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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긍정 오뚜기 Jan 07. 2024

불안감과 맞서 싸우기로

다짐하면서...

 알바를 시작하게 된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이유 때문이었다. 2024년에 21살이 될 나는 아직 생일이 지나지 않아 20.5살이다. 가게 안을 들어가면 술을 사는 것은 가능하나 만 나이 적용으로 인해 미성년자로 간주되어 안에서 마시지는 못하는 애매한 나이. 사람들이 알바를 시작할 수 있는 나이는 대체로 미성년자 때부터이다. 엄마는 때때로 미성년자였던 나에게 내 나이의 다른 애들 중에는 벌써부터 알바를 해서 돈을 모으는 사람도 많은데 나는 공부를 한답시고 제대로 성적을 잘 받는 것도 아니면서 허구한 날 힘들다고만 한다고 뭐라 했었다. 그리고 수능이 끝난 그 시점부터, 주변의 친구들 중 알바를 시작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굳이 해야 하는 나이, 정해진 나이가 없었으므로 나는 아직까지는 경험해보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불안감이 생겨났다. 내가 지금 시도해 보지 않음으로 인해 내게 불이익이 오진 않을까.  아직 나처럼 안 하는 사람들이 더 많을 테지만 그래도 왜 이리 불안한지 나는 도저히 알 길이 없었다.


 스무 살이 되고 나서는 간간히 물류센터 알바를 며칠 하거나 동생 과외를 하는 게 전부였다. 그렇다. 나는 제대로 된 알바 경력이 여전히 없었다. 그리고 스물한 살이 되기 직전인 이 시기에 나는 제대로 된 알바자리를 구할 수 있었다. 그전까지 대학 근처에서 알바를 구하려고 기웃거리며 면접을 여러 군데 보러 다녔지만 붙은 곳은 너무 멀거나 시간이 안 맞았고, 나머지는 내가 알바경험이 없다는 이유로 받아주지 않았다. 그때서야 알바자리 하나 구하는 것도 그리 쉬운 일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미 수능이 끝난 시점부터 알바를 하러 다니기 시작한 친구들은 경험이라는 게 쌓여서 어떻게든 쉽게 구하며 돈을 벌었다. 나는 그러지 못하는 나 자신이 너무 원망스러웠다. 이제 더 이상 부모님께 손을 벌릴 나이도 아니고 무엇보다 내 부모님은 이런 면에서 엄격함을 가지고 있었다.


 스무 살이 지나면 땡전 한 푼도 안 준다는 말을 몸소 실현하시는 분들로써 오빠가 성인이 되자마자 힘들게 알바하고 죽기 살기로 일자리를 구해 마침내 취직하는 것까지 봐오면서 나는 치를 떨었다. 어쩌다 저렇게 돈에 목매다는 기계가 되어갈 수 있는지, 대학에 막 입학했을 때까지만 해도 오빠는 그 정도로 사회에 찌든 사람이 아니었다. 내 미래가 저 정도는 고사하고 더 안 좋으면 어떡하나 생각하면서도 번듯한 직장에 취직 자체를 한 오빠가 부러웠고, 아직 행복한 마음으로 이것저것 하고 싶다고 떼쓰며 공부도 하고 놀아도 아직 미래를 크게 바꿀 수 있는 기회가 있는 중학생 동생이 너무나 부러웠다.  나도 아직 늦지 않았다는 것을 잘 안다. 부모님이나 오빠가 보면 내 나이가 부러울 수 있다고도 생각한다. 실제로 그렇다는 말을 듣기도 했으니까. 하지만 그러면서도 '고등학생 때 더 열심히 했으면 지금 상황이 더 나았을 것'이라고 하는 어른들의 말에 나는 할 말이 없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걸. 난 겪어봐야 아는 부류에 해당하니까. 겪기 전까지는 체감하지 못했다는 핑계로 미래에 대해 생각하기를 두려워하는 겁쟁이였다. 그때는 현실을 바라볼 용기가 없었다.


  하지만 그 시기를 극복하고 나서 현실을 점차 바라보기 시작했고, 나는 알바를 못 구할 것 같다는 두려움과 트라우마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고등학생 때 겪었던 우울증으로 인해 남은 상처가 현실을 맞닥뜨리는 데에 큰 오점이 되진 않을까 걱정도 했지만 아무것도 안 해보면 느는 게 없다는 걸 알기 때문에, 그리고 무엇보다 더 이상 뒤처지는 건 싫었다.  주변에서도 나 스스로도 친구들과 나 자신을 계속 비교할 때부터 나는 불안하고 미칠 것 같아도 도전을 해야만 하는 상태가 되어 버렸다.  알아서 사람구실을 한다는 게 철이 든다는 게 나잇값을 한다는 게 나를 계속 불편하게 만들면서도 어느샌가 나 또한 그렇게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그래서 나는 공장 알바에 도전했다.  교육을 받는 그날, 도망가고 싶었다.  일 자체에 대한 두려움 보다 부상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복잡한 길에 대한 두려움이 나를 계속 파고들었다.  자꾸 '내가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떠오르면서 당장이라도 포기하고 싶었다. 하지만 면접까지 보고 교육까지 받고 건강 검사까지 시킨 이 알바는 돈이 셌다.


