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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할 생각은 없어

나의 요가 1) 우르드바 다누라사나의 컴업과 만재 강박

'재능'은 '타고난 것'과 '잘하려는 노력'이 결합된 것으로 우리의 머릿속 깊숙이 자리 잡은 패러다임이다. 그와 연관된 가장 대표적인 신화가 천재나 위인 류의 이야기다. 나는 이제 막 성인이 되었던 20대 초반부터 '위인 아닌 사람'을 인생의 모토로 삼아왔다. 어떤 분야에서든 멋진 사람이 되기를 바랐던 부모님의 뜻에 반하여 꿈도 열정도 없이 최대한 훌륭하지 않게 살겠다는 비뚤어진 결심은 아니었고, 알면 알수록 위인이라 불리는 이들의 삶을 닮고 싶지 않았을 뿐이다. 가만 보니 위인의 뒤에는 그의 빨래를 해주고, 음식을 해다 주고, 귀찮은 행정적인 일들을 처리해주는 누군가가 있었다. 대부분의 경우, 남성인 그들의 어머니나 아내가 그 역할을 감당했다. 어떤 대단한 일이라도 누군가의 희생과 뒷바라지로 이루어지는 것이라면 내 인생에서는 없었으면 했다. 오직 내 몸과 시간으로 할 수 있는 최대한만을 해내겠다는 다짐으로, 나는 단 하나의 대업을 파고들지 않고 많은 가짓수의 일들을 해낼 수 있는 사람이 되기로 했다.

그런데 이 목표는 이내 내게 무거운 숙제가 되었다. 일단 무엇을 하고 안 할지를 매번 신중하게 결정해야 하는 어려움에 자주 부딪혔다. 그때마다 내가 타고나기로 어느 정도 수월하게 할 수 있을 것 같은 일들을 주로 선택했다. 그런데 '할 수 있는' 것들만 하다 보니, 점점 욕심쟁이가 되어 갔다. 나의 목표는 '많은 것을 할 줄 안다'에서 '할 수 있다면 잘해낸다'로 변해갔다. 집안일도 그냥 하는 게 아니라 척척 하고, 일도 척척, 함께 사는 고양이와도 늘 행복해야 했다. 그렇지 못할 거면 시간이 아까우니까 시도도 하지 않는다. 대신 수중의 일을 잘 못하는 경우는 없어야 했다. 그러면 나는 '없는 것 빼고 다 있는' 가게처럼, '할 수 없는 것 빼면 모두 잘하는' 사람일 수 있었다. 어린 나를 천재로 키우고 싶었던 엄마보다 더 심했지… 나는 만재가 되고 싶었다.



요가를 처음 시작했을 때도 먼저 타고난 능력에 기대보려 했다. 많이들 생각하듯이, 나 또한 요가는 유연성이 있어야 할 수 있는 운동이라고 여겼다. 어릴 때부터 비교적 유연한 편이라 대충이라도 할 수 있을 것 같고, '시간이 아깝지 않을 것 같아서' 운동 삼아 요가를 시작했다. 동작의 겉모양을 어느 정도 따라 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에 초반에는 재능이 있다고 자만하기도 했다. 하지만 운동으로 자아 찾기는 오래 가지 못했다. 몇 달 못 가서 작은 어깨 부상을 입었기 때문이다. 유연성을 믿고 생소한 동작을 밀어붙였더니, 큰 근육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해 작은 근육에 무리가 간 것이다. 원래 이 부분이 아픈가? 싶었지만 무슨 자존심인지 아니면 소심함인지 선생님께 제대로 묻지도 못했던 것이 화근이었다. 결국 잠시 쉴 수밖에 없었다. 쉬면서 약간의 겸손함을 되찾은 뒤, 요가를 다시 시작했을 때에는 작은 목표가 생겼다. 다치지 않는 것. 그러기 위해 나는 전보다 노력하기로 했다. 근력이 부족하니, 근육을 늘리자. 나는 요가도 하루 더 가고, 부족한 하체 근육을 키우기 위해 주말에 등산까지 다니기 시작했다.

매일 출퇴근하고 일하는 직장인으로서 운동 시간을 늘리는 건 당연히 쉽지 않았지만, 그래도 몸이 서서히 달라지는 게 느껴졌다. 일단 요가를 다녀온 다음날이면 항상 시달리던 허벅지 뒤쪽 근육통이 사라졌다. 약간 흐뭇했다. 그보다 더 짜릿한 발전도 있었다. 튼튼한 상체에 비해 하체가 다소 부실한 신체 특성상 감히 넘보지도 않았던, 이른바 '컴업' 동작에 성공한 것이다. 컴업은 몸이 뒤집힌 상태에서 두 팔과 두 다리로 땅을 짚고 서는 위를 향한 활자세, 우르드바 다누라사나에서 선 자세로 돌아오는 동작이다. 기본적으로는 뒤집힌 상태에서 그대로 팔다리를 내려 바닥으로 내려가면서 아사나를 마치는데, 컴업은 그 상태에서 허벅지와 코어의 힘으로 뒤집힌 몸통을 똑바로 일으키며 마무리하는 동작이다. 평소처럼 아쉬탕가 시퀀스를 따라가다 스스로도 어떻게 했는지 의아한 상태로 올라섰는데, 그게 너무 기뻤다. 조용히 수련만 하지, 평소 선생님께 질문하고 살갑게 구는 수강생이 못 되는데 얼마나 기뻤는지 첫 요가 선생님께 자랑 삼아 문자까지 보냈다. 내 몸으로는 하기 어려울 거라고 지레 포기했던 동작이었고, 나름대로 다른 노력은 있었지만 이걸 해보겠다고 기를 쓰고 연습했던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기쁨이 더 컸던 것 같다.


나의 재능 패러다임이 깨진 건 그 벅찬 기쁨 다음이다. 온전한 노력으로 얻은 작은 성공 뒤에도 반전이 있었다. 전에 어렵지 않았던 동작이 힘들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부장가사나, 뱀자세를 하면서 처음으로 아랫허리에 무리가 가는 느낌을 받았다. 뱀자세는 요가 시퀀스 사이사이에 게속 반복되는 동작인데, 그때마다 허리가 아팠다. 몇 주를 그 이유를 추적하다 알았다. 타고난 단점을 상쇄하자 이전의 장점이 더 이상 장점이 아니게 되었다는 것을. 인정하긴 싫지만 당연하게도, 인생에 처음 얻은 강한 허벅지는 전만큼 잘 늘어나지 않았다. 그제서야 나의 '만재 강박'은 산산조각 났다. 모든 자세를 잘할 수 있는 완벽한 몸은 선천적으로도 없으며, 후천적으로도 얻을 수 없다. 무언가가 잘 되면, 어떤 것은 잘 못하기 마련이다. 나는 그저 약간씩 변화하는 나의 몸에 적응해가면 된다. 누군가의 헌신 말고, 나 스스로의 힘으로.



2022년 11월, 『들』매거진 1호에 수록된 글을 일부 고쳐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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