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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주의자 독서감상문

by 몽도리

영혜에게는 두려운 과거가 있다. 자신에게 사납게 굴었다는 이유로 흰 개를 죽인 아버지는 폭력적인 성향을 지니고 계셨고, 영혜는 그 영향으로 두렵고 가두고 싶은 무의식이 자신의 마음속에 자리 잡았다. 성인이 되고 결혼까지 하고 난 후에도 평범한 여자로 살아가고 있었는데 계속 꾸는 꿈들과 촉진제가 되는 남편의 가부장적인 태도, 억지로 고기를 먹이려 폭력을 휘두르는 아버지에 의해 그 무의식과 공포는 폭발해 금식이라는 행동 양상으로 이어진다. 결국 시간이 지나도 해소되지 않는 것들은 때론 옅어지지 않고 다른 계기들로 하여금 삶에 다시 나타날 수 있다. 그나마 처제를 이해하는 듯했던 형부조차도 영혜를 그저 예술의 피사체, 성적 대상으로 대하게 되고, 영혜는 이 시점에서 정서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이는 없다고 생각해 희망을 저버린 것 같다고 생각한다. 가장 큰 문제는 영혜가 이렇게 된 것에 대한 문제의 본질을 아무도 들여다보고 진심으로 해결하려 하지 않는다. 본질을 모르는 건지도 모르겠지만 그들은 어렴풋이 느끼고는 있었을 것이다. 영혜의 마음속의 응어리의 존재를 말이다.

이미 입어버린 무의식 속의 상처는 어떻게 치유될 수 있을까... 누르고 사느냐, 표출하느냐의 차이일 뿐, 우리는 저항의 감정을 가슴깊이, 무의식 속에 있는 자아와 연결하여 가지고 있다. 억누르려 할수록 강해지는 것들을 타인이 반드시 이해해야 할 의무는 없지만 잠자코 들어줄 필요는 있지 않을까. 파국에 치닿아 그 사람이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기 전에 말이다. 꿈을 꿨다는 말과 자신은 고기를 먹지 않는다는 말을 계속 되풀이하던 영혜는 결국 고기 외의 그 무엇도 먹지 않게 된다. 아무도 자신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영혜의 말은 슬프게 다가온다. 감정과 트라우마, 아픔은 해소되어야 한다. 그것도 제대로 말이다. 우리도 트라우마, 콤플렉스, 상처가 각자 존재할 것이다. 하지만 바쁘다는 이유로 그저 방치하며 숨기려고만 하고 있진 않은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사회의 시선 때문이든, 바빠서든 무슨 이유이건 간에 마음의 응어리가 눈덩이가 비탈길에 굴러 커지는 것처럼 되어 버리면 돌이키기란 무척 힘들다. 자신의 삶의 어느 부분에서 나타날지, 터져 나올지 예상할 수 없다. 가족들은 외부적인 것 혹은 표면적인 이유들로 영혜의 갑작스러운 변화를 추측했다. 손디아의 노래인 '어른'에 나오는 가사처럼 '아무도 내 마음을 들여다보려 하지 않고' 그저 그녀의 행동을 뭐라 하고 미쳤다고 치부해 버린다. 마음을 닫아버린 영혜와 가족들의 갈등이 깊어지는 이유 중 하나이다.

꿈은 때로는 신호가 된다. 심리상태에 따라 우리는 다양한 꿈을 꾼다. 불안이 높을 때는 가끔 누가 쫓아오기도 하며, 내가 힘들고 어렵다고 생각한 문제가 직접적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나는 가끔 그 꿈을 기반으로 글을 쓰기도 하고 내 안의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매개체로 사용하기도 한다. 그보다 더 정확히 내 마음을 파악하기 위해 쓰기 시작한 것이 '감정 일기'이다. 그날그날 있었던 일들 밑에 내 감정을 한 줄씩이라도 쓰며, 전부 훑어보는 시점에서 내 감정의 변화를 확인하며 스스로의 정신건강을 챙기는 것이다. 한 마디로 스스로를 위한 처방전 혹은 에너지 드링크 같은 존재이다. 병원에 가면 추천받는 방법이기도 하다. 작중에서는 주인공이 너무 많이 억눌려서 안타까움이 들고, 응어리의 방출의 중요성이 더 두드러지는 것 같다. 건강한 방출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메시지가 다가온다. 요즘 같으면 다양한 치료법으로 인해 조금이나마 해소가 되지 않을까 싶다. 무엇보다 타인의 슬픔을 가벼이 여기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영혜의 남편은 꽤 가벼이 여긴 것 같다. 더 제대로 알아보기를 거부한 것일 수도 있다. 무엇이든 빨리 해결해서 원래의 상태로 되돌리려고 소리만 꽥꽥 지르는 다른 인물들과 마찬가지고 사회의 삭막한 현실을 투영한 캐릭터라고 생각한다. 우리 모두 너무 참고, 묻어두고, 외면한 채 살아가지 말자. 그래야만 모두 건강하고 행복한 미래를 꿈꿀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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