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사람은 가족이라도 이루며 살고 싶어 하고, 어디 소속이라도 돼 있어야 안심하는 체질이잖니.
그냥 혼자도 괜찮다는 뜻이다.
엄마는 너네 유치원 때 직장이 3개였다. 천성이 한 곳에 마음 붙이고 끈끈한 동료애를 느끼며 사는 게 안 맞았던 것 같아. 자처해서 N잡러가 돼버렸지. 하루가 급박하게 흘러갔고 오전과 오후 일터가 다른 게 마음이 편했다. 아침 일찍 강변북로를 달리며 야호! 외치는 것도 재밌고, 퇴근 시간에 남산 1호 터널 속에 갇혀있는 것도 답답하질 않았다. 이 세상에 육아보다 더한 구속과 고통이 또 있겠냐?
영재연구소에서 언어분야 전문가로 교재를 만들다가, 점심도 먹는 둥 마는 둔하고 오후에는 대학에 강의하러 가기도 했다. 그 와중에 너랑 아들 O를 잘 키워보겠다고 주야장천 책을 읽어주고 퍼즐이란 퍼즐은 다 조몰락거리게 했지. 딸 네가 콩순이를 두들기면서 혼자 한글을 알아서 떼는 참 희망적인 모습을 보여주더라고. 오히려 O는 버리적 거리고. 음, 신체적 발달이나 정신적 발달이 사람마다 다르다는 걸, 부모가 반드시 인지하고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부모는 아이의 뭐가 늦고 빠르고에 하나하나 민감할 수밖에 없어. 병증일 경우엔 정말 서둘러 병원에 가서 조치를 취해야 하고, 그게 부모가 할 일이지. 아이를 건강하고 안전하게 만드는 게 부모 역할 중 가장 큰 부분일거야.
근데 6살 때 말이야. O가 하도 희한해서 천재인가, 자폐아인가 고심 끝에 천재임을 확인하러 사설영재원에 갔었지. 너도 함께 말이야. 둘 다 검사를 받아보자. 웩슬러 지능검사? oㅋ 이 어머니께서 영재 전문가 아니겠냐? 아무리 살펴봐도 천재 쪽이 ㅇ. 1% 는 더 가까울 것이라는 기대감에 센터를 찾아갔다. 너희는 따로 상담선생님과 어느 방으로 들어갔는데 네가 너무 금방 나오는 거야.
허걱, 언어부문 검사를 못했다고 선생님이 그러시더라. 아예 말을 안 해서 못했다고. 내가 뭘 잘못 들었나?
어, 집에선 말도 잘하고 영유에서도 이러진 않았잖아? 약간 당황했지만 바로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 어디가 잘못됐다는 생각보단 네가 분리불안이 있다는 걸 인지한 상태였기에 마치 예정됐던 것처럼 이 상황을 받아들이게 된 거지.
워킹맘들 자녀에게 흔한 증상이다.
시간이 약이라고 여겼어. 분리불안을 심각하게 보면 끝이 없고. 너를 환자로 낙인찍기 전에 천천히 완화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어. 영재아, 특히 말발 하나는 끝내주는 여자 애들을 볼 때마다 내심 부러우면서 흥분을 눌렀다. 기다려야 한다, 기다려야 한다.
너를 병원에 데려가지 않고 병명도 붙이지 않은 가장 큰 이유는, 어린 시절 내가 그랬기 때문이야. 부모님이 맞벌이를 하시니 자립심도 강하고 뭐든 혼자 해결할 수 있었지만 누가 나를 주목하면 그렇게 부끄러웠어. 그게 언어장애도 아니고 엄청난 분리불안의 여파라고 할 수 있을까? 엄마는 말뿐 아니라 행동반경도 좁았는데
결국 학교에 입학하고 환경이 바뀌니까 사람도 바뀌더라. 뭐라도 말을 해야 사니까 말문이 틔이고 반장도 맡고 발표도 하고 그렇게 돼버렸어. MBTI로 치면 극 I였지만 마음먹기에 따라서 사람은 180도 바뀔 수 있어.
그게 사회생활의 힘이지.
나는 너와 함께 사니까 가장 너를 잘 알아. 네가 구사하는 언어들, 뛰어난 단기기억, 숙제가 주어지면 반드시 해가는 성격, 그런 것들이 내가 확인한 확실한 증거일 뿐. 의사 선생님의 진단이나 사람들의 시선은 중요하지 않았어. 결국 말을 안 할 뿐이지 말을 못 하는 아이가 아니었던 거야.
말하기 싫어서 말을 안 하는데 그게 뭐가 문제지?
