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매지만 지금도 서로의 서열을 가리는 호칭도 없지. 편한 친구처럼 지내는 것 같아서 천만다행이다. 아들딸 잘 낳았으니 밥 안 먹어도 배부를 것 같다는 뭇사람들의 말이 다 맞더라.
근데 엄마는 책임감이라는 무게가 천근만근처럼 느껴졌다. 임신 3개월이 지나니까 입덧이 엄청 심해서 음식을 못 삼킬 정도였어. 너네 외할머니 댁에서 요양하기 시작했는데, 그때 미역국, 포카리스웨트, 냉면만 당기더라. 동네 산부인과에 갔다가 너희가 쌍둥이인 걸 첨 알았어. 엄마가 그동안 병원 다니면서 초음파 봤던 짬이 있잖냐!
딱 보니까 둘인 것 같아서 의사 선생님께 물어보니, 오히려 몰랐냐고 하시더라고, 이게 로또가 아니면 뭐냐? 한 번에 둘을, 그것도 내가 원하는 아들딸을 다 얻었으니, 세상이 온통 내 중심으로 돌아가는구나 싶었다.
노력하면 안 되는 게 없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임신은 노력만으로 보장되는 일이 아니지.
결혼하자마자 서둘렀는데 역시 그 선택이 옳았다. 엄마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이고 로또 이상의 기막힌 기적이었어. 엄마 나이 30대 초반이고 얼마 안 있어 노산으로 가는 건데, 감나무에서 감 떨어지길 기다릴 시간이 어디 있겠냐? 박사과정 중간이고 결혼한 지 1년밖에 안 됐으니 이렇게 서두르는 걸 너네 아빠도 이해 못 했다.
임신과 출산은 자연의 섭리라지만, 그 섭리가 언제 작동할지 몰라서 엄마는 확률을 높이기로 결심했다. 불임클리닉에 다닐 때는 유모차 끌고 다니는 엄마들이 부럽기도 하고 질투 때문에 밤잠을 설치기도 했어. 난임 부부들이 가장 힘든 게 주위의 시선과 쓸데없이 보태는 말들이라 대학원도 휴학하고 집에서 칩거하며 몸 관리를 했다. 매일매일 절박한 심정으로 이 세상 모든 신을 소환하고 병원에서 하라는 건 다하고 그 좋아하는 커피, 라면도 다 끊었어. 사람이 마음먹으면 그렇게 되더라.
인생은 매 순간이 선택이야
지금이 임신과 출산이 중요한 시간이니까 거기에 집중했다. 다른 가치와 다른 목표도 마찬가지야. 인생에서 선택의 순간이 오면, 과감하게 결정해라. 그 중요한 선택의 순간은 매번 오지 않고 삼박자가 갖춰져야 온다. 최선의 선택을 하려면 평소에 내공과 정보를 쌓아놔야 한다.
딸아, 부모가 되면 겁이 참 많아진다
나란히 누워있는 쌍둥이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자니, 앞날이 막막하기도 하고 잘 키우고는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답답하더라. 깨질까, 부서질까 노심초사했지. 대문자 T인 엄마가 이성이고 나발이고 용하다는 철학관에 찾아갔다. 거기서 여러 가지 너네 앞날과 진로에 대한 얘길 들었는데, 가장 듣고 싶은 말은 따로 있었어. “얘들이 부모가 나중에 죽어도 사이좋게 순탄하게 살까요?” 걱정 말라고 그러기에 기분 좋게 돌아온 기억이 있어. 검증은 할 수 없어도 왠지 부모로서 안심이 되더라. 부모 마음이 그런 거 같아. 너희 남매가 사이좋게 서로의 버팀목이 되면서 살아주면 더 바랄 게 없을 것 같다.
얼굴도 다르고 성별도 다른 엄마 아들 'O'는 너와 1분 차이나는 동생이긴 하지. 너희 남매 쌍둥이는 외형뿐만 아니라 성격에서도 차이가 크더라. 각자 성격이나 습관, 취향 다 달랐어. 아, 쌍둥이라는 카테고리 안에 두 아이를 묶어서는 안 되겠구나. 다른 객체, 다른 사람이구나.
