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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기행(5)

by 김헌삼


불모지에 선 건강한 소나무들

터키는 이스탄불 주변과 에게해, 흑해, 지중해 연안, 동남부 아나톨리아 일부를 제외하고 땅 대부분의 평균 해발고도가 1천 미터를 넘는 고산지대이며, 북쪽으로는 폰투스산맥이 흑해와 나란히 뻗어 나가고 남쪽으로는 토로스산맥이 지중해 해안을 따라 동서로 달리며 솟아있다.

우리는 보드룸을 떠나 파묵칼레로 향하며, 다시 해안도시 안탈리아로 내릴 때와 콘야로 갈 때 이 토로스산맥을 몇 차례 넘나들며 터키의 산악지대가 어떤가를 맛보았다. 산에 자라는 나무들은 대부분 상록침엽수인 것 같았으며, 산 위쪽으로는 잘 자라지 못해 몽땅한 모습의 관목들이 척박한 땅에 점점이 박혀있는 형상이 많이 눈에 띄었다. 그래도 산사태 난 흔적 같은 것은 보이지 않으니, 홍수 정도의 폭우는 없는 것인지 쉽게 무너져 내리지 않는 특수 토양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터키 산야에서 특별히 시선을 끄는 것은 커다란 모필(毛筆) 같기도 하고, 그것을 타고 하늘을 날면 십상일 마법의 빗자루처럼 생긴 측백나무들이다. 에페스 유적 셀시우스 도서관을 나와 대극장으로 향하는 마블거리 가에도, 유적을 벗어나는 길가에도 가로수처럼 무리로 늘어서 있었다. 그 밖에 일반 산등성이에서도 다른 나무들보다 훌쩍 큰 모습으로 우뚝우뚝 서 있었으니 이는 분명 전지하여 가꾼 것이 아니라 천성적으로 그렇게 자랐을 것이란 생각이었다.

산자락으로 키 큰 소나무들이 많이 모여 있는 곳이 심심찮게 나타나기도 했다. 수종도 한둘이 아닌 듯하다. 우리의 적송이나 노송(老松)처럼 그림 소재로 등장할 만큼 아름다운 자태는 아니어도 솔들은 한결같이 싱싱한 푸르름이 넘치는 건강한 모습이다. 기후나 뿌리박고 있는 토양이 체질에 잘 맞는 모양이다.

간간이 나타나는 고원 평지 산간마을에는 주변에 배나 사과, 체리가 들어서서 마침 만개 시기인 듯 동네가 환하다. 아니 온 세상이 빛나 보이게 꽃을 피우고 있었다. 너른 밭에는 웬만큼 자란 나무가 띄엄띄엄 서 있는데 땀 흘려 일하던 농부들이 쉴 그늘막 구실을 하는 것이라 했다. 햇볕은 뜨거워도 그늘은 꽤 시원한 기후조건 때문이다.

간혹 양 떼가 선보이기도 했다. 많을 때가 30마리 정도의 군소집단이다. 그 주변에는 몰이 작대기를 든 늙수그레한 목자(牧者)가 지키고 서 있기도 하고 염소 두세 마리가 양들 사이에 끼어있기도 했다. 양이란 놈들은 움직임이 둔하고, 한 곳에 서서 마냥 먹기만 해서 운동 부족의 부작용이 생기기 십상이란다. 그것을 머리로 받고 밀어내는 습성이 있는 염소가 완화해 주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어쩌다가 머리에 희끗희끗 눈이 남아있는 산이 보이기도 했는데 이들은 3,000미터급일 것이다. 같은 산악지대라도 동반부와 달리 우리가 다닌 서쪽 지역은 대체로 낮은 편이다. 지나치며 만난 꽤 높다는 산이 악사라이(Aksaray) 부근의 핫산 산(3,268m)과 카이세리의 엘지에스 산(3,916m)이었다. 특히 엘지에스 산은 산자락까지 하얗게 눈 덮인 장엄한 모습으로 어두워질 때까지 몇 시간 동안, 카이세리 공항에 도달할 무렵까지 시야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그만큼 주변에서 홀로 높은 산이었지만, 이날 투명하도록 맑은 날씨 덕에 선명하게 볼 수 있었다. 직업상 이 노선을 자주 다니는 버스 기사도 이같이 뚜렷한 엘지에스 산을 보는 일은 드물기 때문에 복 받는 일이라 했다.

정말 우리는 복 받은 사람들이었다. 여행에 있어서 전 일정을 하루도 빠지지 않고 쾌청한 날씨 속에서 기분 좋게 보낼 수 있었으니 이만한 행복이 어디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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