너도 기억날 거야. 어떤 엄마가 자기 딸에 대한 프라이드가 꽤 높았잖아. 사람이 너무 슬픈 기억은 뇌가 알아서 많이 지운다고 하더라. 그런데 조금 불쾌한 기억은 조금 더 오래간다고 해. 엄마도 지금까지 기억하는데 너는 더 생생하겠지?
"왜 너는 말을 안 하니?"
그렇다. 사설영재원에서 네가 대답을 안 하는 바람에 아예 검사가 중지됐지. 그러다 초등 1학년에 좀 나아져서 검사를 다시 받았어. 나름 난이도 있는 교육을 한다는 센터였지. 엄마가 누누이 말하지만 학교는 학교, 학원은 학원, 다른 단체는 다른 단체, 분리가 되면서 다양한 사람을 만나야 한다. 그리고 학교는 복불복이지만 사설단체는 우리가 고를 수 있잖니. 우리가 편한 사람들, 말이 통하는 사람들, 그래, 인정하기 불편한 이들도 있겠지만 세상에는 보이지 않는 레벨과 격차가 은근히 깔려있어.
좋은 환경이란 집을 잘 꾸며놓고 따뜻한 가정만을 의미하진 않아. 누구와 시간을 어디서 보내는지 매우 중요하단다. 아무튼 기껏 골라서 갔더니 참으로 예의 없게 이런 말을 한다? 초등 여자애들 따박따박 말대꾸하거나 정신없이 질문하거나 잘난 척 끼어들거나 그런 거 엄마가 많이 극혐 하잖아. 엄마는 오히려 네가 차분하고 공손해서 좋다. 작은 몸짓이지만 점잖고 품위가 있다. 조선시대 양반가의 큰 아씨였을 것 같아서 참 좋아.
아들 O랑 네 덕분에 여러 지역에서 또래 영재 아이들을 많이 볼 수 있었어. 거기다 그 부모님들까지.
타고난 영재? 만들어진 영재? 그때는 그 태생이 뭐가 그렇게 중요한지 부모들도 서로 그런 얘기 많이 했는데, 너네 키우면서 그런 게 뭐가 중요하냐 싶다. 누가 끈기와 배려가 몸에 배어 있는지 그게 더 중요하고 지식을 채우면서 숙성하다 보면 어느새 영재가 돼있는 거야.
그래도 너를 내려다보면서 왜 너는 말을 안 하니?라고 묻는 말투와 제스처는 엄마의 몸을 떨리게 만들었다.
너는 더 당황해서 대꾸도 못하고. 엄마는 속으로는 부들거렸지만 "하기 싫은가 보지." 하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래 시간이 약이다. 학교든 어디든 자기 할 일을 따박따박하고 있었고 발표할 일이 있으면 오들거리면서도 다 해냈어.
그래, 엄마는 기다리는 존재다.
외할머니가 초등교사 40년 하셨잖니? 뭐가 제일 힘드냐고 외할머니가 엄마한테 물으셨어. 엄마는 바로 말했지. "참는 거!" 자식 키우면서 가장 힘든 게 나의 분노, 욕망, 결핍을 다 내려놓고, 우선은 기다리는 거더라. 적어도 나는 그랬어. 다른 엄마들은 어떤 에너지로 아이들을 키울까? 참 모두 대단들 하다!
기다림의 미학이고 뭐고, 하루하루 피폐해지다가 어느 날 반짝, 너네가 우리 부부에게 희망을 주면 그 기운으로 또 며칠을 살아냈던 것 같아. 너희가 우리의 희망이자 미래다! 그런 거창한 말은 뱉어본 적 없지만, 너네가 소소하게 뭔가를 해내고 성취감을 느끼면 그게 바로 나의 기쁨이 됐던 거야.
부모가 가장 힘든 때는 언제일까?
내 아이가 슬퍼하는 모습, 좌절하는 모습,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는 순간이야.
딸내미 너의 자존심에 상처가 나면 엄마의 가슴도 찢어진다.
'부모 가슴이 찢어진다'는 이 말이 틀린 말이 아니었네. 게다가 아들 키우는 거랑 딸 키우는 거랑 엄마 마음도 꽤 다르더라. 그러고 보니 낼모레가 수능날이네. 고3 엄마들이 입시가 끝나면 크고 작은 번아웃이 오곤 해. 번아웃은 그나마 사치라고, 재수를 준비하는 엄마들은 다시 일어서야 해. 겨울날씨 저리 가라 가슴이 시린데, 다시 가라앉은 마음을 차고 올라와야 하는 그 심정이 바로 그런 거 일거다. 다시 참고 기다려야 하는 시간, 부모 된 자의 숙명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