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를 향한 버둥거림
딸아, 엄마는 행운아다. 엄마에겐 ‘자유로운 인간’이라는 매우 럭키한 낙인이 찍혀 있어. 50 평생 살면서 구속과 얽매임이 없었다는 것은 아니다. 비교적 내 의지로 움직이는 일을 좀 더 많이 하면서 거기서 희열을 느끼며 살다 보니 어느새 자유로운 삶을 살고 있다는 거지. 남들이 보기엔 특별한 자유는 아닐지 모르겠다. 근데 내가 자유롭다면 자유로운 거 아니겠니?
부모님이 맞벌이 교사라면 다들 보수적인 가정에서 자란 범생이 여학생일 거라고 프레임이 씌운다. 기억은 희미하지만, 그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학창시절을 살았던 거 같다. 근데 싫지 않았어. 굳이 섣부른 반항심에 거부하거나 오버하진 않았다. 그때 다른 부모들과 다르게 너의 외할머니, 외할아버지는 우리 삼 남매를 무척 방목하며 키우셨다. 강제하거나 혼내거나 그런 기억도 일절 없고 뭘 해야 하고, 하지 말아야 하고 그런 규율도 이 집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우리 삼형제가 막 나간 것도 아니고 나름의 틀은 있었던 것 같다. 그냥 평범한 집에서 무난하게 살고 있었다.
엄마는 니네 외할머니가 초등교사이고 매일 출근하는 게 오히려 좋았다. 비오는 날 엄마가 우산을 가져다주는 아이들을 보면서도 왜 우리 엄마는 안 오지? 소풍날에도 할머니가 오시고 엄마는 안 오셔도 사실 서글프지 않았어. 오히려 사회생활을 하면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엄마가 자랑스럽고 든든했다. 우산이 없으면 집까지 마구 달리면 되고 그건 잠깐이지.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여주는 그런 장면이 연출될 때마다, 맞벌이 엄마들에게 짠함을 강제주입하는 건지 뭔지 의아할 뿐이다. 스스로 불쌍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어린이가 엄마말고 또 있을 것 같은데 말야. 우리 엄마가 선생님이라는 사실과 그 덕에 나의 유년기는 너무나 풍요로웠다. 유년기에 살던 2층 양옥집은 지금도 모던양식 그대로 남아있다. 40년이 지나 그 집 대문 앞에 서서 검은색 바탕에 흰색 페인트가 흩뿌려진 벽의 오돌도톨함을 만져 보면서 잠시 초등생으로 돌아가기도 했어.
울 엄마는 나에게 자유를 주셨다. 나는 너에게 무엇을 남겨줘야 할까?
삼남매의 독립
대학 졸업 후 삼남매는 완벽하게 정신적, 경제적으로 독립하게 된다. 이모, 외삼촌 엄마 모두 취업하거나 유학길에 오를 때도 스스로 계획을 다 짜고 부모님껜 일정만 알려 드렸어. 우린 이게 자연스러운데 남들은 신기하게 보더라. 부모님이 당연히 허락할 걸로 믿기 때문에 자신의 진로를 자발적으로 선택할 수 있던 것 같아. 특히 대학생이라고 해도 여자 혼자 여행이 위험할 수 있는데도 우리 자매는 거침이 없었지. 교육자 집안이라 넉넉한 편도 아니었니까, 알바 뛰면서 몇 달간 벌어서 떠나는 거야. 정신적 독립은 나의 잠재력을 용기있게 실험하게 하고, 경제적 독립은 나의 자율성을 극대화 시킨다. 참 좋은 말이지 않냐?
스물 넘은 성인이라면 돈은 직접 벌어야 해. 내가 먹고 싶은 것을 먹고, 가지고 싶은 것을 가지고, 가고 싶은 곳을 가는 것, 그리고 혼자 미래를 설계하고 실천하는 것, 엄마는 이게 자유라고 생각해. 돈이 넘쳐나는 사람도 의외로 뜻대로 움직이지 못한다. 시간이 없어서, 돈이 없어서, 남들이 뭐라고 할까 봐, 누구 허락을 받아야 해서. 아무튼 안 되는 이유가 훨씬 많아.
