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친구 문제로 고민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두 번 들었어. 처음은 초5였지? 이 엄니도 속이 엄청 쓰리더라. 원래 3명이 모이면 어느 날은 둘이 끈끈하다가 또 어떤 날은 다른 둘이 끈끈해져. 이미 울고 있는 네게 이 따위 예시가 뭔 소용이 있겠냐? 흩어졌다 모였다 하는 게 학교 친구라는 이름으로 묶인 얄팍한 관계임을 깨달으려면, 몇 번의 경험을 해보고 스스로 단단해져야 하지.
엄마도 이번 가을엔 이상하게 수원 사는 친구와 자주 연락하다가, 이상하게 12월이 되면서 다른 친구랑 친하게 지내게 되네. 네가 중2가 됐을 때, 다시 친구 문제로 심각한 상황에 처했지. 그때 너네 담임쌤이 엄마한테 연락할 정도였으니까 너야말로 학교 가는 것도 지옥같았을 거야. 매일 같이 밥 먹고 놀던 친구들이 나를 소외시키는 느낌이 들 때 그 누가 초연해질 수 있을까?
엄마는 그때 너에게 얘기하진 않았지만, 너네 담임선생님한테 정확히 얘기했어. 애들 관계는 내일을 예상할 수 없으니 개입은 마시고 일단 지켜보시라고. 물리적, 언어적 폭력이 아닌 이상, 너희 갈등은 너희 안에서 해결해야 해. 어른이 개입하면 들불처럼 갈등이 걷잡을 수 없을 수도 있거든. 결국 몇 주 지나지 않아 너를 따돌리는 아이들 사이에 균열이 생겼잖니. 엄마 말이 딱 맞았지? 생각이 짧은 애들은 뭉쳐봤자 절대 오래가지 않는다고.
초등 1학년부터 학교 안에서 머물지 않고 인간관계를 넓히고 사람에 대한 경험을 넓혀주려고 했어. 우물 안 개구리처럼 그놈의 학교, 학원에서 벗어나게 해야겠다. 학습과 관련되는 곳에서 맨날 보는 아이들, 선생님으로 한정하면 안 되겠다는 일종의 위기의식이랄까. 학교 밖 더 넓은 세상을 무조건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서 주말, 일요일마다 여행을 빙자한 뭔가 신선한 풍경과 그곳의 새로운 사람들과의 경험이 우선이었지.
너 경복궁에서 5년간 외국인 가이드 봉사했잖니? 지금 생각해 보면 네가 속한 단체에서 외국인을 섭외해 주고 그분들을 가이드하라고 했으면 1,2년 이상 절대 안 시켰을 것 같아. 그냥 광화문을 배회하는 외국인을 너와 다른 학교 다니는 언니랑 둘이 즉석에서 섭외해서 경복궁 안내를 했잖니? 맨 처음 실습하는 날, 내성적인 네가 터키 관광객을 섭외해서 흥례문으로 들어가는 걸 멀리서 지켜봤어. 그다음부턴 맘 편히 커피 마시며 널 기다릴 수 있었다. 그 언니랑 어느새 친해져서 서로 역할 분담하는 모습도 참 좋았어. 그리고 외국인들과 그날만큼은 친구가 되잖니?
학교 밖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참 소중하지? 취미활동, 봉사활동, 미술관이나 박물관에서 크고 작은 체험을 하며 만난 친구들과 어른들, 네게 전혀 새로운 시각과 영감을 줄 수 있어. 어쩌면 학교라는 작은 울타리 밖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때로는 평생 가는 진정한 친구가 될 수도 있지.
"엄마는 친구가 몇 명이야?"
너네가 자주 물어봤지. 너네 아빠는 친구가 많고 엄마는 두 명인 것 같다고.
엄마는 친구를 두 가지로 나눠서 생각하곤 해. 하나는 발효 친구, 그리고 다른 하나는 부패 친구야.
발효 친구는 내게 편안함과 따뜻함을 주는 친구야.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전화해도 편하게 받아주는 사람. 발효란 시간이 지날수록 더 좋은 맛과 향을 내는 과정을 말하잖아? 이런 친구는 너와 함께 있을 때 기분이 좋아지고, 너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 주고 쓸데없는 말은 하지 않아. 네가 더 좋은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옆에서 조용히 응원해 주는 사람이야. 실수했을 때 조언보다 걱정을 먼저 해주고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까 그런 말을 먼저 해주지. 친구는 나이 불문이야. 엄마보다 어른인 분도 어린 사람도 다 친구가 될 수 있지.
반면에, 부패 친구는 네게 상처를 주고 불쾌한 감정을 남기는 친구야. 부패란 음식이 상해서 더는 먹을 수 없게 되는 걸 뜻하지. 이런 친구는 겉으로는 네 옆에 있어 주는 것 같지만, 사실 네 자존감을 깎아내리거나 너를 조종하려고 하는 경우가 많아. 함께 있으면 기운이 빠지고, 왠지 모르게 네가 점점 불행해진다고 느낀다면 그 친구가 부패 친구일 가능성이 높아. 엄마가 거의 10년 친구 바로 손절한 거 알지? 오래 알고 지낸 세월에 상고 나 없이 내 자존심을 지속적으로 건드리는 사람은 바로 캔슬이야. 편하고 좋은 사람 만나는 데 에너지와 시간을 써야지, 그런 사람을 위해 1분 1초도 아깝단다.
딸아, 네 인생에서 발효 친구는 오래 곁에 두고 부패 친구는 과감히 손절하는 게 중요해. 이는 결코 나쁜 일이 아니야. 엄마는 이걸 손절의 기술이라고 부르고 싶어. 나쁜 영향을 끼치는 사람과 거리를 두는 것은 네가 더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한 지혜로운 선택이야. 손절은 누구를 미워하거나 버리는 게 아니야. 오히려 너 자신을 지키고, 진정한 친구를 만날 기회를 열어주는 거지.
네가 앞으로 교언영색이라고 겉으로는 달콤하고 부드럽게 말하지만, 속은 그렇지 않은 사람을 꼭 구별하는 지혜가 길러지면 참 좋겠다. 너에게 항상 달콤한 말만 하는 사람도 조심해야 해. 이런 지혜는 여러 유형의 사람을 겪으면서 내공이 생기는 것 같다.
우리가 학창 시절 만난 친구들. 그땐 애틋했지만 당시의 친구들은 네가 성장하면서 자연스럽게 멀어질 수도 있어. 이는 너나 그 친구가 잘못해서가 아니라, 사람마다 성장 과정과 가치관이 달라지기 때문이야. 그러니 이런 변화에 너무 마음 아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사회생활을 시작하면 우리의 예측을 벗어나는 인간들을 더 많이 만날 테니까. 부디 네게 내공(내성?)이 생기길......
딸아, 좋은 친구와 나쁜 친구를 구별하는 건 쉽지 않겠지만 네가 어떤 관계 속에서 행복과 성장의 에너지를 느끼는지 스스로 질문해 보길 바라. 발효 친구와 함께하면서 너의 인생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어가기를 엄마는 진심으로 응원해. 그리고 힘들 땐 언제든 엄마에게 와서 속내를 털어놔. 엄마는 영원한 네 친구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