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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간의대지 Oct 24. 2021

검진 (2)

짧은 이야기


다시 잠에서 깨니 한 시간 반 정도 지났다. 코를 코는 소리도 없어지고 어둠은 더욱 짙어져서 눈 뜬 것과 감은 것의 차이가 크지 않다. 6개의 병실을 담당하는 당직 간호사가 앉아있는 건너편 높은 선반 위에 유일하게 빛을 내고 있는 디지털시계가 소리를 내는 대신 깜빡인다. 눈을 감고 있어도 붉은빛이 눈꺼풀을 넘어서 내게 그것을 알려준다. 나는 다시 눈을 감는다. 의식적으로 감은 눈이 조금 떨리는 것이 느껴진다. 눈도 오른쪽 팔만 고정하고 침대에서 뒤척이는 내 몸의 일부이다.  어딘가에 집중할수록 또렷해지는 정신의 습관은 빨리 잠들려는 일에도 적용되었다. 잠은 자꾸만 멀어지고 잡념들이 따라왔다. 


여전히 고양이에 기대는 편이 더 도움이 될 것 같았다. 키운 지 3주 정도밖에 되지 않는 이 녀석은 이미 고양이를 키우고 있는 대학교 같은 과 출신 친구 훈이 나를 유기묘 센터에 데리고 가면서 키우게 되었다. 집에서 부모님과 함께 지내는 훈은 집에도 이미 2마리의 고양이를 키우면서도 자기 여자 친구마저 집사의 길로 인도했다. 지금의 여자 친구는 모르겠지만 내가 아는 그의 전 애인 두 명이 각각 고양이와 강아지를 키웠고 이제는 나까지 설득했기 때문에 나는 그에게 공무원이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내가 보기에 훈은 무언가 정수기 렌탈 사업이라든가, 학원 강사라든가, 컨설팅이나 상담가가 된다든가 아니면 차라리 무슨 종교이든지 간에 선교사를 하는 편이 어울렸다. 그러니까 세상의 일들을 양분해서 흩어진 걸 모으는 일과 퍼뜨리는 일이 있다면 후자를 택하는 것이 여러모로 적성에 맞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그런 사람이다. 물론 훈이 가진 재능이 큰 영향을 미쳤겠지만 내가 그의 갑작스러운 설득에 못 이긴 척 넘어간 이유는 집을 비워도 혼자 잘 지내는 게 고양이의 성격이기도 했고, 내가 떠나간 곳에도 숨을 쉬는 무언가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어릴 적 엄마는 개나 고양이를 키우지 못하게 했다. 결벽에 가까울 정도로 깔끔한 성격의 엄마는 방 안에 숨 쉬는 존재가 너무 많으면 공기가 탁해진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런 답답함 때문이었는지 아빠는 집에 아주 늦게 들어오거나 들어오지 않는 날도 많았다. 그런 날은 술을 잔뜩 마신 아빠가 덜 소화된 안주를 조금씩 타서 내뱉듯이 숨을 크게 내쉬며 현관문을 두드렸다. 그런 날의 노크 소리는 겨울 주말에 자다가 갑자기 열린 창문으로 들어오는 바깥공기를 마신 것처럼 너무 맑다 못해 차가웠다. 그런 날은 평소에는 말이 없던 아빠가 엄마에게 말을 많이 하기 시작해서 끝내는 싸움으로 번졌다. 그러면 아침을 기다리는 나의 밤은 쓸데없이 길어졌다. 방문 너머로 오가는 엄마와 아빠의 격앙된 목소리는 한 때는 눈이었으나 여러 번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며 비대해진 얼음 덩어리 같았다. 겨우 몇 달의 태양으로는 완전히 녹일 수 없는. 그나마 기억이라고 할 수 있는 게 남아있는 아홉 살부터 그런 모든 것들이 지겨워져 이어폰만 끼고 살던 고등학교생이 될 때까지 나는 밤마다 익숙한 싸움에 놀라 깨어서는 한참을 잠들지 못하곤 했다. 엄마와 아빠가 과연 내가 정말 자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지 그럴 겨를이 없었는지는 알 수 없다 아빠는 엄마가 늘 별것도 아닌데 너무 과민 반응한다고 했고 엄마는 아빠가 늘 자신을 무시한다고 했다. 두 사람의 대화는 각자 그런 요지의 마음을 다른 식으로 바꾸는 것이 전부였다. 바깥에서 돌아온 아빠는 집안이, 안에 있던 엄마는 바깥이 더 좋은 곳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엄마와 아빠는 종종 나에게 서로에 대한 흉을 보면서 은근히 공감을 요구했으므로, 나는 그 사이에서 판단하지 않는 성격이 되었다. 내가 어느 한쪽의 손을 들어버리면 정말로 가족이 깨져버릴 것 같은 생각이, 그때는 심각하게 들었기 때문이다. 무관심으로 달아나고 판단을 유보함으로써 나는 좋은 것과 나쁜 것을 적극적으로 나누지 않게 되었다. 뭐든지 그럴 만한 일이 될 수도 있었다. 


