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어서기 위해서...
학원과 학업을 병행한 지 세 달째, 육체적 정신적 한계가 왔다. 내가 겨우 이 정도인가. 족저 근막염과 몸살에 몸부림치면서 내 체력을 탓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고등학생 때 공부 안 할 때 운동이나 좀 할걸. 그러면서 내 안의 공허함을 없애기 위해 가지고 있는 삼 백만 원을 음식과 사치에 낭비했다. 열심히 모은 돈이었다. 쓸 때는 그게 느껴지지 않았다. 행복은 역시나 그때뿐이었고, 나는 구차하게 부모에게 손을 벌려야 했다. 그러면서 부모님은 그 돈을 다 어디에 썼냐고 물어봤고, 나는 순간 화가 나 날카롭게 대했다. 부모님은 상처를 받은 듯하며 내게 화를 냈다. 나는 학원 일이 마친 후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침대에 꼬박 하루를 누워있었다. 밥도 거르고 약도 안 먹었다. 그리고 갑자기 토요일, 부모님이 뜻밖에도 마침 구조를 오셨다. 많은 음식과 생활용품을 가지고 말이다. 나는 본가에 가자마자 엄마한테 혼날 줄 알았다. 하지만 엄마는 혼내지 않겠다고 하시며 나를 근처 카페로 데려가셨다. 거기서 나눈 엄마와의 대화는 가히 충격적이었다.
나는 아빠한테 내가 벌어서 쓴 돈이니 신경 쓰지 말라고 했는데 아빠는 그때 이미 우울증 증상을 보이고 있었던 것이다. 엄마는 내게 울면서 어떡해야 하냐고 어떻게 해야 아빠를 병원에 데려갈 수 있겠냐며 가부장적이고 자존심이 센 아빠를 걱정하면서 나보고 울면서 부탁했다. 첫 째, 내 자유를 어느 정도는 포기할 것, 둘째, 동생에 대해 더 관심을 가져달라는 것, 마지막, 아빠의 우울증이 낫기 위해 같이 노력해 달라는 것. 나는 월요일에 내 진료를 보면서 병원 선생님께 자문을 구하기로 했다. 엄마는 동생에게도 미안하다고 했다. 오빠랑 나한테 쓴 돈 때문에 동생은 가고 싶은 학원을 갈 돈이 없다. 엄마 아빠 앞에는 평생 갚아도 못 갚을 빚이 생겼고 오빠랑 나는 그들이 원하는 명문대를 못 갔다. 그래도 엄마는 후회하지 않는다고 했다. 다만 자책을 하셨다. 그렇게 해서 현재 그들이 이렇게 된 건 아닌가 몰래 우리에게 교육 투자를 하신 게 아빠한테 미안하다고 하셨다. 이런 말을 해서 또 미안하다고 하셨다. 엄마도 우울 증상을 보이셨다.
딱 보였다. 엄마 아빠 둘 다 가면 우울증 증상이었다. 둘 다 죽고 싶어 하고 최근에는 나도 힘들어서 액팅 아웃을 했다. 근데 부모님도 똑같이 되어 가고 있었는 줄은 꿈에도 몰랐다. 더 이상 울고 싶지 않았다. 본가에 돌아갈 때는 눈물이 말라 아무 감정이 없는 채로 갔는데 아직도 흘릴 눈물이 많이 남은 것 같았다. 나는 엄마한테 연신 미안하다는 말을 들으면서 아빠의 바람에 의해 '모바일 펜스' 위치 추적 앱을 깔았다. 그러고는 애써 괜찮다며 언제든 불안하면 어디 있냐고 전화해서 물어보라고 했다. 나라도 정신 차려야 했다. 이제는 내가 힘이 되어줄 차례다. 나는 아빠에게 내 돈이지만 다 쓰고 사치해서 미안하다고 하기로 했고, 아빠 카드는 이제 반납하기로 했다. 그리고 엄마 말처럼 계속 그렇게 써대면 빚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하게 되고, 자신이 보증한다며 빚으로 시작한 생은 빚으로 끝난다고 하셨다.
그래서 난 이제부터는 죽어도 아껴 쓰기로 했다. 가족한테 미안했다. 가족이 우울의 늪에 빠졌다. 특히 아빠가. 아빠와 기질이 같은 나는 그게 얼마나 지옥 같을지 알았다. 그래서 잠시 내가 힘든 건 잊기로 했다. 엄마의 이야기를 듣는 내내 내 고민은 고민도 아니었고 그 무게도 겨우 새발의 피 정도였다. 내가 지금 힘들다고 아빠한테 징징거리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엄마는 애써 매일 웃으며 아빠가 나쁜 생각을 먹지 않도록 아빠 밭도 얘기해서 없애 버렸고, 매일같이 어딘가로 아빠를 데려가려 하셨다. 왠지 최근에 이곳저곳 많이 가는 이유가 그것이었다. 근데 엄마도 무너지고 있었다. 난 가족한테 짐을 주면 안 되는데 나는 그렇게 다짐만 하고 있었다. 처음으로 엄마의 옆집과의 비교에 정신이 차려졌다. 오빠와의 비교도 마냥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아마 나는 지금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든 티핑 포인트에 다시 서게 됐는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더더욱 포기할 수 없다. 모두 제자리로 되돌려 놓을 수 있다. 다시 행복해질 수 있다. 그러니 하던 건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이 고난의 지점을 타개하고 앞으로 나아가 희망을 다시 바라볼 것이다. 가난도, 우울도 다 이겨내고 말 것이다. 나도, 우리 가족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