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고향 오서산
내 고향 청라(靑羅)는 오대산에서 발원한 차령산맥이 차차 세(勢)가 쇠잔하다가 서해를 앞두고 막바지에서 불끈 솟으며 이룬 남쪽의 성주산 연봉과 북쪽으로 갈라져 나간 오서산 사이에 아늑하게 자리 잡고 있다. 성주산은 고향 집 뜰에 나서기만 해도 언제나 바라보인다. 수목 또한 무성하여 이 고장 사람들이 수시로 드나들며 철 따라 산나물 버섯 산과(山果) 약초 등을 채취해 오기도 한다. 느진목이라는 깊은 골에서는 언제나 청량한 물이 끊임없이 흘러나온다. 그 물은 집 앞을 거쳐 멀리 대천 쪽 바다로 빠져나가는, 그야말로 산의 이상적 요소들을 두루 갖춰 내 성장기에 자주 다녔던 곳이다.
이에 반하여 오서산은 우리 마을에서는 꽤 떨어진 편이어서 산 밑까지 걸어서 가기에는 멀기도 하려니와 큰 나무가 거의 없는, 따라서 취할 것도 별로 없는 헐벗은 산이어서 심심하면 바라보기나 하고 지내왔을 뿐이다. 언제인가는 군용기 한 대가 산 중턱에 추락한 사고가 있었다. 그 잔해가 멀리서도 보였다. 할 일 없는 마을 사람 몇 명은 요기 거리를 싸 들고 구경을 일삼아 갔던 적도 있었다.
이러한 정황들이 성인(聖人)이 머무른다는 성주산(聖住山)과 까마귀의 서식처라는 오서산(烏棲山)의 차이로 나타난 것인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오서산(791m)은 인근에서 가장 높아 흔히 표적으로 삼아 왔다. 고향을 향해 기차를 타고 내려가던 시절에는 광천을 지나며 이 산의 웅자(雄姿)가 시야에 비치기 시작하면 다음다음의 대천역에서 놓고 내리는 물건 없도록 마음의 준비를 하고는 하였다.
취미로 산행을 시작하여 전국 이 산 저 산을 기웃거릴 무렵, 서부 충남에서 가장 높이 솟은 오서산을 탐방하고 싶은 생각이 당연히 떠올랐다. 그러나 한동안은 산행지로 알려지지 않아 등산로가 어떻게 나 있는지, 빤히 보이면서도 교통편은 어떤지 그리고 이 산을 다니는 사람이 있나 조차 모르는 상황에서 무작정 찾아 나설 용기는 없었다. 그러나 몇 년 전부터 오서산을 간다는 산악회가 드문드문 나타나기 시작했다. 지상(誌上)에도 ‘정상 부근의 억새와 능선에서 바라보는 서해의 전망이 일품인 산’으로 심심찮게 소개되기도 해서 이번에 오랫동안 별러오던 오서산행 길에 오르게 된 것이다. 이 산의 특징이라는 억새가 보기 좋은 철은 좀 지났지만 마침 이곳을 안내하겠다는 산악회가 있어 생각해 볼 것 없이 따라나서기로 한 것이다.
12월 중순 토요일 서울 시내에서는 종일 눈비가 내려 일요일인 다음날 산 위에는 눈이 많이 쌓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3시간 걸려 현지에 도착하니 전혀 기대와 다른 모습이었다. 상담마을회관 앞에서 바라본 오서산의 전경은 쥘부채를 얌전하게 펼쳐 놓은 듯 가지런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재미있는 현상은 산자락 하단에는 노송도 애송도 아닌, 사람으로 말하면 청소년층에 해당하는 젊은 소나무들이 건강한 푸르름을 과시하고 있는데 중턱 위로는 굵지 않은 잡목들만 앙상했다. 불어 닥치는 북풍에 비명을 지르듯 하는 칼날 같은 큰 소리를 그대로 받아내고 있었다. 파상(波狀)으로 지나가는 소리의 위세만으로는 내 몸이 당장 휘둘려 어디로 인가 날아갈 것 같았으나 그 소리는 다른 골짝에서 일고 있는 듯하다. 지나치는 소리만 요란하고 우리가 타고 오르는 골에는 직접적인 영향은 미치지 않았다.
