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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신앙, 탈도파민 연대기

나의 요가 6) 마음 둘 곳

요가 지도자 과정 하면서 좋았던 건, 16주 동안 매주 일요일에 교육이 진행되었다는 것이다. 그 뜻은 지도자 과정에 웬만한 기독교인이 들어오지 않을 거라는 것이다. 개신교에 나쁜 감정을 갖고 있는 것은 딱히 아니다. 다만 약 10년 전의 내가 적극적인 결심과 함께 떠난 종교가 그것일 뿐이다. 청소년 시절 신앙생활에 꽤 진심이었기 때문에, 처음에 교회를 안 나가게 되었다고 말했을 때 나의 고등학교 시절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친구는 '너 괜찮겠어?'라고 묻기도 했다. 그만큼 나름대로 신앙이 있었고, 믿음이 있었다. 물론 풀리지 않는 의문 또한 숨어 있었기 때문에 더 열렬하게 맹목적으로 믿고 싶었던 것도 있었지만. 내가 채식도 하고 요가까지 열심히 한다고 했을 때 어딘가 뜨뜻미지근한 얼굴을 지었던 우리 이모도 신실한 기독교 신자다.

종교를 떠난 주요한 계기는 세월호 참사였다. 오랫동안 다니던 교회 담임목사님이 신자들에게 정치적인 견해를 피력하거나 관련 활동을 하는 것을 금하는 식의 언급을 많이 했었다. 나는 사회학과 구성주의, 상대주의에 물들어가며 신에 대한 믿음이 아니라, 나만의 신념을 구축하기 시작하고 있었다. 우리 엄마는 그 교회의 권사였고, 아빠는 안수집사였다. 아빠는 매주 교회 헌금 세는 일을 했고 엄마는 선생님으로 있었다. 나름 좋은 대학 들어갔고 신앙도 좋다고 나는 그 교회의 자랑이라면 자랑이었다. 그리고 첫 해외여행으로 세 달 동안 러시아를 다녀왔다. 지금도 딱히 이유를 묻진 않았는데, 집으로 돌아오니 엄마 아빠가 교회를 가지 않고 있었다. 나는 한동안 교회를 나가다가, 굳이 갈 필요 없다는 생각이 들어 이후로는 가지 않았다.

그리고 그렇게 참여하고 싶었던 세월호 집회도 혼자 나가고, 페이스북에도 다분히 정치적인 글들을 쓰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그게 뭐 그리 대단하고 큰 일이라고 그럴까, 하겠지만 어딘가 더 이상 나와 같은 것을 바라지 않는 오래 본 관계들에서 빠져나와 내가 바라는 것에 대해서 행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혼자서 말이다. 대학에서 동아리 활동 같은 걸 딱히 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나는 늘 혼자였다. 가끔은 친구들과 의견이 달라 옥신각신하기도 했다. 그런 토론을 하고 나면 친구들과 술 마시고 담배 피면서 풀어내곤 했다. 내 생활은 오랫동안 공적이고 정치적인 이런저런 이슈들과 공부, 그리고 술과 담배 등 유흥으로 이분되어 있었다.

 


이런 방식의 삶은 신앙생활의 반작용과 같았다. 어딘가에 있을 신의 나라와 지금 여기의 내가 살고 있는 이 나라, 어느 쪽에도 완전히 속하지 못한 사람처럼 살다가 신의 나라에 관심을 끊으니 이 나라만이 내 집이 된 것이다. 신에게 사랑 받는 딸이 되기 위해서 지금 여기의 이슈에는 흐린 눈을 하고 매주 일요일과 작은 용돈의 일부를 헌납하며 교회 밖 친구들과 아주 가까워지지도 못했던 게 한이라도 되었던 것처럼, 나는 불신자로서의 자유를 누렸다. 진지하게 세상을 걱정하며 놀기도 잘 노는, 그런 불신자로 살려고 했다. 각종 도파민을 열심히 추구했던 이 질풍노도의 시기, 불안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그렇지만 이제는 어딘가 나와 다른 믿음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서 느꼈던 것보다는 훨씬 구체적인 불안 속에 있었다.

언제부터 도파민 추구를 하나둘 그만하기 시작했을까. 인과적인 계기라고 하기엔 탐탁지 않지만, 지금의 남편과 연애를 시작했던 시기가 내가 덜 불안해진 때와 대충 겹친다. 먼저 이래저래 나를 괴롭히던 성적 방황을 딱 한 사람과 해결을 보게 되었다! 물론 상대가 하나로 정해졌다고 해서 욕구의 크기가 줄어든 건 아니어서, 한동안 시도때도 없이 남자친구를 괴롭히긴 했다. 거기다 연애를 하니 대학원에서 공부를 하는데도 담배 생각이 안 났다. 공부하다가 딱 정해둔 분량까지 마치고 잠시 나가서 담배를 피며 드는 생각들을 바라보는 걸 좋아했는데, 언제부턴가 담배를 굳이 안 사게 되었다. 쉬고 싶으면 그냥 나가서 잠시 바람 쐬고 기지개를 키면서 드는 생각들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우리가 술을 좋아하는 건 같아서, 술은 딱히 줄일 일이 없었다. 문제가 없었다면 문제가 없었겠지만, 나는 문제가 꽤 있었다. 신앙이라는 양심의 선도 없겠다, 20대 초반에도 마시지 않은 술을 신나게 마셨다. 술을 한 번 마실 때 많이 마셔서 필름이 끊겨버린 적이 많았다. 서울에서 술 마시고 서울에 있는 자취방으로 택시 타고 가던 시절에는 그게 문제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택시비를 낼 돈이 있었고, 학생이라서 다음날 근무를 해야 하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그런데 이십대 후반에 들어서서 서울에서 술을 마시지만 경기도에 있는 집으로 귀가해야 하니까 필름이 끊길 때까지 술을 붓는 습관은 큰 문제가 되었다. 여러 차례 짝꿍에게 꾸중을 듣고, 기억도 안 나지만 어딘가에서 굴러서 한쪽 다리에 부목을 대는 일이 있었는데도 쉽게 고쳐지지가 않았다.


