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연애가 끝나고 변변치 않은 소개팅을 이어갔던 적이 있다. 소중한 시간을 쪼개어서 나갔음에도 상대방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소개해 준 주선자를 미워하며 그날을 마무리했었다. 나는 몇 번의 반복 끝에 ‘강제 비혼’을 선언하였다. ‘자발적 비혼’이 아닌 ‘강제 비혼’. 내가 선택한 비혼이 아니라 주선자와 소개팅 상대에 의해 강요된 비혼이라는 뜻이다. 이렇게 진담반 농담반으로 강제 비혼을 외치는 나에게 친한 오빠는 항상 이야기했다.
“넌 결혼해야 해. 결혼하지 않아도 누군가 옆에 있어야 해. 너처럼 외로움 많이 타는 애가 말도 안 돼.”
그 오빠가 이야기할 때마다 나를 잘 몰라서 하는 이야기라고 목의 핏대를 세우며 반박했다. 나는 외로움을 타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고, 혼자서도 잘 지내고 시간은 잘 보내는 사람이라고 이야기했다. 그런데 오빠의 말이 맞았다. 프랑스에 도착하고 보름 만에 무너져 버렸다. 외로움을 타지 않고 혼자서도 잘 지내는 나는 한국에 남아있다. 그리고 프랑스에 있는 나는 사무치게 외로움을 느끼는 사람으로 살고 있다.
특히 가족이 너무 보고 싶다. 엄마와 아빠가 너무 그립다. 우리 가족은 독립적인 성향이 커서 일과가 끝나고 모두 집에 귀가를 하여도 각자의 공간에서 시간을 보낸다. 즉 무언가를 딱히 같이 하지 않는다. 그 거리감 있는 가족이 너무 그립다. 오늘은 산책을 하다가 공원에서 자전거 때문에 싸우는 꼬마 형제를 보았다. 그 장면을 보고 있자니 한국에 있는 조카들이 또 보고 싶다. 이렇게 쉽게 무너질 줄이야.
그동안 홀로 여행을 많이 다녔다. 아무도 나를 모르는 낯선 곳에서 온전히 나를 위해 공간과 시간을 쓰는 것이 좋았다. 다른 사람들의 여행과는 다르게 크게 무언가를 하지 않았다. 공원이나 카페에 앉아서 책을 읽거나 일기를 쓰고 햇살을 맞으며 앉아 있었다. 그래서 프랑스에서 잘 지낼 수 있을 거라 쉽게 생각했다. 하지만 여행하던 느낌이 가득했던 보름이 지나자 나는 가족을 그리워하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나이가 들어 부모랑 사는 것은 참 어렵다. 부모와 자식이 독립적인 계체가 되기보다는 하나의 공동체처럼 되어 서로를 깊게 의지하다 보니 생겨나는 감정 소모들이 있다. 한국에서 부모님과 지낼 때는 그게 때로는 힘들었는데 요즘은 그게 너무 그립다. 심지어 집은 조금 넓은 곳으로 이사해서 서로의 독립된 공간을 더 확보해서 같이 살아야 했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프랑스에 오지 않았더라면, 절대 모르는 감정이니 너무 부정하지 말고 이 감정을 잘 누리고자 한다. 내가 발견하지 못한 나의 모습이니깐. 가족을 사랑한다는 감정을 확인한 것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