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한 방향으로 흐르는 시간 속에 산다. 그 말은 우리가 우리에게 시시각각 다가온 사건을 분류해서 이미 벌어진 일을 기억의 방에, 앞으로 벌어질 일을 상상의 방으로 넣어 둔다는 의미이다. 시간의 수직선에서 왼쪽 끝과 오른쪽 끝은 과연 그 끝이 어디인지는 알 수 없으나 두 양 끝이 서로 만나지 않는다는 점만 확실하다. 그리고 그 사이에 있는 우리는 끊임없이 다가오는 사건의 컨베이어 벨트 위에 서서 고작 한 두 가지 정도의 작업만 하는 수습공이다. 수습공은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서 사건들을 어루만지지만 그들이 사건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것은 극히 일부분이다. 컨베이어 벨트가 계속해서 움직이는 한, 그러니까 우리가 ‘지금’에 속해 있는 한은 사건을 면밀히 바라볼 여유가 주어지지 않는다.
‘스타크래프트’라는 게임에서는 인류에 비해서 문명이 비약적으로 발달한 프로토스라는 외계 종족이 등장한다. 그들이 인류와 크게 다른 점은 ‘칼라’라는 통합된 정신 체계를 공유한다는 점이다. 프로토스 종족들은 머리 위에 신경다발이 크게 발달해있는데 이 신경다발을 통해 프로토스 종족원 모두와 즉각적으로 생각, 감정, 추론, 기억을 공유한다. 이것을 통해 프로토스 종족 구성원들은 공동의 선을 위한 행동을 최우선 순위에 놓고 모든 일들을 진행할 수 있다. 그리고 ‘칼라’는 이미 죽은 선대의 프로토스들의 기억도 모두 축적되어 공유된다. 각각 프로토스 종족원들은 곧 프로토스 전체와 동일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프로토스 구성원 중 하나가 프로토스의 미래에 대한 예언서에서 공허를 발견하게 된다. 일종의 허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같은 감정이 칼라를 통해 공유되면서 프로토스들은 종족의 미래를 불신하게 되고 다른 외계 종족(저그)에게 종말 할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마치 건강하고 활동적인 사람의 암세포 전이가 노인에 비해서 빠르듯이 그들의 통합된 정신 체계가 그들 스스로를 효율적으로 오염시키게 된 것이다.
결국 그들은 자신의 머리에 있는 신경다발을 스스로 끊는다. 이제 그들은 서로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어떤 감정에 휩싸여있는지 알 수 없다. 위기의 상황에 질문할 선조들의 지혜도 구할 수가 없다. 그들은 수습공이 된 것이다.
우리가 시간 속에 있다는 말은 곧 ‘역사는 부정확한 기억이 불충분한 자료와 만나는 지점에서 빚어지는 확신’이라는 문장을 살고 있다는 말과 같다. 토니가 마지막까지 지금 벌어지는 일들의 감을 잡지 못하는 모습을 보며 우리 수습공들은 그를 마냥 미워할 수는 없다. 소설이 우리가 했던 실수와 후회와 왜곡된 기억과 의도하지 않게 타인에게 상처 준일들을 떠올리게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계속해서 지금을 산다. 부정확한 기억은 추억이라고 부르고 불충분한 자료를 관점이라고 말하고 우리 자신의 확신은 생각에 대해서가 아니라 의지에 대해서만 한정하기로 약속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