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시카고에서의 하룻밤
일몰을 앞두고, 내시빌 비행편이 취소되었다고 했을 때 막막했지만 앞이 캄캄하지는 않았다. 여기가 미국이기 때문이다. 이락전쟁을 일으켜 국제적으로 많은 비난을 받고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1등 국가로 군림하는 미국이기 때문에 합리적으로 처리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계획이 뻐그러지는 것이 결코 좋을 리는 없지만 새로운 경험에 접하는 이점은 있다. 우리만 당하는 것이 아니고 3,40명이 함께 겪는 것이다. 취소 소식에 일제히 발한 탄성이 모여 한순간 큰 소리가 났지만 불만의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은 단 하나도 없다.
고객서비스센터로 이동시켜 한 사람 한 사람 처리한다. 일일이 대안을 제시해주는 모양이다. 한 건 처리에 많은 시간이 소모되어 오래 기다려야 한다. 기다리면 어김없이 차례가 온다. 민감한 부분이고 우리가 손해를 안 보거나 덜 보는 편의를 받기 위하여 원활한 의사소통이 필요하다. 말의 구사가 자유로운 딸을 불러 처리하는 게 빠르고 정확할 것이다.
결론은 다음 날 아메리칸 에어라인으로 12시 출발이고 숙소는 칸츄리 인 앤 수우트(Country Inn & Suites), 숙박등급에는 3가지가 있는데 내가 제일 싸게 부담하는 것이 39달러짜리라 한다. 차편은 24시간 무료 셔틀이 운행되며 가장 걱정되는, 부쳐버려 미아가 된 짐들은 자동으로 목적지에 가게 되어있다고 했다.
밤은 점점 깊어가고, 이름은 많이 들었지만 그리고 뮤지컬 영화 『시카고』는 봤지만, 생소한 도시 시카고에서 아내가 믿어주지 않는 의사소통수단을 갖고 숙소로 가기 위하여 우선 셔틀이 서는 곳을 찾아가야 한다. 확실히 하기 위해서는 자주 물어봐야 하고 그래도 안심이 되는 것은 아니다. 셔틀스톱은 제법 먼 거리에 있었다. 스톱이 넓게 벌어져 있어 칸츄리 인 셔틀스톱은 어디쯤인지, 정말 오기는 올 것인지 긴장의 연속이다. 이름 있는 홀리데이인, 라마다 그 밖의 다른 이름들을 달고 있는 밴(van)이나 버스는 자주 눈에 띄는데, 우리 것은 눈을 씻고 봐도 좀처럼 나타나지 않는다.
숙소는 얼마나 떨어진 곳에 있는지? 셔틀이 안 오면 어쩌나. 택시를 타는 수밖에 없겠지. 일찌감치 택시를 탈까? 아내에게 넌지시 의사를 떠본다.
미쳤냐고 펄쩍 뛴다. 드디어 반가운 이름이 붙은 밴이 나타나고 숨어있던 동행자들이 어디선지 꾸역꾸역 나타나 7명이 되어 한 차에 탄다. 꽤 멀리 달린다. 택시를 탔더라면 추가비용이 만만찮을 뻔했다.
제일 싼 방을 택한 것이 아내에게 미안하고 은근히 걱정되었는데 그만하면 됐다 싶을 정도로 깨끗했고 오히려 불필요한 더블베드가 하나 더 있다. 떡 본 김에 제사라고 하나 더 있으니 아내는 널찍하게 따로 자잔다. 그대는 여왕처럼 나는 또 다른 조그만 나라의 왕처럼. 그래서 구태여 미국까지 와서 그 첫날밤을 따로 잤는지는 말하지 않겠다.
아침 식사는 어쩔 것인가. 먹는 것은 제대로 하자고, 값이 나가더라도 숙소에서 편히 먹자 대비하고 있었는데 셀프지만 무료제공이다. 실컷 먹어두기로 했더니 막상 입맛에 맞게 먹을 만한 것은 별로 없다.
이튿날 아침 공항으로 다시 나가는 셔틀은 매시간 정시에 있었고 한시바삐 공항에 나가 대비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었지만 약 10여 분의 차이로 9시 셔틀을 그대로 보냈다. 그래도 12시 비행기면 시간 여유가 있으니 걱정까지 할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었으나,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이 한 시간 때문에 다음에 벌어진 일로 인해 또 다른 손해를 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