***


아무래도 다음에는 그의 목에 방울을 달아 두는 편이 좋을 것 같다. 본격적인 설정을 이야기해야겠다. 슈 로드는 이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25살의 혁명가이다. 물론 그가 처음부터 혁명가로 태어난 것은 아니다. 그가 살고 있는 신성 룩 스웬 제국은 완벽한 감시의 철저한 계급주의 국가로서 불과 3%도 되지 않는 성직자와 귀족이 나머지 97퍼센트를 이루는 평민과 노예 계급을 지배하고 있다. 빛의 신을 숭배하는 섬나라 룩 스웬 제국은 성직의 자체 조직인 ‘빛의 재단’과 귀족 합의체 기구인 ‘붉은 벽돌’이 막대한 규모의 군대를 소유하고 있다. 이 군대는 제국을 둘러싼 거대한 바다를 넘어 침입해오는 온 코젠 시티의 그림자 사냥꾼들로부터 제국을 수호한다는 명목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그렇지만 실상은 절대 다수인 평민과 노예를 지배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다. 물론 아주 드물게 발견되는 평민과 노예 중에서 신체적인 능력이 초월적인 무력계 유망주들이나 정신이나 자연계열의 초능력을 사용할 수 있는 일부 돌연변이들이 이 군대로 편입되기도 한다. 그들의 훈련 방식은 아주 혹독해서 훈련을 받기 시작한 교육생들 중 90% 이상이 능력을 발현하는 과정에서 죽는다. 


슈 로드의 동생은 무력계 유망주였으나, 훈련 과정에서 죽게 된다. 이것이 슈 로드가 혁명대를 조직하고 실질적으로 지배층에 대립하는 트리거 포인트가 된다. 물론 그전에 성직자와 귀족의 불합리한 지배를 보여줄 수 있는 에피소드 (어린아이가 무고하게 희생되는 뭔가 그런 에피소드)를 넣을 필요가 있겠다. 슈 로드의 동생은 훈련을 마치고 임관을 앞둔 시점에서 ‘붉은 벽돌’의 고위급 회의 내용을 듣게 되는데 사실 온 고젠 시티라는 외부의 침입 국가는 지금은 존재하지 않으며, 외부로부터의 침입은 천년이 지나도록 없었다는 사실이다. 성직자와 귀족은 지배의 편의성을 위해서 허상의 적을 상정한 것이다.라는 내용의 편지가 뒤늦게 슈 로드에게 전해질 것이다. 입부분에 대해서는 메트릭스와 멋진 신세계 그리고 1984를 참고할 필요가 있겠다.) 동생이 반역죄로 처형되고 슈 로드는 유형생활을 하게 된다. 