안부에 올라서며 여기부터는 관목 외에는 큰 나무가 없다. 동쪽 방향 위로는 모양 좋은 바위지대를 위시하여 남쪽으로 길게 이어나간 능선이 이른바 억새군락으로서 황금색을 하고 부드럽게 물결치는 모습이 한 눈 안에 들어온다. 세차게 불어오던 바람은 어느덧 먼 곳의 소리인 양 능선 북쪽에 아득히 남아있고, 남향받이 산자락은 대조적으로 고요하기 짝이 없다. 바람도 즐겨 다니는 길이나 노니는 골짜기가 따로 있는 모양이다.
대체로 흐려있는 날씨지만 터진 구름 사이로 간간이 햇살이 비집고 나와 서쪽 야트막한 구릉 지대 너머로 멀리 갯벌인지 작은 섬들인지 구분이 잘 안 되는 해안이 가물거린다. 갯물이 내륙 쪽으로 파고 들어온 포구와 이어져 형성된 시가지는 광천 읍내로서 지척에 있다. 우리가 어렸을 때 어른들 눈에 거슬리는 짓을 저지르기나 하면 “쟤는 광천 쪽다리 밑에서 주워 왔디야.”라고 자주 놀림을 받던 그 쪽다리는 어디에 붙어 있는지, 정말 있기나 한 것인지 찾을 길이 막연하다. 그러나 산 아래 올망졸망한 구릉형의 야산을 빽빽이 덮고 있는 소나무들은 그 청청함이 더없이 신선하다. 해풍에 늘 씻기며 성장해 온 탓일까?
큰 바위지대에 다다라 턱 높은 바위 위로 기어오른 다음, 널려있는 억새 능선의 좌우를 조망하며 여유 있는 행보를 떼려고 할 때였다. 어디에 숨어 있기라도 한 것인지, 아니면 서해 멀리서 불어오는 것인지, 진원을 알 수 없는 노도와 같은 강풍이 닥쳐와 사정없이 때린다. 모자는 날릴 것 같아 아예 벗어들 수 있었으나 떠밀리듯 하는 몸을 가까스로 가누며 앞으로 나아가는 데는 온 신경이 다 쓰인다. 댓바람에 오른쪽 귓바퀴는 얼얼해지고 체면 불고 하고 맑은 콧물이 흐른다.
이런 산은 봄이나 가을볕이 따스할 때 찾아오는 것인데, 하다못해 여름철에 오는 것이 오히려 나을 텐데 제기랄, 하는 생각이 간절하다. 주로 바람 가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고 능선 남쪽으로 향하다가 정상을 지나며, 서남향 멀리 성주산 연봉이 포진해 있다. 그 사이에 녹색의 끈을 길게 늘어뜨린 형상으로 얕게 깔린 야산 줄기의 끝부분 저편에 자리 잡은 것이 6.25 직후 암울하던 시절 철없이 뛰놀던 우리 고향마을임을 한 눈으로 알 수 있다.
마을에서 바라보기만 하던 산. 바로 그 산 위에 올라 아득한 고향마을을, 마을의 평화를 굽어보는 감회가 코끝이 시큰하도록 저린다. 감상에 젖어 넋 놓고 있는 사이 일행들은 어디론가 훌쩍 떠나버리고 나 홀로 외톨이가 되어 발길을 빨리 띄어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처진 것 같다. 별로 오르내림이 없는 밋밋한 능선을 걸어가는 데도 한 시간쯤은 족히 걸린다. 499봉을 지나 얼마나 내려왔을까? 다시 숲길로 이어지고 앞서간 일행들은 어디로 숨었는지 하나도 보이지 않는 게 다소 불안하다. 곧 멀지 않은 곳에서 부르는 듯한 소리가 은은하여 다시 방향을 잡아 내달을 수 있었다.
목적한 청소면 성연리, 우리 버스가 기다리고 있는 지점까지 줄곧 걸으며 때로는 땀에 젖기도 하였으나 정상 부근 능선에서 질풍을 만나 코끝이 시큰할 정도로 시달렸다.
한기로 움츠러든 몸은 도고온천에 들러 따끈한 천연 유황온천물로 풀었다. 고향 산에 가고 싶었던 묵은 염원은 이렇게 개운하게 이룬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