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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적 자립의 연장선

공허감과 함께 다가온 자신감

by 몽도리

또 아침에 늦잠을 자고 말았다. 사실, 눈을 뜨면 세상이 멈춰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몸을 일으키기가 너무 힘들었다. 매일 간신히 시간에 맞춰 일어나 대충 씻고 미친 듯이 달려 강의실에 도착했었는데 이제는 그럴 여력도 없었다. 문득 엄마가 한 말이 떠올랐다. "재벌도 너처럼은 안 다니겠다. 니 돈이든 아빠 카드로든 택시는 절대 다시는 타지 마. 안 그러면 카드 막아버릴 거야." 그 말을 잊은 게 아니었다. 그냥 안 타면 망할 것 같았다. 결국 탔고, 그 이후로 엄마, 아빠 각각에게 카드를 반납하겠다고 톡을 한 뒤, 그 뒤로 아빠 카드는 단 한 버도 쓰지 않고 있다. 다음에 내려갈 때 아빠 카드를 반납할 계획이다. 사실 전부터 이렇게 됐어야 하는 거였다. 이 참에 교통비, 통신비, 생활비 전부 내가 책임지기로 결심했다. 토익으로 얻은 장학금도 받을 예정이고 학원 알바도 하고 있으니 괜찮을 것이다. 거기에 국가 장학금 받고 학자금 대출받으면 무리도 아니다. 내가 그전에 스트레스받는답시고 폭식에 사치를 부렸을 뿐이다.

나는 한숨을 쉬다가 문득 몇 달 전 엄마가 맥도날드로 날 데려가서 진지한 얘기를 했을 때가 떠올랐다. 엄마는 내 앞에서 정말 무너지는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무의식적으로 날 가스라이팅 했다. 전형적인 '스케이프 고트'로 자란 나는 그 죄책감에 한동안 다시 우울증상이 악화되었고 돈이 없어서 동생을 학원에 보내지 못한다는 말에 한 달에 오 만원씩 동생에게 용돈을 주고 있다. 그리고 두 달 후, 동생은 부모님이 또 빚을 내서 수학학원에 보낸 것 같았다. 그렇게 아빠도 우울하고 자신도 우울하다던 엄마는 상황이 조금 나아지자 나에게 돈을 헤프게 쓰지 말라고 폭풍 잔소리를 하셨다. 그리고 여전히 우울증을 극복하고 있는 내 앞에서 취업에 대한 과도한 걱정을 하시며 살을 빼라고 하셨다. 어디서 보셨는지는 모르겠지만 다른 건 다 갖췄지만 과체중으로 매번 면접에 떨어져 우울증에 빠져 자살시도를 한 여성의 예시를 들며 말이다. 그런 사람들이 사실 연구결과에 따르면 확실히 입사 후 둔한 모습을 보인다고 하셨다. 나는 그 얘기를 귀담아듣지 않았다고 잘 걸렀다고 생각했다. 맞다. 부모님의 말 그대로 나는 내가 듣기 싫어하는 얘기는 너무 듣기가 싫다. 그 말들이 아픈 이유는 현실이고 진실이기 때문이다. 내 정신이 약해져 있을 때 나는 한없이 타인의 말을 투영하며 그게 맞다고 그대로 믿어버린다. 그럼 그 아픈 말들은 진실이 되어 자책으로 되돌아온다.

그 악순환이 지속되면 내 우울증은 낫지 않는다. 그 때문에 예전에는 내가 사회를 제대로 살아갈 자신이 없다는 생각에 생을 마감하려 했었다. 그런데 생을 마감할 자신도 없었다. 그걸 깨닫고 나서는 살아남기 위한 방법을 찾으려 노력했다. 회피를 끊어내고 자해도 그만하고 많이 나아졌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최근에 들어 자해, 번아웃, 우울증이 심해졌다. 그래도 예전처럼 침대에서 잠만 자진 않았다. 물론 3일 정도 그 상태다가 그 후 일어나서 도서관에 가서 밤을 새우며 공부했다. 고스족 마녀 자아도 도움을 줬다. 고스족스럽게 다크 한 레드 립에 창백한 화장에 어두운 눈가를 하고 내가 아끼는 해골 귀걸이와 반지를 하고 나가서 아무렇지 않게 공부를 했다. 문제는 '정동'이었다. 정동이란 잊어버렸다고 생각한 어떤 상황에 남아 달라붙어 있는 감정을 말한다. 사람은 자신이 수치스러워하거나 싫은 기억은 잊어버리려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그때 느꼈던 감정이 올라오면 자연스레 그 사건은 다시 기억난다. 내가 맥도날드를 더 이상 안 가는 것처럼 말이다. 버거도 안 먹는다 이제. 정동 때문에 신경증, 즉, 신체화 증상이 나타났고, 이는 '마음의 문제' 과목, 즉, 심리학 과목을 공부하면서 조금씩 회복해 나갔다.

