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
오전 내내 그동안 밀린 신문 기사 스크랩을 했다. 전시회 소식이나 정기적으로 실리는 역사나 문화에 관한 글들이 그 대상이다. 굳이 열거해 보자면 민은기의 <클래식 비망록>, 오동진의 <시네마 역사>, 김인혜의 <방방곡곡 미술 기행>, 황인의 <예술가와 친구들> 그리고 김영민의 <생각의 공화국>, 이숙인의 <조선가족실록>, 이익주의 <고려, 또 다른 50년>, 이태진의 <조선 근대사>, 김정탁의 <인문지리기행> 같은 연재물들이다. 스크랩은 열심히 하지만 읽는 데는 게을러서 읽지 않은 채 쌓인 것이 30cm 높이는 될 것 같다. 이런 기획 기사들은 의외로 역사나 문화에 대한 상식들을 배우는 데 좋은 것 같다. 두꺼운 책 읽느라 끙끙대는 수고 없이.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소식이 온 나라를 들썩이게 했다. 작년인가 큰딸이 한강 작가의 사인회에서 구매하여 보내준 저자 친필 서명본 『작별하지 않는다』를 꺼내 보며 ‘딸아이의 혜안’에 감사했다. ‘힘들게’ 읽었던 기억이 나는데 다시 한번 읽어보아야겠다.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을 제일 먼저 알려준 건 연극하는 후배였는데, 예전 대학 연극반 동아리 선후배 몇 명이 모인 단톡방에서였다. ‘위대한 예술가의 탄생에 밤잠을 이룰 수 없었다’며 감격에 찬 긴 글이었다. 나 역시 동감을 표시하며 ‘받을 만한 작가가 받은 것 같다’는 짤막한 소감을 적었다. 다음 날 아침 한 선배의 글이 올라왔다. 아니 그 선배의 글이 아니라 어느 유명인의 글이었다. 이런 걸 ‘퍼온 글’이라고 하는 모양인데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에 부정적인 의견을 피력한 글이었다. 사람마다 다른 견해(특히 역사적 사실에 대한)가 있을 수 있고 표현으로서의 문학에 대한 이해와 평가는 다양하기 마련이라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왜 그런 비판을 자기 자신의 생각에 바탕한 자기 글이 아니라 (아무리 그 사람의 글이 자신의 생각을 100% 대변한다고 판단했더라도) 자기의 생각은 한 줄도 없이 다른 누군가의 글만을 퍼와서 올리는 것에 대해서는 꼭 바람직하다고는 여겨지지 않아 좀 씁쓸한 기분이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 한 달 만에 어머니의 골분骨粉을 묻은 곳에 작은 표지석을 세웠다. 지금까지 내 직계 조상의 무덤에는 (공덕비 같은 것을 제외하고) 상석이나 표지석을 따로 세운 경우가 거의 없었기에(더욱이 화장의 풍습은 아주 최근의 일이라서 선례가 거의 없었다) 어머니 ‘묘’에 표석을 세우는 일이 쉽지 않았다. 이미 돌아가신 지가 60년이 지났지만 따로 표지석이 없는 아버지의 표지석을 같이 할 것인지 어머니 것만 할 것인지 묘석의 형태나 그 속에 들어갈 문안에 대해서도 여러 의견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직 유교적 예법에서 자유롭지 않은 데에 그 원인이 있다 할 것이다. 생각하면 부질없는 논쟁일 수도 있겠으나 아직 그런 예법에 익숙한 어르신들 세대가 계시는 한에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한편으로 기발한 아이디어를 제시하는 분들도 있었다. 예를 들면, 대체로 묘지석이라면 본관과 성 씨가 들어가고 몇 년 몇 월 몇 일에 生하고 卒했다는 내용이 기본인데 그에 더해 ‘어머니 사랑합니다’ 같은 문구를 넣으면 어떻겠느냐는 의견 같은 것이 그랬다. 그러고 보니 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다양한 문구들이 들어갈 날도 멀지 않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참 세월이 빠르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 벌써 한 달이 지났으니.
브런치에 글 올리는 간격이 보름쯤 지나면 어김없이 ‘편집자의 독려랄까, 압박이랄까’ 그런 메시지가 전달된다. 소재는 점점 고갈되고, 날은 다가오고, 마음은 초조해지고. 할 수 없이 이런 시답잖은 짧은 글 한 꼭지를 올리고 시간을 벌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