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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정서재 Apr 30. 2023

녹풍당 카레라이스

밥 한 끼


나이를 먹으면 여러 가지 이별을 겪게 돼요.

함께 보낸 시간,

함께 했다는 사실이

행복이라고 생각하지 않나요?



녹색 바람이 사계절 내내 부는 녹풍당

전통 디저트를 파는 가게다.

꽃미남 4인방이 운영하는 가상의 가게.



아내와 사별하고 쓸쓸함으로 온몸이 움츠러든 중년 남자가, 밥 한 끼 같이 먹을 사람이 없어서 대나무 숲에 가려진 녹풍당을 찾아온다. 밥 한 끼 같이 먹을 사람이라.....



찹쌀떡을 하나 베어 물고 아내와의 추억을 상기하고 회한에 젖는다.

옆 테이블에는 역시 하루가 버거웠던 사회초년생 남자가 아있다.

그는 여기가 디저트 가게인 지 모르고 들어왔고,

꽃미남 4인방은 메뉴에도 없는 카레라이스를 흔쾌히 만들어준다.



젊은 남자는 허겁지겁 먹고 기운을 차린다. 지쳤던 얼굴에 피가 돌고 조금씩 어깨가 펴진다.

녹진한 카레의 풍미와 감자의 식감, 반가운 고깃덩어리, 양파의 단맛,



카레는 3분 카레밖에 몰랐는데 도쿄에 유학 중에 카레가 세상이 이렇게 많다는 걸 알았다.

카레 뷔페도 있을 정도였으니 카레 천국이다.

인도식 카레나 우리의 기특한 3분 카레와는 좀 다른 느낌인 게, 일단 일본인들은 카레에 대한 애정도가 높다.



녹풍당의 카레에 마음이 동했던 건,

지친 날에 먹는 고기 듬뿍 하야시 카레와 비슷했기 때문이다. 코르마 카레에 환장해서 그것만 먹었던 때도 있었는데 색감이 짙은 하야시도 나름 매력이 있다. 한술 뜨면서도 이게 카레라고 불러야 하는지, 우리식으로 하이라이스이라고 불러야 하는지 헷갈리긴 하지만, 그래도 카레의 일종인 건 맞는 거 같다. 쇠고기, 양파, 당근, 버섯이 들어가고 데미글라스 소스와 토마토가 들어갔다는데, 과연 강황이 안 들어가는데 카레로 부르는 게 카레 입장에선 당혹스러울 거 같기도 한데. 카레의 탈을 쓴 카레 비슷한 애?



1884년 이토 히로부미가 메이지 천황과 엔료칸이라는 일본 최초 석조건물에서 식사를 한다,

이때 만찬 메뉴가 오리고기 카레라이스였다.

서양문물을 잽싸게 도입한 일본의 문명개화의 상징적인 음식.

서구인들이 요코하마에 입항하고 일본은 미친 속도로 바뀌어간다. 일본 전통 밥상 와쇼쿠 문화는 서양식으로 탈바꿈되고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덮밥을 선호할 수밖에 없었다.



1872년에 이미 서양 요리책이 나왔고 여기 카레 조리법도 실려있었다.

다양한 카레분말, 카레 우동, 카레빵, 그리고 획기적인 즉석 카레가 속속 개발됐다. 지금도 일본자위대에 카레의 날이 있을 정도로 군용 식량으로도 그 전통이 오래됐다. 영국식 스튜카레와 일본 쌀밥의 콜라부터 시작되어 그들의 소울푸드로 자리 잡은 것이다. 일본인 친구들은 우리 집 김치가 아닌, 우리 집 카레라는 말을 종종 하곤 했다.



우리의 즉석 카레는 일본식 카레와는 다르다. 버터를 제거해서 맛이 깔끔하고 노란빛이 좀 더 강하다.

일상의 음식 카레라이스가 누군가의 허한 마음을 채우는 온기로 남을 수 있다니.



탄력 받은 김에 오늘 집에서 만들어 볼까. 어릴 때 맞벌이 하시는 부모님을 대신해 동생들에게 해줬던 그 감각, 그 기분 그대로 각 잡고 만들어볼까. 아니다. 쿠*에서 시키자.

추억보다 시간을 택한 나약한 현대인이라니.


(녹풍당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애니와 드라마에 존재하는 가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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