 방학 때만 열심히 하면 학기 중 사는 게 걱정이 안 될 정도였다. 하지만 그만큼 힘들어서 그만두는 사람들도 많은 알바였다. 내가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나는 면접 날을 떠올렸다. 면접 날, 나는 바보 같은 말실수로 알바에 탈락할 뻔했다. 내가 너무 솔직하게 답변했기 때문이었다. 엄마는 내가 그런 실수를 하는 이유가 경험이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내가 알바를 미리 경험해 보지 않았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었다. 더 많은 경험을 했다면 면접쯤은 센스 있게 통과했을 것이다. 하지만 탈락했다고 생각했던 때 어찌어찌 인원이 부족해 나는 추가합격을 했고, 알바를 할 수 있었다. 이 알바는 비록 공장 일이지만 나름 큰 기업의 공장이어서 스펙이 될 수 있었다.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알바 경력을 쌓고 싶었다. 교육을 받고 다음 날 교육자와 함께 실습을 했는데 일은 어렵고 복잡하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무엇보다 두려워하는 길이 복잡했다. 예전부터 심각한 길치였던 나는 길을 찾아가는 것을 연습한답시고 고등학생 때부터 계속해서 버스를 혼자 타고 오만 대중교통을 다 이용해 보았다.


 하지만 새로운 길이 나올 때마다 계속 당황했다. 그리고 계속해서 잘못된 것을 타고 가는 실수를 했다. 지금에서야 대중교통을 타고 어디든 간에 눈 감고도 잘 갈 수 있지만, 이것은 공장 내부의 설비를 찾아가는 것과는 별개였다. 공장 안은 생각보다 복잡했다. 차라리 공사판이나 길 한복판에 던져지는 것이 길을 찾기엔 더 쉬울 것 같았다. 빨리 움직여야 하는 상황에서 기계 사이를 피해 다니며 길을 찾고 문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한 마디로 인간을 위한 길은 없었고 전부 기계를 위한 공간뿐이었다. 두려움이 밀려왔다. 일도 물론이지만 앞으로 나 혼자서 교육자 없이 길을 잘 찾아다닐 수 있을까... 휴게실도 탈의실도 계속해서 헷갈렸다. 이런 이유로 그만두는 사람도 있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그만둘 수 없다. 이런 일 외에 다른 일을 더 잘할 거란 보장도 없고, 무엇보다 해내고 싶었다. 포기하고 자책하고 스스로를 한심하게 여기는 일은 그만하고 싶었다. 그날 이후로 꿈속에서도 공장 레일이 나오고,  낮에도 밤에도 알바에 대한 걱정과 불안으로 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었다. 알고 보니 나는 흔히들 느끼는 '출근 전 불안'을 심하게 느끼고 있었다.


  이제는 마트에 가서 내가 일하는 곳에서 생산하는 제품만 봐도 몸이 떨렸다. 이 상태를 어떻게든 극복하고 싶어 철재 공장에서 과장으로 일하는 아빠에게 물어봤다. 아빠 또한 출근 전 불안이 심하다고 했다. 그리고 나와 마찬가지로 가장 불안에 떠는 것은 '안전사고'에 관한 것이라 했다.  하지만 아빠는 일한 지 몇 십 년이 다 되어 가니 숙련이 되어 그나마 편해진 것이라 한다. 일을 잘 해낼 수 있을까에 관한 두려움은 누구나에게 다 있는 것이었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어서 다행이라 여겨지지만 일하는 도중에는 나만 그런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자존감이 낮아지는 것을 느꼈다. 반복적인 일 자체가 힘든 건 참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며칠 해보지 않았기에 지금 당장은 그런 말이 나올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직 제대로 된 알바는 시작도 안 했는데 벌써 이 정도로 겁을 먹냐는 생각도 들었지만 해야만 하는 것 앞에 불안감은 사치라는 마인드로 이겨내기로 했다. 어차피 해야 하는 것 불안감과 맞서 싸우기로 했다.


 최근 본 드라마인 '이재, 죽습니다.'에서 불안에 떠는 삶은 삶이 아나라고 했다. 그리고 사는 것 자체가 주어진 기회라고도 했다. 한 때 나도 모든 걸 다 포기하고 던져버리고 싶었던 적이 있었다. 그리고 현재도 가끔씩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살아있기에 실패해도 다시 도전할 수 있는 것이지 죽으면 돌이킬 수 있는 게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불안에 져 모든 걸 끝내버리는 어리석은 선택을 해서는 안 된다. 불안과 맞서 싸울 수 있는 힘을 키우고 실패에 나름 관대해지고 오뚝이처럼 일어나려는 근성이 필요하다. 나는 죽고 나서 사후 세계가 있는지 없는지에 대해 의견이 없다.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그걸 굳이 깊게 생각할 필요도 없는 것 같다. 어찌 됐든 사실은 하나다. 죽으면 이승에서 주어지는 기회는 그걸로 끝이다. 무지무지 아까울 것이다.  더 나아진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 거라는 생각만 하면 발을 동동 구르게 될 것이다. 그러니 나는 부정적인 생각은 당장 집어치우고 하루하루 불안감과 맞서 싸우기로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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