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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Jan 07. 2023

물 위에 글씨 쓰듯...

어떤 글은 쓰고 나서도 공개하지 않는다. 왜냐고? 아주 사적인 내용이거나, 마음에 들지 않는 글이거나. 둘 중 하나다. 평소 같으면 이 글 또한 창고에 처박혀 있겠지만 머리끄덩이를 잡고 이곳에 앉혔다. ('머리끄덩이'라는 표현이 너무 상스럽나, 싶어서 검색해 보았다. (그런데, '검색'에도 구체적인 정의가 필요한 시기인가? 누구는 네이버, 누구는 유튜브... 훗날엔 챗GPT? GPT가 뭐냐고? 궁금하다면 검색해 보기를. 어쨌든 이 글을 보는 당신, 축하한다. 나의 통통 튀는 사고과정을 엿볼 수 있으니. 물론 유쾌한 경험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저 문장을 쓰면서도 나의 독특한 성향을 설명할 수 있는 이론이 있나 궁금하여, MBTI를 찾아보았다. MBTI? 비과학적 낌새가 있을지언정 꽤나 흥미로운 성격유형검사다. MBTI 공식 홈페이지가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이제껏 봐온 공식 사이트에는 날 것 그대로의 묘사가 부족했다. 그래서 방문한 나무위키. 인팁 페이지를 보니, 과거에 비해 설명이 깔끔해진 듯했다. 그래서 확인해 보았다. 뭐를 확인했냐고? 나무위키에는 '역사'라는 기능이 존재한다. 그걸 클릭하면 지금까지 수정된 문서의 역사를 볼 수 있다. 그래서 1년 전으로 돌아가 봤더니, 지금에 비하면 허술한 부분이 많이 보였다. 나무위키 들어간 김에 ENFJ와의 관계는 어떤지 보았다. 별 쓸데없는 소리를 길게도 써놓았구나, 싶었다. 근데 다시 보니 공감되는 부분도 있기는 했다. 이렇게 보니 방금 나의 말 또한 쓸데없는 소리다. 내 말에서 어떤 의미를 찾을 수 있겠는가? 그리고 왜 ENFJ인지는 알아서 상상하시길! 이쯤 왔으면 처음에 했던 이야기가 무엇인지 까먹었겠지만, 괜찮다. 나는 많은 시간을 이런 쓸데없는 생각을 하면서 보낸다. 내 사고방식을 더 알고 싶다면 추천해 줄 책이 몇 권 있긴 하다. 그러나 궁금한 사람이 없길 바란다. 자, 다시 머리끄덩이 이야기로.) '머리끄덩이' 관련 뉴스 페이지를 보니 온통 연예뉴스다. "머리끄덩이 잡는 연기..." 드라마를 왜 뉴스화 시키나? 드라마는 현실의 거울인가? 아니면 현실 저편인가? 이도 저도 아닌, 현실과 초현실의 중첩? 더 이상 묻지 말자. 아무튼 '머리끄덩이'가 상스럽다면, 그 장면을 보여주는 드라마도 상스럽고 그걸 보는 우리도 상스럽다. 그런데 상스러움과 성스러움이 따로 있나? 상스럽든 성스럽든 모두 애쓰는 삶이다. 덧없는 삶을 살아가는 와중에 벌어지는 다양한 모습이라고 해두자. (내가 이렇게까지 말하는 이유는... 요즘 B급 팟캐스트에 푹 빠져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B급이라 함은, 혼자 듣기엔 재밌지만 누군가에게 차마 추천하지 못하겠다는 의미로 알아듣자.)


이쯤 오니 내가 원래 말하려던 내용과는 멀어졌다. 본론을 말하기 전에 하나 일러둔다. 이런 글 쓸 때마다 엄살쟁이가 된다는 걸 알아두자.


이제껏 20년 남짓 살았다. 세포 하나하나를 깨우듯이 생생했던 삶의 순간들은 다 어디로 갔나. 물 위에 글씨 쓰듯, 세월이 지나간 자리에는 잔물결만이 남아있다. 잔물결이라도 붙잡아, 글이든 사진이든 구체적인 흔적으로 남겼어야 했는데 남은 것이라곤 초점 안 맞는 사진 몇 장과 손 때 묻은 노트 몇 권이 전부. 기록하지 않으니 잊히는구나.


물론 인생은 순간순간 즐겨야 제맛이다. 그러나 냉동실에 얼려 놓고, 생각날 때마다 꺼내어 녹여 쓰고 싶은 추억이 있기 마련이다. 생각해 봐라. 냉동식품도 나름대로 먹을만하지 않은가? 다만 먹다가 탈 날 수 있으니, 가능하면 솔직하게 쓰는 게 좋다. 거짓 없이 쓰기 어려운 이야기가 있다면 그 내용은 빼버려라. 그런 건 비공개로 작성하거나 비밀 일기장을 활용하면 좋을 거다.


서론이 길었다. 결론은 이거다. 쓰고 싶은 이야기가 참 많다.


살아가며 겪은 중요한 사건에 대해 5년을 주기로 생각 적기.

문득 떠오르는 생각을 붙잡아 확장하기.

주고받은 편지 엮어 책 쓰기.

삶의 흔적.

일상.

친구.

가족.

나.

너.

우리.

서평 쓰기.

배우고 공부한 것들 정리하기.

사건 되짚어가며 내게 미친 영향 분석하기.

과학, 철학, 문학 등 배운 것을 총동원하여 내 인생 분석하기.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고? 궁금하면, 책 나올 때까지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아라!)


이왕 쓰는 글, 누군가에게 힘이 되었으면 좋겠다. 내가 책 보며 힘 얻었듯이.


이제 끝이다. 읽고 나니 후련한가? 나는 쓰고 나니 후련하다. 어지러운 이 글을 끝까지 읽어냈다면 그대는 나를 싫어하거나 좋아하게 되었을 거다. 이도 저도 아니라고? 괜찮다. 어떤 사람을 있는 그대로 인정한다는 의미 아니겠는가? 그것도 아니라면... 내가 글을 잘못 쓴 거다. 그건 곤란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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