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우리가 묵은 숙소들
장기간 자동차 여행을 하려면 필수적으로 염두에 두어야 할 세 가지가 자동차연료인 가솔린, 숙소, 식사일 것이다. 가솔린에 대하여는 주유소에 따라 가격을 저마다 다르게 고시하고 있지만 별 차이가 있는 게 아니어서 큰 신경 쓸 것 없이 계기가 반 이하로 내려올 때 어디서든 채우면 될 것이다. 문제는 식사와 숙소인데 숙소에 관한 이야기를 먼저 해본다.
개요에서 약간 비쳤듯이 예약을 해둔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으며 그것은 일장일단이 있다. 예약하면 잠자리가 확실하게 정해지는 대신에 그날에 맞춰 거기에 꼭 가야 하는 부담이 있고, 아니면 숙소를 확보하지 않은 상태에서 빈방을 찾지 못할 경우 당황하고 다음 일정에 무리가 따르게 된다. 그러니까 자야 할 곳이 유명 관광지인지, 그때가 주말에 닿는지 어떤지 상황을 감안하여 예약을 해둘 것인가 말 것인가 결정하는 등 적절하게 혼합하여 운영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17박 중에 시카고에서 이틀, 콜로라도 스프링스 하루, 옐로스톤 이틀 밤, 커냅의 롴커티지에서 이틀, 그리고 라스베이거스에서의 하루 모두 8일 밤은 예약을 하여 예약과 그렇지 않은 것의 비율이 반반 정도라 할 수 있다. 아예 서울에서 출발 전에 해놓은 곳도 있고 상황을 봐서 여행 중 하루나 이틀 전에 잡아놓기도 했다. 인터넷으로 들어가 딜(deal)을 잘하면 비교적 좋은 호텔을 인(inn)이나 심지어 모텔보다도 싸게 들을 수도 있었다.
대체로 모텔, 인, 호텔 순으로 등급이 높아 가지만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니다. 같은 홀리데이인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으면서 A라는 곳에서는 큰 호텔이고 B에서는 조그마한 모텔과 같은 것이 비일비재하다. 스탠더드 룸 하나에 가격은 대체로 60불에서 100불 사이이지만 때와 위치와 숙소의 환경에 따라 천차만별인 것 같다. 스탠더드 룸이란 더블베드가 두 개 있는 가장 규모가 작은 방이다. 부부가 들면 더블베드 하나면 될 텐데 왜 2개가 있는가에 대하여 연구해 보니 미국사람들은 체구가 우리의 두 배 세 배정도 되는 사람들이 많은 까닭이 아닌가 한다. 이런 사람들은 대개 가족들이 골고루 살쪄서 아무리 붙어있기를 좋아하는 부부라도 밤새도록 침대 하나로 둘이 쓰기는 대단히 불편할 것이고 그런 배려가 제도화하여 이렇게 된 것은 아닌지. 혼자 해본 생각이다.
중소도시 부근 고속도로 변에는 십중팔구 인(inn)이 포진해 있다. 우리는 호텔이나 커티지를 이용하기도 했지만 대부분 인에 들어 방 두 개를 빌려 세 남자와 세 여자가 한방씩 차지하여 잤으며, 침대는 언제나 더블베드 두 개였고 우리 같은 결코 크지 않은 체구로는 한 침대에서 둘이 자는데도 별 문제가 안되었다.
우리가 묵은 숙소의 몇 곳에 대하여는 특별히 거론해 볼 필요가 있다.
콜로라도 스프링스의 앤틀러 아담스 마크호텔은 다운타운에 있는 아마도 별 셋 이상은 족하게 되는 고급호텔이다. 그러나 이 호텔을 인터넷으로 들어가 딜을 한 결과 5, 60 불하는 허름한 모텔보다도 저렴한 40불대로 잡아들었던 것이다. 물론 이 경우는 대금을 선불해야 하며 취소가 불가능한 단점이 있으므로 그날 거기서 숙박할 것이 확실할 경우에나 시도할 일이고 사실상 여행 중에 당사자가 직접 들러붙어 정보의 바닷속을 찾아 헤매기에는 번거롭고 컴퓨터도 끼고 있어야 하는 등 제약이 따르므로 국외자의 도움이 필요하다.
