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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 Story Nov 25. 2021

살다 보니,
엘에이는 진짜 사막이더라

그래서 구름을, 비오는 날을 좋아합니다

내일 11월 25일은 미국 추수감사절, Thanksgiving Day다. 아기들이 커서 대학을 간 시간만큼 미국에 살고 있다. 미국 이민을 온 첫 해 추수감사절에 대한 기억은, 아니 감정은 ‘외로웠다’이다. 엘에이에 아는 사람이 없어서 우리 가족 넷이서 정처없이 차를 몰고 주변을 돌아다녔다. 

iStockphoto.com

나의 첫 번째 미국 방문은 대학 졸업하자마자 한 달 동안 여행을 하기 위해서였다. 두 번째는 어학연수를 위한 1년 반 동안의 방문이었다. 세 번째는 남편과 함께 어렸던 애 둘을 데리고 2005년 아예 이민을 왔다. 


친정 식구 중 유일하게 나만 한국이 아닌 곳에 살고 있다. 나만 혼자 떨어져 살기에 간간히 한국 가족들에게 소식을 전해야 하는 의무가 있었다. 사이월드(cyworld)에 사진을 올리며 친정 식구들을 안심시켰다. 당시 사이월드는 몇 년 동안 한국 가족과 친구들과의 소통을 위한 훌륭한 역할을 했다. 딸이 조금 크자, 미니미에 옷 갈아 입히는 일은 그 애 차지가 되었다. 알다시피, 미니미 머리 위에 기분을 나타내는 그림을 설정할 수 있는데, 딸은 기분이 좋지 않은 날에도 절대 구름을 클릭하는 법이 없다. 하늘이 두 쪽 나도 해 아님 하트다. 가르쳐 주지 않아도 구름은 딸에게도 부정적인 이미지인 모양이었다. 

엘에이는 겨울이 우기다. 그래서 어렸던 딸내미가 안 좋아했던 구름이 자주 낀다. 보통 빠르면 10월 중순께부터 비가 내리곤 하는데, 올해는 11월 말인데도 비 소식이 없다. 엘에이에 몇 년간 가뭄이 들어, 앞마당 잔디에 물 주는 것도 금지되었던 때가 있었다. 이후 이삼 년 비가 좀 내리더니, 작년부터 또 가뭄이다. 그래서 엘에이 주민에게 비소식은 희소식이다. 


남편이나 나나 부모님 밑에서 어려움 없이 공부했고, 결혼했고, 딸과 아들을 둔 평범한 삶을 그럭저럭 일구며 물 흐르듯 살았다.  우연히 미국에서 사업 기회가 마련되어 주위 사람들로부터 ‘대단한 용기’라는 말을 들으며 타향살이를 시작했다. 그러나 엘에이 공항에 발을 내디뎠을 때까지, 아메리칸 드림 주인공의 정착 초기 고생담 같은 진부하기 짝이 없는 이야기가 바로 내 것이 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어린 아이 둘을 데리고 낯선 곳에서 정착하기도 힘든 일이건만, 사업 계기를 제공했던 가까운 친척과 오해가 생겨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다는 신파극 서막이 올랐다. 쓰디 쓴 그 무엇이 가슴 깊숙한 곳에 자리잡기 시작했다. 상처받은 마음을 품고 며칠 밤 잠도 제대로 잘 수 없었다. 고민 끝에 한국으로 다시 돌아갈 생각으로 물건들을 중고시장에 내놓기도 했다. 그런데 한국 아파트에 세입자까지 들인 마당에, 여기서 살 방도를 최대한 찾아본 다음에 돌아가는 게 후회가 없을 것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됐다. 이전에 방문했을 때 주위에서 영주권 스폰서를 해주겠다고 미국에서 살라는 권유를 두어 번 받았었는데, 그때는 미국에 살 생각이 없어서 영주권 귀한 줄을 몰랐다. 이래저래 영주권 스폰서를 해주겠다는 분들을 만났지만, 뭔가 풀리지 않아 한동안 괴로운 시간이 지나갔다. 

정착 초기 누구나 겪는 일이라고, 그보다 더한 일도 겪었다는 이민생활 100단 되는 고수님들 조언과, 다윗의 절절한 시편을 위로 삼아 외롭고 막막한 시간을 견뎠다. 이미 막 올려진 우리 가족 신파극 배경은 낮게 내려 앉아 떠날 기미가 없는 ‘구름’이었다.  캄캄하다고, 터널처럼 답답하다고, 왜 이런 흐리고 구질구질한 날의 연속이냐고 불평하면서, 내일은 또 어떤 구름이 내 머리 위에 떠 있을까 하면서 낙담했다. 뭔가 해결점이 보이지 않던 어느 날, 성경 민수기 9장을 읽게 되었다.


“이틀이든 한 달이든 일 년이든 그 구름이 성막 위에 머물러 있을 때에는 이스라엘 백성이 진에 머물러 떠나지 않았으나 그 구름이 떠오르면 행진하였다(민9:22).”


하나님이 당신 백성을 친히 보호하고 인도했던 장치는 바로 구름이었다.  사이월드 미니미  머리 꼭대기에 떠 있는 것과 같이, 내 머리 위 회색 구름은 미국생활이라는 광야에서, 기후적으로도 사막인 엘에이 생활에서 나와 내 가족을 보호했던 장치였다. 

미국에 오자마자 신분도, 경제적인 문제도 술술 풀렸다면, 내 인생 전체가 날마다 해 뜨는 맑은 날이었다면, 무성했던 가지가 마르고 땅이 쩍쩍 갈라져 믿음의 뿌리마저 다쳤겠다는 생각이 든다. 흐림보다 더 견디기 어려웠을지도 모를 뙤약볕을 피할 수 있도록 내 인생 중간쯤에 구름을 드리워 주신 하나님께 비로소 감사할 수 있게 되었다.


구름 잔뜩 낀 배경으로 시작한 신파극은 이제 막이 바뀌어 중간쯤 온 거 같다. 벽 같았던 여러 문제가 해결되었고, 그동안 아이들도 거의 성인이 되었다. 앞으로 이 극이 어떻게 이어지고 끝날지는 모르겠으나, 이곳에서 뿌리내리고 살아야 할 아이들에게 햇빛 비치는 맑은 날을 마냥 좋아하지는 않아야 하며, 또 구름이 어둡고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라고 담담히 말할 수 있다. 이미 우리 아이들도 깨닫고 있을 것도 같다.


2021년 11월 엘에이는 여느 해보다 따뜻하다. 이번 겨울에는 구름 낀 흐린 날이 작년보다 많기를, 또 그 구름이 비를 뿌려 가뭄을 해소시켜 주기를, 햇볕으로 타들어가는 인생들에도 그래 주기를...


Getty Center에서 바라본 어느 흐린 날 웨스트 엘에이(West 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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