싶었는데, 합격했던 해외단기 파견은 갑자기 학생들에게 본인 부담 비용을 계속 늘려나가는 바람에 포기 각서를 쓰고 앞으로 1년 동안 학교에서 보내주는 연수는 다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 왔고, 거의 합격 예정이었던 대기업 알바는 내가 너무 솔직하게 바보처럼 대답하는 바람에 날릴 위기에 처했다.  실은 연수를 포기하면서 돈에 대한 갈망이 너무 커져 내가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빡센 알바의 면접을 보게 되었고, 그 결과 내가 겁을 너무 먹어 뒤로 물러나는 양상을 띠게 된 것이다. 


 엄마는 내가 일을 하고 싶었다면 그런 실수를 할 리가 없다며 나보고 일하기 싫냐고 했다.  하지만 난 절대 그렇지 않았다. 돈을 너무나도 벌고 싶었기 때문이다.  적금을 깨서 말레이시아에 갈 준비까지 다 마쳐 놓았지만 갑자기 항공료가 100만 원이 넘어갔고, 무료로 제공해 준다던 기숙사를 호텔로 바꿔 우리에게 돈을 요구했다. 결국 학교에서는 120만 원 밖에 지원을 안 해주는데 나머지 이것저것 포함된 400만 원을 학생들이 부담해야 했다.  포기하고 돌아가는 길에 엄마에게서 전화가 와서 대출 좀 막고, 아빠의 재산 소송비를 부담할 수 있도록 내 적금의 전부인 300만 원을 빌려 달라고 했다.  집안 금품을 다 팔았다는 말을 듣고 나는 심장이 내려앉는 줄 알았다. 나는 엄마에게 우리가 집안 상황이 언제 이렇게 나빴냐고 물어봤고, 엄마는 아니라고 했다.  알고 보니 딱 그 시기만 정말 힘든 잠깐의 순간일 뿐이었고, 내가 본가에 내려왔을 때는 영락없는 똑같은 상태의 우리 집이었다. 


 하지만 그때 당시 그 전화를 받고, 300만 원을 보내고 내 통장 잔고에 0원이 뜬 것을 보고 나는 꼴사납게 울고 말았다. 우리가 그렇게까지 가난한 건 아니지만 엄마가 전화로 내게 말레이시아 갈 돈을 못 줘서 미안하다고 했다. 엄마에게 죄책감을 느끼라고 한 말은 아니었다. 다만 내가 연수를 포기했다는 사실은 알려야 걱정을 안 하기도 하고 그전에 엄마가 은근히 내가 돈 때문에 포기하길 바라는 것을 느꼈었다. 나도 말레이시아 한 달 가는데 그 돈은 너무 아니라고 생각해서 포기했지만 미련이 남았다. 무엇보다 나름 준비도 길게 했고, 내 인생에서 큰 결정들 중 하나였는데 포기했다는 것에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담당자님은 함께 못 가서 미안하다고 하며 이번에 방학이 끼여있기도 하고 새해에 가는 것이기도 하고, 항공편을 담당업체에 예약을 부탁하게 되어 그렇게 비용이 늘어난 것이라고 등등  이렇게 말했지만... 그때 당시 나는 포기 동의서를 보며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포기하라는 주제에 왜 동의하라는 게 이렇게 많지. 슬프게...'


 그리고 그전에 나도 모르게 다른 손에 꽉 쥐고 있었던 종이 뭉치는 다름 아닌 학과장의 서명을 받은 해외 파견 허가서였다. 이를 1층 쓰레기통에 던져 버리면서 괜찮은 척 기숙사로 향했던 나 자신이 떠오른다.  이런 일들이 잠시 나를 힘들게 하면서도 조금은 강하게 만들었다. 그러면서 엄마가 전에 했던 잔소리들이 와닿기 시작했다. 그래서 이제는 그 말들이 전부 나를 걱정해서 하는 말인 걸 안다. 더 이상 아프게 다가오지도 않는다. 그 이유는 내가 그걸 피하지 않고 현실을 받아들일 준비가 됐다는 말이다. 피해봤자 해결되는 건 없다는 것도 몸소 경험했고, 엄마가 했던 말들이 정말 현실 그 자체에서 일어나는 일들이라는 것도 경험했다. 다만 경험해 보고서야 깨닫는 이 나쁜 버릇은 빨리 고치는 게 맞겠지.  내가 제일 좋아하는 중드인 '난난 청다지교'의 난난, '바른 연애 길잡이'의 정바름, '귀멸의 칼날'의 탄지로,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앤드리아처럼 끊임없이 이어지는 고난의 행진에서도 벌떡 벌떡 일어나서 앞만 보고 달려가는 자세와 남들의 조언을 하나하나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그 고난들을 헤쳐나가는 힘을 키우는 자세를 본받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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