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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간의대지 Apr 09. 2021

[영화] 콜드워 - 초월하는 마음

[영화] 콜드워 (Cold war) 리뷰

삶을 이루는 모든 것이 갖는 한계가 우리를 질식시킨다 하더라도 그것을 기꺼이 거역하고 초월할 수 있는 무엇이 혹시라도 있다면, 그것은 사랑이라고 선언한다.


역사가 퇴보하지 않았다는 주장을 하려는 사람들은 아마도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얼마나 개인의 자유가 커졌는지 증명해야 할 것이다. 영화 콜드워는 개인의 자유가 온갖 수단으로 이용되던 시대에 서로를 품에 안으려 헤매던 두 남녀의 뜨겁게 재가된 시간을 흑백 화면에 담았다. 영화의 역사적 배경이 되는 냉전시대는 한 발의 핵폭탄으로 끝난 이전의 전쟁과 다르게 수억 명의 발화하는 감정을 억압한 정신의 흑사병이었다. 영화의 도입부에서 전통 민요를 부르는 사람들은 마음속에 생겨난 감정을 따라 노래하고 행동하지만 냉전시대는 사람들의 감정을 이념의 거푸집으로 사용한다. 역사를 살던 사람들은 자신들의 시대에 어떤 이름이 붙을지 몰랐고, 반대로 현대를 살고 있는 우리는 역사의 목차에 붙은 시대의 이름은 알았지만 그 날을 살아본 적은 없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우리가 누리는 자유에 대해 기억해야 하는 것이 있다. 역사를 극복한 것은 그 시대의 사람들이고 우리는 역사를 초월함에 있어서 그들에게 갚을 수 없는 통행료를 빚지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하이-칼라 시대의 우리가 초월해온 색채 없는 시대에서 빅토르와 줄라는 참을 수 없는 사랑의 감정을 따르려 한다. 줄라가 앳된 얼굴로 노래하는 모습을 보고 첫눈에 반한 빅토르가 줄라의 손길에 이끌려 프레임 밖으로 걸어 나가는 영화의 종반부까지 두 사람은 15년 동안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한다. 오랜 기간 동안 두 사람이 함께한 시간보다 떨어져 있던 시간이 훨씬 더 길었을 것이 분명하지만 영화는 떨어져 있었던 시간을 보여주지 않는다. 두 사람의 짧은 재회 뒤에 오랜 이별의 아픔이나 그들이 서로가 없는 경계의 건너편에서 그리움을 달래는 방식이나 보상 없을 기다림이 가져온 파국의 시간을 카메라에 전혀 담지 않는다. 대신 몇 차례 두 사람이 자신을 내던져서 얻어낸 필연적인 재회의 순간을 마치 우연히 들른 것처럼 그러나 강렬하게 보여준다


90분이 채 되지 않는 이 영화가 불필요한 색채를 담지 않으려고 다짐했다면 그 방식은 두 사람이 서로에게 갖는 지배적인 감정을 그대로 따르는 카메라의 움직임이다. 빅토르는 줄라를 단지 “내 인생의 여자”라고 말하고, 줄라는 빅토르와 함께하기 위해서 자신을 포함해서 모든 것을 버릴 수도 억지로 가질 수도 있다. 영화는 그런 두 사람이 재회하는 순간을 스냅숏처럼 보여준다.  우리가 보는 장면들은 두 사람이 실재한다면 간직했을 법한 기억의 앨범처럼 보인다. 


두 사람은 서로를 너무나 사랑한다. 왜 그런지, 무엇이 어쩌고 저쩌고 어떠하든지 명백히 사랑한다. 그들은 온갖 흑백들 위에 선 고유한 색깔이다. 그 밖에 다른 모든 조건들은 강력한 감정의 선언 앞에서 의미가 없다. 두 사람은 사랑하기 위해 필요한 방식과 거쳐야 하는 관문의 어려움, 그리고 금지된 경계를 넘었을 때 그것이 가져올 파괴와 상실에 대해서는 고민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영화 또한 그런 장면에 관심이 없다. 카메라는 마지막 장면에서 두 사람이 더 좋은 경치가 있는 곳으로 걸어가자 두 사람을 놓아준다. 인터뷰에서 감독은 사랑에 초월성을 부여하고 싶어서 그런 장면을 찍었다고 말했다. 초월의 반대편에 한계가 있다. 우리는 반대편에 산다. 영화는 2~3시간 분량의 네모난 화면이 그 한계일 것이다. 영화가 삶에 대한 것이 듯이 삶도 시간과 공간의 한계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러나 콜드워는 보여준다. 줄라와 빅토르가 네모난 화면의 한계 밖으로 걸어 나간 후 남겨진 땅에는 바람이 분다. 콜드워는 말한다. 삶을 이루는 모든 것이 갖는 한계가 우리를 질식시킨다 하더라도 그것을 기꺼이 거역하고 초월할 수 있는 무엇이 혹시라도 있다면, 그것은 사랑이라고 선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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