요가를 한 뒤로는 술을 줄이면 요가를 조금만 더 해도 근육이 훨씬 잘 붙는다는 사실 때문에 조절은 했지만, 어쩌다 한번 마실 때 신나게 끝까지 가버리는 습은 없어지질 않았다. 사실상 알코올의존증이라고 해야 맞을 상황이었는데도 말이다. 

근래에 술을 끊자고 결심하게 된 주된 계기는 요가 지도자 과정 덕분에 있었다. 지도자 과정에서 인생에 대한 고매한 깨달음을 얻은 덕분이 아니라, 도반들과의 술자리 때문이다. 숫기가 없어 마지막 즈음에야 동기 도반들과 친근해졌고, 그때부터는 술자리를 무진장 달렸다. 도반들과 술을 세 번 마셨는데, 세 번 모두 제일 끝까지 남아있었고 마지막에 간 곳들에 대해서는 기억이 별로 없다. 첫 술자리의 마지막 술집에서는 가방과 지갑을 두고 나왔고, 두 번째 술자리에서는 동갑인 도반과 서로 뺨을 때리며 꽁트를 했다는데 전혀 기억이 없지만, 그 모습이 누군가의 핸드폰에 동영상으로 저장되어 있다고만 전해 들었다. 마지막 술자리에서는 마지막 술집에 나 포함 세 명밖에 남지 않았는데, 다음날 함께 있던 사람에게 '마지막 자리에서 나눈 얘기들이 너무 좋았다'라고 들었지만 나는 우리가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요가 하는 사람들이 전부 이렇게 말술은 아니다. 다만 내가 요가에 가지던 어떤 태도가 도반들과의 술자리에까지 이어진 것 같다. 요가가 아니었으면 나는 불안도 기쁨도 술로 푸는 유형의 인간이었던 것이다. 요가는 술과는 너무 다른 방식으로 나를 채우는 방법이었지만, 요가보다 술로 사람과 친해지는 게 여전히 더 편했다. 원래의 나보다 훨씬 부드럽고 덜 진지하며, 조금 더 발랄한 술 마신 자아로 관계를 맺는 게. 요가를 할 때의 나는 너무 나 자신이어서, 그저 진지하고 성실하고 조금은 방어적인 인간이라서, 누군가에게 그런 모습으로 다가가고 싶어도 쉽게 친해질 생각을 못했다. 내가 그런 나를 부정할 수는 없지만 딱히 좋아하지 않아서 그랬던 것 같다. 결국 요가로 만난 사람들과 술을 몇 차례 들이붓고 나서야 내가 술로 해결하려고 했던, 신앙에 의존하던 때보다는 손에 잡히지만 여전히 뭐라 콕 집어 말하기 어려운 불안을 이제서야 바라보게 되었다.



술을 이런 식으로 마시지 않기 위해서 캐럴라인 냅의 『드링킹, 그 치명적인 유혹』을  읽어보았다. 거기서 공명되는 문장들을 여럿 만났다. 

"합리적인 겉모습을 유지하는 것은 내게 언제나 중요했다. 나는 기뻐서 마시고, 불안해서 마시고, 지루해서 마시고, 또 우울해서 마셨다."

"충분하다니? 알코올 중독자에게 그것은 생경한 미지의 언어다. 충분히 마시는 일이란 없다. 우리는 언제나 술이라는 보험을 찾고 또 찾는다. 첫 잔을 마시고 따뜻한 취기가 오르기 시작하면 그 다음에는 그 느낌을 지속시키는 것, 그걸 강화하고 증대하는 것, 그걸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나는 그런 순간이 좋았다. 이 세상이 아주 단순한 것들로 환원되는 순간, 나하고 샘, 그리고 술잔 두 개만 있으면 되는 그런 순간들이. 그밖에 모든 것은 배경음악에 지나지 않았다. 술은 내가 마음의 문을 열고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게 하는 최고의 방법, 가장 빠르고 간단한 방법이었다."

"우리는 껍데기에 갇힌 채 생각한다. 술을 마시면 해방된다. 맑은 정신일 때 우리 앞에는 심연이 놓여 있다. 하지만 술을 마시면 그 위로 튼튼한 다리가 생겨난다. 우리는 그저 그 다리를 건너기만 하면 된다."


고작 몇 달째지만 음주량을 크게 줄였다. 술을 끊으면 끊는 거지 줄일 수는 없다는 말도 많이 읽었지만, 나는 줄여보려고 한다. 술을 마시면서 내가 원하는 건 적당히 풀어진 분위기와 결국 함께 마시는 사람과의 관계, 대화, 좋은 시간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으면서. 여전히 요가로 만난 도반들, 오랜 친구들과 어쩌다 한 번씩 조금만 마시는 술을 좋아하기 때문에! 그래서 요가는 잘 하고 있느냐, 여전히 꾸준하고 성실하게 하고 있다. 견갑골 사이 가오리 눈도, 배때지에 희미한 11자 복근도 무럭무럭 자라고 있고, 요즘 새로 어깨 위 삼각근 풍선을 키우고 있다. 술은 아주 가끔 즐겁게 한 잔씩 마시고 있다.




원래 이 방향이 아니었는데... 이렇게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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