하지만 서서히 자립을 하고 더 이상 가족과 전화도 안 하다 보니 가족과 멀어지기 시작했다. 카드를 반납하면 오빠도 더 이상 부모님께 왜 자신은 내 나이 때 카드 안 줬냐고 불평하지 못하겠지. 내년이면 나도 스물셋이다. 23살이 되기 전 겨울, 나는 온전한 자립을 꿈꿨다고 할 수 있다. 이제 겨우 오빠랑 비슷한 경지에 이르렀을 뿐이지만. 더 이상 나를 나약하다고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물론 이제 뭐라 하든 상관이 없어졌다. 듣고 싶지 않으면 안 만나고 안 보면 된다. 선택적 회피이자, 부적 강화라는 걸 알지만 더 이상 다치기 싫다. 학원 업무는 점점 재미와 행복과는 멀어진 채 성인의 의무와 책임으로만 다가왔고, 나는 돈을 벌어야 했기에 푼돈이라는 생각에도 1년은 더 버틸 생각으로 시험기간에 수업 계획서를 작성하고 있다. 그리고 이젠 정말 아껴서 학자금 대출과 국가 장학금만으로 버터야 하는 시기가 왔다. 할 수 있다. 내가 스트레스니 뭐니 핑계 대며 충동소비만 하지 않으면. 다행이다. 연애 같은 거 일지감치 접어버려서...(실제로 할 때도 돈이 제일 아까웠다) 다이어트하기로 마음먹었으니 폭식은 이제 용납할 수 없다. 또한, 우울증 약값이 비싸게 느껴지고 아깝다.

그러니 억지로라도 나아져 보려 한다. 신경성에 우울에 취약한 성격이라도 외부 변수에 의해, 노력에 의해 충분히 바뀔 수 있다. 선물로 가족에게 주려던 팔찌랑 써뒀던 편지랑 함께 아빠한테 카드를 반납할 생각이다. 엄마한테도 편지는 줘야지. 이제 자주 내려가지 않을 구실도 생겼다. 더 이상 버스값이 없기 때문이다. 내가 나를 고립시키고 있는 것을 보니 번아웃에서 가벼운 우울로 넘어간 듯하다. 하지만 항상 그랬듯 난 나만의 방법으로 일어나겠지. 이번에는 어떤 방어기제가 내 CBT에 알맞을까. 회피는 끊어내기로 했다. 장기로 치닿는 부적 강화는 파멸이기 때문이다. 승화를 선택하기엔 영감이 떠오를 상황이 아니다. 룸메를 하자던 나보다 두 살 어린 동기는 나에게 점점 더 의존적으로 변해간다. 요즘에는 톡을 안 읽는 척을 하지만 한 번 답장해 주기 시작하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까지 나에게 도와달라고 한다. 초반에 경계를 잘못 설정한 듯하다. 어쩌다 룸메까지 하겠다고 했을까... 후회막심이다. 나는 그 동기의 엄마가 아니다. 친구고 비슷한 고민도 가지고 있지만 때론 모든 걸 나에게 물어보고 의존하는 게 조금 지치기도 한다. 그래서 거리를 두고 싶었는데 쉽게 되지 않는다. 이에 대해서 주지화는 조금씩 쓰고는 있지만 머리가 피곤하다. 어떻게든 또 찾아내겠지. 그렇게 나안의 화학반응을 조절하며 또 살아가겠지. 그게 인생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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