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횡단여행(25)

by 김헌삼


25. 라스베이거스에서 우리는


라스베이거스에서 삼삼회의 행적에 대하여는 왠지 특별한 일이 많았던 날 초등학생 일기 쓰듯 기록하고 싶다.

우선 우리는 세계에서 제일 큰, 그러나 모텔의 가격 수준으로 예약한 호텔 엠지엠 그랜드(MGM GRAND)를 찾아갔다. 나는 어느 관광 안내 책자에 있는 대로 이 호텔을 두 번째로 크다고 했다가 지인(知人)으로부터 그런 게 아니라는 것을 근거를 제시하며 하는 지적을 받았다. 구글(google)에 의하면 태국에 5,100개의 객실이 있는 호텔이 있다는 소문이 있기는 한데 공인된 바 아니고 객실 수 5,034개의 엠지엠이 아직도 규모 면에서 세계 제일이라는 것이다. 앞으로 우리가 살아가며 자랑하는데 그것이 중요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우리의 품위가 올라가는 것도 아니고 1이면 어떻고 2인들 어떠랴. 여하튼 대단히 큰 호텔의 신세를 진 것은 부동의 사실이다.

그런데 체크인하는데 문제가 생겼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제3의 예약자가 방 하나는 디럭스로 다른 하나는 보통으로 한 것이다. 우리 남자들은 본능적으로 디럭스를 안사람들 쓰시라 했으나, 안사람들은 또 남편 사랑을 보통으로 하시는 분들인가. 고사(固辭)하는 것을 우리가 못 이기는 체하고 받아들이는 실수를 끝까지 범하지 않은 것은, 지금 생각해도 잘한 일이다.

먹을 것들을 싸 들고 다니는 것은 라스베이거스로 오기 직전 후버댐보다도 위쪽, 숲이래야 버드나무 몇 그루 있는 윌로비치(Willow Beach)라는 공원에서의 점심으로 끝냈다. 라스베이거스에 와서는 라스베이거스에 머무르는 사람답게 놀자 하는 것이, 우리의 씩씩한 대장 정여사의 방침인 듯했고 우리도 좋아라 하고 거기에 따랐다. 내일이면 LA에 가서 해산할 예정이니 우리 일정의 최후의 만찬이 될지도 모르는 저녁 식사는 호텔 뷔페가 제일 낫다고 했다. 1인당 20달러 정도의 가격으로, 맛있어 보이고 또 실제로 구미가 당기는 여러 나라 음식들을 너무나 많이 갖추고 있었다. 숙박료나 식대를 그다지 비싸지 않다는 생각이 들게 책정하여 손님들의 기분을 맞춰주고, 카지노에서 즐거운 마음으로 돈을 잃게 하는 정책을 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호텔마다 다양한 쇼를 준비하고 있는 모양이지만 사실상 우리에게는 그것은 별로 당기지 않았다. 한 번은 볼만할지 모르지만 대부분 여기서, 아니면 파리의 물랭루주나 리도 하다 못해 우리의 워커힐 쇼 등 유사한 것을 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다. 그게 그것일 것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그래도 눈요깃감이라면 미끈하게 빠진 쇼걸들의 군침 도는 몸놀림인데 우리 나이에 그걸 본다고 뭐가 동할 일도 없고, 만일의 경우 동해서 씩씩대봤자 환영해 줄 인사도 없다는 것은 서로 잘 알고 있는 터이다.

수소문해 본 결과 우리에게는 현란한 밤거리를 도란도란 또는 두런두런 이야기나 나누며 떼 지어 어슬렁거리다가 벨라지오(Bellagio) 호텔 앞에서 벌어지는 분수 쇼나 보고 오는 것이 최상이라는 것이다. 요즈음의 기억력으로 벨라지오라는 유별난 이름을 잊지 않는 것은 ‘별나지요?’의 일부 지방의 발음과 너무나 흡사하여 그것과 연관하여 외워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동안은 ‘별나지요?’라는 말도 생각 안 나서 한참 낑낑대고 머리를 굴리기도 했지만.

안 그런다고 하면서도 저녁에 이것저것 집어넣다 보니 포식했는가. 조금만 신경 쓰지 않으면 튀어나와 늘어지려는 배를 표 안 나게 하려면 가끔은 땅기는 듯한 자세를 취해야 한다. 우리는 뷔페에서 나와 손님들이 서서히 몰려드는 카지노를 거쳐 서남쪽 문을 통해 밖으로 나간다. 바로 맞닿는 큰길이 메인스트리트인 라스베이거스 불바드이다. 그 건너편에 자유의 여신상,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증권거래소 건물, 브루클린 브리지 등을 합성한 커다란 호텔 뉴욕뉴욕이 있다. 어디를 그렇게 가는 사람들인지, 대부분이 우리 같이 큰 목적 없이 배회하는 사람들이겠지만, 발에 걸려 전진이 잘 안 될 지경으로 몰려다닌다.

