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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 Story Apr 06. 2022

"왜 이해하려고 해요?"

심리적 바운더리 치는 나만의 방법

어느 날, 인터넷 한 사이트에 올라온 동성애에 대한 글을 읽게 됐다. 오래된 일이라서 동성애를 지지한 내용인지, 아니면 반대한다는 것이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그런데 거기에 달린 댓댓글 하나가 고민하던 인간 관계 방법에 있어 명쾌한 답을 내게 해주었다.


동성애를 비판하면서 '그들을 도저히 이해하지 못 하겠다'는 댓글이 달렸고, 그 댓글 아래 댓댓글이 하나 달렸다.

"님이 왜 그들을 이해하려고 하세요?"


정신적으로 미숙했던 시절에는 바운더리 개념이 없었다. 그래서 다른 사람 감정에 휘둘릴 때가 많았고, 그 때문에 에너지와 시간을 낭비했다. 내가 그때 왜 그랬을까, 상대방은 왜 나한테 이럴까를 필요 이상으로 생각하다 보니,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보고 판단할지에 신경이 쓰여, 본질을 똑바로 인식하기 힘들었다. 넓은 마음을 가지고 성숙한 인간으로서 살고 싶었으나, 그렇게 사는 건 어려웠다.


내가 어떤 인간 관계에서 힘들어 했던 건 바로 이해하려고 노력했기 때문이다. 이해하려고 하면 할수록 상대방한테 말렸었다. 갈등이 생기면 상대방을 이해해 보기 위해 나를 바꾸려고, 혹은 상대방을 바꾸려고 노력했다. 그런 노력은 그때뿐이었고 시간이 지나면 다시 그 자리였다. 

되풀이되는 비생산적인 사고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첫 번째 단계는 그냥 그는 그런 사람이라고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이해하기 힘든 사람을 이해하지 않아도 되니 얼마나 편했는지! 누군가를, 또는 무엇인가를 이해해 보려고 시간과 에너지를 썼던 인생에서 속박당하던 사고의 자유가 해방을 맛본 느낌이었다. 나와 다름을 이해하지 않아도 된다니... 어떤 강박 같은 것에서 벗어난 것 같았다. 갈등이 있을 때마다 이해해 보려고 문제에 집중하는 질긴 관성을 끊기 위해 노력했다.  


갈등이 생겼을 때, 그 문제에 집중하다 보면 에너지가 방전되기 마련이다. 그 댓댓글의 철학을 읽어내곤, 이해하려고 소비했던 시간과 에너지를 좀 더 긍정적이고 생산적인 데 쓰고 싶었다. 

상대방이 선을 넘거나 옳지 못한 행동을 하는 것은 내가 잘못한 것이 아닐 수도 있는 것이다. 내가 3 정도를 잘못했는데, 상대방이 10을 화를 냈다면, 7은 그의 잘못이다. 나는 3에 대해서는 정중히 사과하면 되고, 7에 대한 책임은 그가 져야 한다. 내가 바운더리를 세운 방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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