물론 성인이 되기 전까지 안전을 위해 부모의 제약은 필요하긴 하지. 그런데 어떤 부모는 평생을 자식 일에 일일이 간섭하고 결국 의지하다 생을 마감한단다. 결국 우리 부모님이 엄마에게 주신 최고의 선물은 자율과 독립이야. 인생에서 둘도 없는 강력한 힘이 되는 선물. 내가 너에게 물려주고 싶은 보석 같은 선물이기도 해.
인생리셋 임신과 출산
딸아, 여자의 인생에서 결혼은 참 중요하더라. 일종의 복불복 게임처럼 연애할 때와는 달리 결혼은 현실이라는 말이 100% 맞거든. 처음엔 결혼하고 싶은 사람과 결혼했을 텐데, 가만 보면 참 불행하게 사는 부부가 많아. 딸 너의 눈에는 우리 부부가 어떻게 비춰질까? 엄마 성격 보면 알겠지만, 단지 정 때문에, 자식 때문에, 20년 넘는 결혼생활을 유지하진 않았을 테지? 엄마에게 결혼생활이 나를 억압하는 굴레처럼 느껴졌다면 지금까지 유지되기 힘들었을 거야.
엄마가 인생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는 뭐다? 자유잖아? 가정을 이루고 살다 보면 중간중간 남모를 힘든 일이 많을 수밖에 없어. 특히 아이를 키우면 엄마는 반미치광이가 된단다. 어떤 엄마는 우울하다, 어떤 엄마는 내 인생은 없다, 한탄하지만 다 자신이 선택한 일 아니겠니? 그런 사람들은 결혼이 아닌 다른 환경에 처해도 똑같은 한숨을 쉴 거야. 딸아, 도망칠 수 없다면 최선의 방어를 해야 해. 뭇사람들이 정신 승리하냐고 비웃어도 좋다. 아무튼 엄마에게 결혼과 양육은 구속이 아니라, 그냥 이 시기 견디고 버티며 살아야 할 인생일 뿐이었다.
뭔가 벅찬데 뭔가 버거웠다
엄마 팔뚝보다 더 작은 네가 태어난 날, 인큐베이터에서 바둥대는 널 처음 봤다. 너는 인절미만한 발등에 주삿바늘도 꽂혀있고 눈은 감은 채 응애 비슷한 가느다란 소리를 내더라. 유리 안의 이 작은 생명체를 바로 어제 내가 낳았다는 현실을 빨리 받아들여야 했다. 뭔가 벅찬데 뭔가 버거웠어. 일주일 후 황달 치료가 끝나면 이제 고스란히 너를 키워야 하는 거잖아? 내 품에 안고 배고픔을 덜어주려 젖을 먹여야 하고, 아픔을 덜어주려 하루 종일 눈을 떼지 말고 있어야 하는 거지.
그동안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던 아가씨의 전성시대는 그날로 종결각이다. 근데 엄마란 대체 뭐지? 뭐부터 해야 하지? 진짜 갑갑하다. 임신기간 동안 태교도 하고 육아서도 읽어봤는데도 현실에 맞닥뜨리니까 사람이 좀 어버버거리게 되는 것 같아. 일단은 산후조리원에서 선배 맘들의 경험을 따라잡으려고 애썼어. 리얼한 엄마의 세계에 서서히 적응해 갈 수밖에. 피할 수 없으면 최선을 다해야지. 조리원에 누워서 천장을 뚫어져라 보면 다짐했어. 엄마로 사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막연한 기대감? 할려면 제대로 해야지. 그럼 지금부터 최고의 엄마가 돼 보자, 그것도 쌍둥이 엄마가.