그 와중에도 중남미계로 보이는 몇 명이 명동 같은 데 가면 사채 빌려 쓰라고 하듯 하는 명함 돌리기를 하고 있었다. 주는 대로 받아 드니 사이즈는 명함인데 젊고 가슴이 풍만한 여자가 도발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는 사진이다.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지만 적당한 자리를 찾아 알맞은 배열로 이렇게 씌어있다. 「Shelby, Layla $47 (702) 365-9603」「Tan Naked Bodies $49 Special (702) 851-6786」 또 다른 사람한테 받은 것에는 이런 것도 있다. 「Lonely and awaiting your call」「We are exotic woman from around the globe. We specialize in tantalizing human pleasure.」 거리에는 호객과 유객 하는 삐끼들의 모습이 난잡하게 움직인다. 「집 없는 자입니다. 도와주십시오.(homeless Need your help)」라고 쓴 국판 크기의 메모판을 들고 별로 처량해 보이지 않는 기색으로 구걸하는 사람도 한몫 끼어있다. 몬테 칼로, 알라딘, 파리 등의 이름을 가진 호텔들이 즐비하다. 대부분 객실 수 2, 3천을 넘는 대형 호화 카지노호텔들이다.

벨라지오는 꽤 먼 곳에 넓은 호수를 앞세우고 멀찌감치 뒤로 물러나 있었다. 엠지엠보다 작아 보이지만 꽤 고급스러운 품격을 지닌 듯했다. 호수 속 분수는 벌써 수백 개가 일제히 높이 치솟고 좌악 퍼지고는 하는 것이 웅장한 오케스트라를 연주하는 것 같다. 수자폰이 빵빵거리고 심벌즈를 거푸 때려대는 것 같은, 속을 후련하게 쓸어주는 맛이 있다. 밤하늘에 수놓는 불꽃놀이처럼도 보인다. 호텔 안쪽에는 여러 가지 향기로운 꽃들로 장식된 물의 정원이 있다. 여기서는 수많은 물줄기가 그다지 높지 않게 교차하며 리드미컬하게 움직이는데 하나하나 연결되었던 선이 점선으로 변했다가 곧 다른 모양을 만들기도 한다. 밖의 분수와는 달리 움직임이 경쾌하고 재미있다. 이름하여 물의 발레.

호텔 앞에는 다이아몬드 네 개짜리 답게 전장(全長) 10여 미터 되는 리무진택시가 많을 때는 석 대, 그러잖아도 두 대 정도는 항시 대기하고 있는 듯하다. 정여사가 어느 틈에 그것을 섭외해 놓은 모양이다. 그것을 타고 미끄러지듯이 호텔로 돌아가잔다. 따라 하기만 하면 신분 상승은 저절로 될 것이다. 우리는 대단한 VIP처럼 호텔 정문 앞에 스르르 섰고 도어맨이 조르르 달려들어 차 문을 열어주자 기세 좋게 내렸다. 이렇게 해서 나중에 내가 죽더라도 라스베이거스에서 리무진을 타봤다고 묘비명에 새겨 넣어도 무방하게 되었다.

우리 호텔 안에 들어서자 이 여행의 총무 동일이가 행운이 있기를 기대한다며 각 집에 백 달러씩 나눠주며 카지노에 뛰어들라고 한다. 그것이 주머니에 넣어둔 돈을 꺼내 쓰느냐 쌈지에 있던 돈을 쓰느냐의 차이에 불과한 것일 터인데, 황송하게 하사 받은 공돈같이 느껴지는 것은 무슨 이유인가?

그것 참, 집집이 여자는 벌어들이는데 남자들은 퍼다 버리고 있었다. 우리 집사람은 생전 처음 해보는 것으로 계속 나보고 어떻게 하느냐고 물으면 난 들 무슨 뾰족한 노하우가 있는 게 아니어서 “넣고 누르라”라고 밖에 할 말이 없었고 아내는 그렇게 하면 코인이 심심찮게 쏟아지는 것이었다. 나는 한 번도 못해본 현금 교환권을 세 번이나 받아냈다. 결국 우리는 15달러의 유흥비를 지출하고 일어섰는데 아내가 15달러쯤 장학금을 받았다면 내가 30달러의 수험료를 바친 꼴이었다.

다음 날 아침 특별한 뉴스는 들려오지 않았다. 누가 대박을 터뜨렸다는 소문도 없었지만, 쪽박을 찼다는 소식도 있지 않았다. 우리는 모두 절제를 지킬 줄 아는 사람들이었고 적당히 즐기다가 내일을 위하여 알맞은 시간에 자리에 들었다. 이처럼 라스베이거스의 밤은 네온사인 번쩍이고 행인들의 발길 부산하고 카지노의 긴장감 팽팽하였지만, 우리에게는 특별한 일 없이 조용하게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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