***


의사로부터 입원해서 검사를 받으라는 얘기를 들은 건 삼 일 전이었다. 회사는 매년 직원들이 의무적으로 건강검진을 받도록 하고 있는데 대부분의 직원들이 신경 쓰지 못하고 있다가 기한이 다가오는 11월에야 뒤늦게 받는다. 나도 회사에서 안내한 기한으로부터 며칠 남지 않은 시기에 와서야 검진을 받았다. 사전에 예약된 병원은 회사가 있는 여의도 인근에 다섯 군데나 되지만, 몰리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위 내시경을 위한 금식이 만드는 집단적 허기 때문인지 많은 사람이 몰리는 검진 센터 안의 광경은 점심시간과 다를 바 없어 보였다. 여의도의 점심시간은 정말 놀라울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여러 건물에서 나와서 식당가로 쏟아져 들어간다. 그 인파는 정말 징그러울 정도로 많아서 개미떼가 먹이를 가져오기 위해 어딘가로 향했다가 돌아오는 행렬 같이 느껴진다. 호주나 캐나다의 시골에 사는 어떤 사람이 그 장면을 이해하려고 해 본다면 점심시간보다는 다른 상황을 가정할 것이다. 만약 지진이 났다면 이 인파는 재난 상황에 대피하는 사람들로 보였을 것이다. 만약 그들이 어떤 정치적인 목적을 전달하기 위해서 혹은 어떤 정치적인 목적으로부터 벗어나려는 목적에서 모였다면 정치적 신념에 대한 대규모 집회가 되었을 것이다. 혹은 그보다 더 적극적인 방식으로 저항하기 위해서 모였다면 그것은 혁명을 위한 운집처럼 보였을 것이다. 사실 그들은 단지 배고픈 사람들일 뿐이다. 배고팠다가 배부를 사람들, 곧 배부른 사람들이 인파를 과장 없이 설명할 수 있는 말이었다. 나는 그 인파 속에서 그저 배고픈 것뿐인 것이 조금 초라하게 느껴져서 더 빨리 걸었다. 


***


유형 생활 중에 슈 로드는 남은 혁명의 시대에서 중요한 역할들을 하게 될 많은 동료를 얻게 된다. (각 조력 인물 별로 능력과 성격을 드러낼 수 있도록 조명하는 에피소드를 넣을 필요가 있겠다. 그런 편이 각 캐릭터에 이입하도록 하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다.) 그들은 혁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하나씩 쓰러져갈 것이다. 고전적인 수법이지만 그런 편이 극적인 재미를 위해서나, 실제로 작품을 써 내려가는 상자로서 역할을 할 것이다. 게다가 주인공에게 감정을 이입시키는 방법 중에는 주인공의 적들과 주인공의 아군을 어떻게 무너뜨리고 다시 일으켜 세우느냐 하는 것이 효과적 이리라고 판단된다. 아마도 실제로 영화를 찍거나 소설로서 쓰려고 할 경우에는 역사적으로 프랑스혁명을 주도했으나 공포정치로 끝났던 로베스피에르의 전반기 시절 사료들을 참고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어쨌거나 슈 로드와 그 일행들은 크고 작은 전쟁 (협곡의 요새를 무대로 한 거대한 전쟁에서 슈 로드는 직접 미끼의 역할을 수행하여 좁은 험로로 적들을 유인하여 전쟁을 승리로 이끈다. 아마도 슈 로드가 혁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흔들릴 때마다 그의 멘토(그는 원래 성직자 계급이었으나, 노예와 사랑에 빠졌던 것 때문에 귀족 협의체로부터 강제로 헤어지게 되고 그녀는 유황 광산으로 강제 유배당한 일을 계기로 자경단 활동을 시작했다.)로부터 들은 말을 머릿속으로 상기하거나, 연설에서 응용하는 장면도 필요할 것이다. “슈 로드여, 오직 무모하다고 불리던 행동들 중에서만 훗날 용기로 불리는 것들이 피어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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