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인간의대지 Oct 24. 2021

시간을 늦추는 레버

짧은 이야기

내가 한 시절의 순간을 생생히 기억하는 이유가 오직 그 애만이 내게 기억할만한 말을 했기 때문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 말은 너무나 흔해 빠져서 책에서 보더라도 밑줄을 칠만한 감흥을 주는 부분도 없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질리지도 않고. 그 말을 하곤 하는지. 시간이 빠르다는 말. 물론 단지 어떤 말이 참신하지 않고 조금 싫증이 난다고 해서 말하지 않을 수는 없을 것이다. 가령 미안한 마음을 전하고 싶은데 멋지게 말하느라 오히려 그 반대되는 마음, 너를 박살내고 싶다는 식의 의미를 전달해서는 곤란할 것이다. 그때는 정확성이 중요하다. 반대로 내 마음은 너를 박살내고 싶지만 미안하다고 말해야만 할 때도 있을 텐데 그때는 시의적절성이 필요하다.  어떤 말의 생명력이 정확성과 시의적절성 중에 어느 하나라도 갖췄느냐에 달렸다면 시간이 빠르다는 말의 인기비결은 압도적인 시의적절성이 아닐까. 배고플 때 배고프다고 말하고 사랑할 때 사랑한다고 말하듯이 시간이 어떻다는 말은 시간을 보내는 중이라면 (살아 있는 동안이라는 말과 같을 텐데) 언제나 어울리는 말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내가 기억하는 그날의 대화는 시간이 빠르다는 말이 왜 그렇게도 정확한지에 대한 정확하지 않고 기억할만한 난센스였다.


“그건 그렇고 시간 참 빠르다”

“그 말 왜 안 나오나 했다. 너는 2차만 오면 그 얘기를 하더라. ”

“이거 다음 공연 때 내 주문으로 삼을 거야. 뭔가 스페인어 같은 걸로 하면 멋있지 않을까?” 


우리는 대학교 마술 동아리에서 처음 만났다. 캠퍼스의 여러 학과 학생들이 모두 가입할 수 있었는데 학년 당 10명이 체 안 되는 규모였다. 솔직히 말하면 열심히 마술에 열정이 있는 사람은 회장을 비롯한 소수였고 우리는 축제 공연 준비를 제외하고는 술 마시는 게 주업이어서 마! 술! 하면서 잔을 부딪히곤 했는데, 참… 그때는 그런 것조차 재밌었다. 당연히 마술을 본업으로 삼을 정도의 실력이 되는 사람은 없었기 때문에 우리는 마술로써 모이기 이전의 우리에 더 어울리는 길로 흩어졌다. 나는 통계학과를 졸업하고 한 해 걸러 카드사에 취업했다. 선의의 거짓말을  행하던 동아리에서 물건을 팔기 위해 악의적으로(?) 사실을 분석하는 일을 하게 됐다고 나 할까. 그리고는 어. 어. 하다 보니 (나름 열심히 했다) 결혼도 하고 애도 낳고 삼십 대 후반이 된 지금이 될 때까지 대학교 때 연습했던 마술은 모두 잊어버렸다. 스무 살의 내가 한쪽 문으로 들어가자 반대쪽에서 지금의 내가 튀어나오는 순간이동 마술을 한 것을 제외한다면 말이다.   


“너 시간이 왜 빠른지 알아?”

“무슨 호킹이니 하는 박사님들 얘기 꺼내고 싶은 거면 사절이다”

“아니 아니, 이건 난센스 퀴즈라고. 오히려 네가 전문이잖아”

“난센스가 내 전문이야?”

“응 몰랐어? 좋아 내가 그 이유를 알려줄게. 시간은 뭔가 추상적이지만 우리 입장에선 일주일 묶음을 계속 이어 붙인 것과 다를 바 없단 말이야. 일주일이 왜 그렇게 빠른지만 알아내면 시간의 비밀은 쉽지.”


어차피 난센스라고 고백하고 시작했으니 어떤 바보 같은 설명이든지 일단 진지하게 반박하는 대신 가볍게 응해주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합리적이고 과학적으로 말이 되는 설명이라면 오히려 잔뜩 실망하게 되는 것. 그게 난센스의 존재 이유 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 한건 파란색 포차 테이블을 마주 하고 앉아 다 식은 가락국수 국물을 떠먹기 바빴던 당시에는 떠오르지 않았다. 그때는 내가 일찍 취했거나 마법에 홀렸기 때문에 그랬는지 그 애의 눈이 밤공기를 들이마시고 무언가 삶의 대단한 비밀과 같은 것들을 뱉어낼 것 같았다.  


“평일에는 일을 하거나 학교에 가야 하잖아. 모두가 그렇다는 게 아니라 어쨌든 다수를 기준으로 본다면 말이야. 뭔가 해야 되는 일들을 하는 날, 그게 평일이야. 평일에 사람들이 어때? 앉으나 서나 빨리 주말 되라고 기도하잖아. 거의 전 지구적 기원이지. 몇십억 되는 사람들이 시시각각 강력한 시그널을 보내는 거야. 그러면 듣고 있던 우주가 가만히 있을 수 있겠어? 평일을 참는 사람들의 인내심도 한계가 있고 우주도 듣고만 있기에는 한계가 있는 거 아니겠어? 이건 우주가 윤리적일 필요도 없는 거야. 참을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지. 그래서 별 수 없이 시간을 빨리 돌려주는 거야. 알았다. 알았어. 내가 졌다. 하면서.” 그 애는 정말 시간을 빨리 돌리는 기계가 있는 것처럼 허공에 레버를 내리는 시늉을 했다. 