옐로스톤국립공원 안 올드훼이스풀에 있는 올드훼이스풀인(Old Faithful Inn)에서 6월 3일 유숙하게 된 것은, 그것도 본관에서 하룻밤 잘 수 있었던 것은 여간한 행운이 아니었다. 물론 오래전에 예약했던 것이지만 숙소의 위치와 이 건물에 부여된 역사적 가치를 감안할 때 이런 데서 잘 수 있었다는 것 자체가 큰 복을 누린 것이었다는 생각이다. 이 인의 높고 넓은 테라스에 편히 앉아서 70분 내지 90분의 일정한 간격으로 40여 미터높이로 분출하는 간헐천의 장려한 모습을 시간에 맞춰나가 볼 수 있으며, 난간이나 기둥과 가로 목의 이음 부분을 옹이가 있는 자연스럽게 굽은 나무를 그대로 잘라 써서 예술적 가치 또한 손꼽히는 세계 최대의 통나무집 건축물이었던 것이다. 6, 7층 높이로 텅 빈 공간의 로비, 주변에서 모아 온 돌로 쌓아 만든 대형 벽난로, 그 위에 붙은 시계 등 고풍스러운 모습들을 곳곳에 적당히 배치된 의자에 앉아 감상하는 것도 즐거움 중의 하나이다. 1904년 6월 1일 첫 손님들이 등록을 하고 백 년이 지나, 더욱이 우리가 들었을 때는 100주년 기념행사기간이었다.
캐년들의 중심에 있는 도시 커냅은 주위환경이 온통 붉은 돌과 빨간 흙이 주조인데 여기에 묵게 된 록커티지(The Rock Cottage)를 한번 새겨보지 않을 수 없다. 이곳은 한국에서 오기 전, 정여사가 불철주야 인터넷으로 찾아낸 것인데 30대 초반쯤 되어 보이는 부부가 운영하는 침실 두 개와 거실 외에 온갖 편의시설을 갖춘 조그마한 독채 집으로서 여기에 듦으로써 우리는 이틀간 기를 펴고 살게 되었으니 각자가 마치 자기 집에 온 듯 편안한 마음이었다. 마음대로 밥 해 먹고 뒤편 정원에 나가 고기도 구워 먹으며 영양보충도 할 수 있었다. 주인이 특별히 허락하여 뒷마당 나무에 탐스럽게 열려 잘 익은 체리를 실컷 따먹기도 했다. 그것은 오히려 허락이라기보다는 종용이었다. 우리도 모르고 있었고 그러니 당연히 그럴 생각도 없던 것을 주인이 가르쳐 주었기 때문이다.
예약은커녕 밤도 늦고 달리 방법이 없어 들어간 인디언 보호구역 카메론의 숙소도 인상적이다. 스페인 풍의 역사적으로 유명한 남서부적인 수공예 가구들과 호젓한 정원에 핀 각종 아름다운 꽃들. 팸플릿에는 일몰이 아름답다고 적고 있지만 지평선에서 뜨는 아침해의 모습은 나를 얼마나 설레게 하고 뿌듯함으로 가슴을 채웠던가.
마지막 날을 보낸 라스베이거스의 호텔 MGM GRAND는 세상에 그렇게 큰 호텔이 있다는 것을, 버젓이 진을 치고 이 세상에 그런 것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려준 것이었다. 객실 복도에 서면 한쪽에서 다른 쪽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까마득했으며 751개의 스위트를 포함하여 객실 수가 5천 개를 넘어 세계 2위의 규모라고 한다. 1위는 어디 어느 곳인지 모르겠으나 어쨌든 우리는 여행의 마지막 밤을 인터넷 덕으로 아주 싼값에 세계적인 호텔에서 장식할 수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