잘 키우는 게 가능할까?
밤마다 사투가 시작됐다. 10시에 너희를 재우고 새벽 2시까지 박사 논문에 눈물 콧물 흘리면서 자신에게 저주와 욕설을 퍼부었지. 하루 최대 쓸 수 있는 공부 시간, 하루종일 애 보느라 소진한 에너지, 학문의 깊이, 이 모든 게 절대적으로 부족했거든. 원망할 대상도 없고 누구 탓을 할 수도 없고 말야. 아기침대 옆에 미등을 켠 채 노트북을 두드리는 작고 초라한 학자이자 애 엄마가 있을 뿐이야.
아무튼 허공에 대고 삿대질해봤자 시간만 흘렀어. <조선공론>이라는 일제 강점기에 발행된 잡지가 있어. 선행연구도 없고 번역본도 없으니 그야말로 맨땅에 해딩 아니겠니? 최초연구자가 되겠다는 일념으로 잠을 줄여가며 매달렸지. 사실 육아도 공부도 다 힘든데, 하나만 하면 미쳐도 곱게 미치지 못하겠구나 싶어서 병행한 걸 수도 있겠다.
니네가 아픈 날이면 다 집어치우고 병원으로 뛰었다. 왜 이리 잔병치레가 많은지. 엄마는 그때가 가장 예민했던 것 같아. 니네가 우는 소리가 나면 논문 쓰는 데 집중이 안 되서 분통을 터뜨렸고, 논문 좀 쓸라 쳐도 아기 봐야 하는데 하며 다 때려치울까, 수천, 수만 번 갈등한 것 같아. 새벽 6시에 밤을 찌고 속을 파서 경단을 만들었어. 손바닥에서 경단을 굴리면서도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못했지. 오늘 하루 니네 먹일 이유식을 만들고 가는 데만 1시간 반이 걸리는 학교로 출근했어. 대학강사를 병행하고 있어서 수업도 해야 했거든.
어느날 니네가 우리집 그린 그림을 보고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더라. 어쩜 둘 다 침대에 뻗어있는 엄마를 그렸을까. 항상 피곤한 엄마, 밤에는 공부하고 낮에는 도우미 아주머니와 외할머니에게 니네를 맡기고, 틈나는 대로 잠자거나 일하러 나가는 엄마, 그게 너희 눈에 비친 엄마의 모습인 거지.
아이 키우다보면 언제가 가장 어렵고 가장 쉽고 하는 건 없는 것 같아. 자녀가 성인이 될 때까지 엄마라는 사람한텐 매일 매일이 그냥 버겁거든. 그런데 엄마가 공부하고 일하고 정신없이 다녀도 니네한테 미안하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워킹맘들이 자주 호소하는 말이 있다. ‘얘들아, 엄마가 미안해.’ 함께 보내는 시간이 적어서, 전업맘보다 섬세한 케어를 못해서, 정말 이해가 되는 말이다. 그런데 엄마 생각은 좀 달라. 엄마는 외할머니가 평생 초등학교 교사를 하시면서 삼 남매를 어떻게 키우셨는지 적나라하게 지켜봤다. 부모가 최선을 다해 그 힘든 시간을 견디고 살아가는 그 모습 자체가 자녀에겐 큰 공부라고 생각해.
밖에서 돈 버느라 죽을 힘을 다하며 사는데 그게 왜 자녀에게 죄책감을 가져야 하는지 모르겠다. 그 돈으로 아이들 입에 맛난 걸 먹이고 옷 하나라도 더 사주려는 건데 말이야. 오히려 자녀가 부모의 노고를 알고 감사해야 하는데, 뭐가 바뀌어도 한참 바뀐 것 같아. 외할머니의 인생은 엄마에게 거대한 임팩트가 됐다. 한치의 부끄러움 없이 사는 모습, 최선을 다하는 모습, 그리고 경제적인 풍요, 내가 너에게 전해주려고 달리는 이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