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물음에 대한 나만의 답
이 책을 처음으로 읽고 나서는 도저히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오로지 '페미니즘'인지에 대해 생각해 보면서 상징적인 것들의 의미를 가늠할 수가 없어 낙담했다. 하지만 한강 작가가 자신의 책에 대해서 답을 제시하는 것이 아닌 질문을 던진 것이라고 말하는 걸 보고 1학년 때 받았던 소설 창작수업이 떠올랐다. 질문을 던지는 것 또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다. 모든 소설에는 메시지가 있고, 작가가 꼭 답을 낼 필요는 없다. 영혜가 가부장적인 성향을 가진 아버지와, 자신의 순종적인 면과 평범함을 좋아하는 남편, 그리고 자신을 성적 대상으로 바라보는 형부에 대해 가지는 감정들은 사회에 의해 억압받는 사람들의 감정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사회적 약자일 수도 있고, 작가의 배경으로 보면 군사정변 때 죽은 사람들일 수도 있다. 여하튼 지금은 정부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입이 틀어 막히는 사람일 수도 있을 것 같다.
읽는 내내 불편했던 건 맞다. 답답하기도 했고, 과연 영혜가 상징하는 건 무엇일까 고민했지만 가면 갈수록 미궁 속에 빠지는 듯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자유로워지고 싶어 하지만 자신을 그렇게 두지 않는 현실 때문에 미쳐간다는 것을 표현한 것은 확실하다고 생각한다. 우리 또한 많은 억압을 받고 살아가지 않는가. 그 억압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면, 아니 드러내기만 해도 물어뜯는 사람들이 존재하며 힘을 행사하려는 사람들이 아직까지도 존재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때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가만히 있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뭐라도 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누군가 나를 특정한 이유, 혹은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존중하지 않고 억압해 올 때, 나의 가치관을 부수려 하고,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이 인정받지 못할 때 과연 모든 현실에서 벗어나 우리는 당당하게 나설 수 있을까. 우리들의 자아를 지킬 수 있을까.
세상의 모든 차별과 억압은 언제쯤 개선될 수 있을까. Angèle - Balance Ton Quoi라는 노래가 떠오른다. 고민을 하지 않을 듯싶다. 지금껏 억압이 당연하다고 생각해 오거나 살아온 배경이 그렇다면 습관처럼 타인에게 이끌린 삶을 살아갈 수도 있고, 정당하지 않다고 생각해 그 생각과 감정을 마음껏 쏟아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의 답은 적절하게 드러낸다는 것이다. 내가 현재 대학생 시위에, 촛불 집회에 참여하지 않는다고 해서 나중에도 그러지 않을 거란 소리는 아니다. 대학에 들어가서 내가 이끌리는 대로 할 것이다. 물론 분함을 느낀다. 이와 관련된 소설도 창작하고 있다. 시대를 비판하고, 2030 세대의 고뇌를 잔뜩 넣은 대학생들의 입장에서 쓴 사회의 이야기를 만들고 있다. 아직은 구상 단계에 머물지만 나는 나만의 방법으로 세상에 외친다.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을 누가 받아들여 주기를 바라지도 않는다.
다만 한 번뿐인 내 삶에서 나는 내가 원하는 선택을 하고 하고 싶은 것들을 하고 죽고 싶을 뿐이다. 채식주의자에서 영혜가 벗어던진 브래지어는 나에게 속박의 매개체는 아니다. 소설에서는 그런 상징을 가지지만 나에게는 그것보다는 앞으로 마주칠 다양한 벽들이 속박이다. 남녀차별(여기에는 남자가 당하는 차별도 포함되어 있다. 개인적으로 그 부분이 많이 미화되어 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여자라서 안 되는 것들이 있다면 받아들일 수 없지만 당장 할 수 있는 게 없다면 그 생각이 박살 날 수 있게끔 나는 세상에 글로 소리칠 것이다. 나는 질문은 하지 않는다. 당연한 것을 사람들이 외치게 하는 세상이 아니라 애초에 당연히 지켜져야 할 것들이라는 제대로 된 생각을 박아버리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표현의 자유, 집회의 자유, 그리고 성평등의 자유는 당연히 지켜져야 하는 것들인데 무너져 내리고 있다. 기본적인 것들을 억압하는 사회구조는 없는 게 낫다.
이 작품을 읽으면서 각자의 '브래지어', 그리고 '맞아 죽은 개' 등은 무엇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사회가 억압하는 그것들에 질문을 던져야 한다. 자유는 지켜져야 하고, 가끔은 무섭고 잔인한 세상이라도 포기하지 않고 건강한 정신으로 살아가기 위해서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 중간점검을 끝없이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인생의 일시정지 버튼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나는 너무 많이 눌러서 이제는 시작 버튼을 누르고 달리려고 한다. 그러다가도 잘못된 게 있고 반복되는 신호가 보이면 주저 없이 누르고 성찰할 것이다. 나를 억누르고 있는 게 무엇이든, 그게 나 자신이든, 사회든, 차별이든 멈춰서 생각하고 또 생각할 것이다. 그보다 중요한 건 행동이라는 걸 누구나 알고 있다. 그 행동에는 용기와 자기 확신, 자아 효능감이 필요하다. 그걸 쌓기 위한 노력을 평소에 하자. 제대로 살기 위해서. 우리는 살아가면서 얼마나 많은 것들을 놓치며 살아가는가. 제대로 바라보고 해결해나가려 하지 않으면 결국에는 발을 헛디뎌 더 크게 다치고 만다.
그러니 천천히 걸으며 꼼꼼히 살피자. 터져 버리고 나서 수습이 불가해지기 전에 말이다. 우리 자신이 알아차려야 한다. 자아를 누구에게 빼앗기고 있는지, 그걸 어떻게 되찾을 수 있을지는 개인들만이 답을 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