흔히 쌍둥이는 고통과 사랑, 건강 등이 운명으로 서로 얽혀 있다고 한다. 특히 첫째가 동생을 돌봐야 한다는 책임감과 강박도 있다고들 하지. 그런데 남매 쌍둥이를 키우기 시작하면서 엄마는 노선을 정했어.
각자도생이다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고 다른 방식으로 키우는 거야. 아마 다른 사람들은 쌍둥이라고 하면 차별하지 않고 키우는 게 최선이라고 할 거다. 하지만 엄연히 차별과 차이는 달라. 쌍둥이지만 각각 다른 인격체이고 타고난 경향이 다르다. 그래서 당연히 다르게 차이 나게 키워야 한다. 남매, 형제를 키울 때 부모가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하는 게, 뭉뚱그려서 둘을 하나처럼 키우지 않는 거란다.
쌍둥이는 닮은 듯 다르다. 서로를 통해 자신을 재발견해 나간다면 가장 이상적이겠지. 비단 쌍둥이뿐 아니라 형제는 한 부모에게서 나왔지만 엄연히 닮은 듯 다른 인간이다.
너희 남매는 가족이면서 동료이고 함께 묶어서 생각하면 안 된다는 게 엄마 생각이었어. 장난감 한 개로 같이 놀 때도 있지만, 각자 자기가 관심 있는 장난감을 가지고 다른 방에서 노는 시간도 필요해. 이런 엄마의 고집 때문에 외할머니가 고생 많이 하긴 하셨어. 대여섯 살까진 문화센터도 같이 다니고 영유도 같이 다니고 그랬지만, 7살부터는 주말에 가족 여행 가는 것 말고는 전부 따로였지. 네가 바이올린 켜면 'O'는 단소를 불고, 네가 한글놀이 하고 있으면 O는 레고 쌓기 하고.
쌍둥이지만 성향이 다르다는 걸 알면서도,
부모들은 편의상 초등 때까진 거의 태권도 도장도 같이 다니고 피아노학원도 같이 다니게 한다. 뭐, 집안마다 사정은 있을 거야. 하지만 엄마는 디테일이 없으면 명품은 탄생하지 않는다고 굳게 믿는다. 퇴근길에 경부고속도로를 달리면서 나름 모성을 끌어올리며 각오를 다지고 또 다졌어.
파김치가 되어 집에 돌아오면 정말 체력과 정신력의 한계에 부딪힌다.
그래도 소파에 널브러져 누워있을 수가 없었다. 어떻게든 몸을 일으켜서 너희의 생활, 학습, 위생, 건강을 꼼꼼히 살폈다. 워킹맘이든 전엄맘이든 애로사항은 다 있다. 하지만 이 세상은 아무도 각자의 상황이 어떻든 봐주지 않지. 어떤 전업맘은 취미생활도 하고 여유를 즐기지만, 또 어떤 전업맘은 아픈 부모를 봉양하거나 자녀가 많을 수도 있어. 누구나 사연이 있는 거란다.
엄마는 어떤 상황에서든 정신을 바싹 차려야 했어. 두 아이가 자라면서 취향, 성취도, 관심이 다른데 동일한 프로그램과 동일한 공간에 함께 있게 하는 건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다. 개성과 독립심은 이때부터 스타트해야 습관이 됨.
서로 다른 개성과 모습, 생의 방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특별한 유대감으로 연결된 사이.
너희는 한날한시 태어났지만 다른 삶을 살아가는 존재다. 한 사람은 고요하고 내성적이라면, 다른 한 사람은 활기차고 외향적일 수 있어. 마치 서로를 비추는 거울과 같기도 하지. 특히 쌍둥이는 상대방의 삶을 통해 자신의 부족함을 채우고, 자신의 강점을 재발견하다고 해.
하지만 사람은 누구나 헤어져야 할 때가 있다. 너희도 자연스럽게 다른 삶의 경로를 선택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