“좋아 그래 뭐 그렇다고 쳐. 참을 수 없는 우주의 입장 인정. 그럼 주말은? 주말엔 다들 시간이 천천히 흐르기를 바라잖아. 일요일 4시의 우중충한 마음이 그 증거지. 우주가 왜 주말엔 인내심이 높아지는 거야?”  옛날부터 나는 관심이 갈수록 공감은커녕 질문을 연발하는 나쁜 습관을 가지고 있었다.


내가 말을 하는 동안에 그 애는 준비한 말을 당장이라도 하고 싶어서 가까스로 참고 있었다. 한시도 말을 하지 않고는 견디지 못하는 애가 용케 참고 있는 표정을 보니 이제 곧 결론이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 애는 술을 한잔 따라주더니 여유롭게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건 사실 주말이 진짜 너 어어어 무 짧아서 그래. 주말이 고작 이틀밖에 안되잖아. 7일 중에 2일뿐이잖아. 아무리 사람들이 평일에 지쳐서 애원하고 기도해도 고작 2일 가지고는 천천히 돌려주고 늘려주고 아껴 쓰고 그런 것도 없는 거지. 그렇게 짧으니까 시간이 아무리 뭉그적 거리려고 해도 금세 지나쳐 버릴 수밖에 없는 거야”


뭐야 그게. 반칙 같은데. 나의 황당한 얼굴을 앞에 두고 그 애는 웃었다. 그 이상한 가설은 곱씹어 볼수록 빈틈 투성이었고 같은 논리를 완전히 반대로, 즉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이유로 적용할 수도 있었다. 그렇지만 웃음은 전염되었고 나는 아직 모든 일에 숨겨진 비밀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대학교 2학년이었다. 


졸업 후 5년쯤 지났을 때였나. 나는 그 애가 갑자기 교통사고로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장례식장으로 향하는 고속도로에서 그날의 대화를 오랜만에 떠올렸다. 그 후로 나는 종종 그 난센스에 대해서 생각했다. 자른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 발톱이 길어서 아래로 말리기 시작할 때. 오늘이 무슨 붕괴 사건으로부터 몇 주기되는 날이라는 기사를 우연히 보았을 때. 지난번 생일에 받은 기프티콘 선물을 아직 쓰지도 못했는데 별 수 없이 생일이 또 다가와 있는 것을 보았을 때. 그리고 오랜만에 엄마와 아빠를 만나면 쪼그라든 것 같은 그들의 몸을 볼 때. 그러니까 내가 쏜살같은 시간에 뒤쳐진 걸 느낄 때마다 나는 왠지 너무 일찍 죽어버린 친구의 웃는 사진이 걸려있던 곳으로 달리던 순간을 떠올리게 되고 그 당시에 떠올렸다는 이유 때문에 자연스럽게 그로부터 더 멀리 떨어진 한 시절의 농담을 기억해내곤 했다.


아직 찬 기운이 남아있는 3월의 운동장 옆으로 가지런히 놓인 보도블록을 따라 딸애의 손을 잡고 대강당으로 향했다. 딸이 걱정했던 것만큼 떼쓰지는 않아서 마음에 여유가 있었다. 입학 선물로 사준 디즈니 운동화가 소용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아내는 아침에 중요한 회의 때문에 입학식에 맞추어 아슬아슬하게 도착할 것 같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나는 입학식에 행패를 부려서라도 끝나지 않게 할 테니 천천히 운전하라고 보낸 뒤 계속 걸었다. 알록달록한 그림과 예쁜 말들이 적힌 담장을 따라 일찍 핀 개나리 가지가 바람에 흔들리자 손을 흔들어 환영하는 인파처럼 느껴졌다. 손 잡은 가족들이 옆으로 줄지어 걸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강당 앞에 도착했을 때 나는 별수 없이 시간이 참 빠르다고 느꼈다. 


만약 그 애도 죽지 않고 살아서 5일의 평일과 2일의 주말을 계속 살았다면 어땠을까. 무엇이 되고 누군가의 존재가 되는 동안 그 애도 문득 시간이 너무 빠르다고 느꼈을지도 모른다. 그러면 나는 그 시절에는 별 다른 말을 덧붙이지 못한 농담에 한마디 거들어 줄 수도 있을 것이다. 사실 시간은 우리가 그때 느끼던 것보다 훨씬 빠르더라고. 그 이유는 우리의 시간이 실제로 우주 안에서 너어어어어어무 짧기 때문이라고. 우주적에서 바라보면 우리가 삶에 머물던 시간은 그야말로 반. 짝. 하는 순간이라고. 어쩌면 그래서 너의 삶이 그렇게 짧았는지도 모르고, 나는 이렇게 남아 순간을 떠올린다고 말이다. 


처음으로 평일을 겪게 될 아이들이 삐뚤빼뚤 줄을 섰다. 딸이 사실은 집에 가고 싶은 마음을 참다못했는지 나를 향해 뒤를 돌아보았다. 기억할만한 일이겠지. 조금 울 것 같은 표정이 안쓰러웠지만 웃으며 손을 흔들어 주었다. 시간을 천천히 흐르게 하는 레버라도 돌리는 듯이 계속 흔들었다. 

[끝]

작가의 이전글 천일야화(2)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