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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삶은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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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이쩡 Jun 26. 2024

이직은 부럽다


늘 서랍 속에 사표를 놓고 산다. 

는 옛말은 변한 것 하나 없이 우리는 여전히

마음속에 사직을 꿈꾼다.


시대가 바뀌고 세상은 좋아졌지만 변하지 않는 근로자의 삶.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해서 더 잘하게 되었어도 좋아하는 일을 선택해서 행복하게 되었어도 늘 고비라는 녀석이 찾아온다.

하물며 하기 싫은 일을 해내야만 하는 상황이란 정말이지 끔찍하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면서부터 이직이나 창업이라는 뜨거움보다는 적응과 안정이라는 미지근함에 익숙해졌다.

한 직장을 10년을 넘게 다니면서 그래도 인정받으며 석사까지 마쳤기에 나름 자부심도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업무는 많아졌고 다양해졌다.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소위 멀티태스킹이 되는 사람이었지만 다른 말로 하면 한 가지에 깊이가 없는 것저것 다하는 사람이었다.


이직을 해야 할까? 싶어서 정말 오랜만에 구직사이트를 들어갔다. 하지만 내 예상과 달리 현타라는 것이 왔다.


나는 도대체 어디로 직을 해야 할까?

업무 범위가 이렇게나 다양하고 세부적인데

난 무엇을 잘할까? 무엇을 좋아할까?

육아와 일을 병행하려면 어떤 조건이 좋을까?


수많은 물음표가 해결되지 않은 채 들어간 구인사이트는 그야말로 외계어 난무한 어지러운 공간이었다. 그렇게 가끔 힘들 때마다 찾아간 구직사이트는 나에게 또 다른 길이 아닌 막다른 길처럼 더 혼란스럽게 들곤 했다.


그러던 어느 이었다.

동료들과 점심을 먹는데 한 동료가 갑자기 정말 예고 없이  회사를 그만둔다고 다. 그 누구보다 밝고 또 밝은 동료였기에 더 의아 처음엔 믿지 않았다.


"에이, 거짓말이지? 오늘 만우절가?."

"아니에요. 진짠데. 진짜예요. 하하하 "


긴가민가한 나의 얼굴에 그녀는 담담히 얘기를 이어나갔다.


"그렇게 됐어요. 준비는 오랫동안 하고 있었어요.

그러다 잘돼서 ○○자동차 HRD팀에 합격했어요.

여기는 7월까지만 근무할 거예요."


떡볶이를 함께 먹고 있었는데 이상하게 갑자기 입맛이 사라졌다. 왠지 모를 부러움과 왠지 모를 부끄러움으로 빨간 떡볶이만큼 내 볼이 상기되었다. 


"축하해. 진짜 잘됐네.

어쩜 이직을 해도 엄청 좋은데 들어가고. 정말 잘됐다!"


"사실 작년부터였어요. 제 일도 아닌 것을 바쁘다는 이유로 계속 투입시키는 것을 보고 그때부터 움직여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다 떨어지고 하다가 우연찮게 이곳에 넣었는데 통과해서 피티도 하고 면접도 봐서 드디어 합격했어요. "

그녀는 담담하게 말했다. 분명 축하하는데 부러웠다.


'연봉도 높겠지?

거기는 바쁘다고 일을 밀어 넣지는 않겠지?

다른 사람도 다 그렇게 여러 가지 하고 있고 우리 상황이 힘드니 이해 좀 해달라며 달래진 않겠지?'


결과도 결과지만 무엇보다 부러웠던 건 그녀의 용기와 추진력이었다. 나는 변화의 문 근처에서 용기가 없어 계속 서성이고 뒤돌기를 반복했는데 그녀는 달랐다. 물론 그녀는 아직 아이가 없지만 나와 비슷한 업무를 하며 한 팀에서 몇 년을 소통하였기에 더욱이 비교가 되었다.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정의의 용사는 아니더라도

이건 아니다 싶어도 나서서 말하기 점점 힘들어졌다.

잘한다는 칭찬과 위로로 십여 년을 달려왔는데도 여유보다는 긴장과 불안으로 뒤섞인 회사생활에 요즘따라 회의감이 이 든다.


그래도 이렇게 좋은 동료들이 있었기에 소위 십여 년을 넘게 버텼다고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다. 하지만 그녀들이 더 나은 삶을 위해 떠나는 현실을 턱 하니 마주하니 왠지 마음이 멀미하듯 울렁이는 것 같았다.


'나는 아이가 있으니 지금처럼 양해를 못 구할 거야.'

'새로운 사람들 새로운 업무에 적응하는 건 힘들겠지.'

'이처럼 좋은 동료들은 새로운 곳에서 또 못 만날 거야.'


안 되는 이유로 버텨온 오랜 세월에 짧고 묵직한 진동이 울렸다. 그 진동의 여파가 용기로 뻗어갈지 또 다른 타협으로 잠잠해질지 나조차도 알 수 없다. 하지만 그녀의 용기에 비로소 내 남은 삶, 남은 일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시작되었다.


부러워만 하기에 인생은 짧다.

브라보 마이 라이프 앤 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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