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청효당 Dec 10. 2023

때로는 혼자만의 시간과  혼자만의 장소가···

나는 한 달에 한번 꼴로 도봉산 망월사에 간다. 월초에 날을 정해 놓으면 날씨가 덥든 춥든 맑든 궂든 간다. 지난 글에서 처음 도봉산 망월사를 찾아가면서 고생한 사연을 적은 적이 있어 길게 반복할 필요는 없겠지만 내게는 그 첫 인연이 예사롭게 느껴지지 않았다. 우선은 길을 잘못 들어 5시간 넘게 험한 산길을 헤매다가 가까스로 당도한 절이라는 점이 그랬지만 무엇보다 그런 고생 끝에 다다른 절의 분위기가 나를 매료시켰다. 지금까지 많은 절을 다녀보았지만 이 절만큼 고요한 곳은 없었다. 고요하다기보다는 적막하다고 해야겠다. 나는 그 적막함이 좋았다. 대학교 2학년 여름방학 때 강원도 오대산의 한 암자에서 한 달을 지낸 적이 있다. 그 암자 또한 시간이 멎은 듯 고요한 곳이었지만 절 규모라야 작은 암자 하나에 불과했다. 망월사는 작은 규모의 절이 아니다. 가파른 산 능선을 따라 예닐곱 동의 크고 작은 전각들이 있다. 그런데 이만한 절에 사람 그림자와 마주치기 어렵다(다섯 번을 간 지금까지 스님 한 분과 만난 게 두 번이었고 등산객 한 사람, 그리고 법당 수리를 위해 일하던 인부들 몇 분이 고작이었다). 가는 길도 만만치 않다. 산행에 익숙한 분이라면 대수롭지 않겠지만 동네 공원이나 산책하는 수준의 내게는 숨이 턱에 차서 주저앉아 쉬는 시간이 걷는 시간보다 많다. 그렇게 쉬다 가다를 반복하며 1시간 20분쯤 걸어야 한다. 산길은 가파르다. 좁은 산길의 돌계단을 오르고 또 올라야 한다. 왜 나는 적막한 절 하나를 찾아 (등산이 목적이 아닌) 힘든 산길을 오르려고 하는가?     



며칠 전 동네 산책길에 이번 달에도 망월사에 가느냐고 아내가 묻기에 XX일에 갈 예정이라고 했더니 이번에는 자기도 같이 가겠다고 했다. 순간 나는 가슴이 덜컥(?)했다. 지난달에도 그런 제의가 있었지만 만류를 했었다. 지난달에는 예보 상 비 소식이 있어서 그걸 핑계 삼았다(실제로 비가 왔다). 그때도 아내는 (나는 비 예보에도 불구하고 가겠다면서 자신은 가지 말도록 만류하는 것이) 납득이 되지 않는다는 표정이었지만 더 이상 말은 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 달에 다시 그 얘기가 나온 것이다.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이번에도 그냥 나 혼자서 갔으면 싶다고 했더니 아내는 지난달의 사례도 같이 거론하면서 그 이유를 캐물었다. 초하루이거나 동짓날이거나 또는 특별한 이유를 들어 절에 갈 때는 늘 동반해 왔기에 유독 망월사만 아내와 함께 가기를 저어하는 것이 의아(또는 불쾌)했던 것 같다(당연한 일이다). 나는 아내가 듣기에는 궁색한 이유를 댔다. ‘산길이 험하다’, '너무 멀다' ‘한번 갔다 오는데 7시간이 넘는다’, 사실 이런 이유는 억지였다. 지금까지 설악산 봉정암에 세 번 다녀왔는데 그때마다 아내가 앞서가고 나는 뒤에 떨어져서 따라가는 형편이었으니 아내의 체력을 염려하는 말은 맞지 않았다. 스스로 생각해도 설득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한 나는 ‘쉬고 싶으면 쉬고, 쉬면서 메모도 하고, 사진도 찍으면서 여유롭게 가고 싶은데 당신과 동행이면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기 어렵다’ 등등의 말(이 말은 어느 정도 솔직한 내 마음이긴 하다)을 덧붙였지만 이미 이런 말로는 아내의 언짢은 기분을 해소하기가 어려웠다. 이제 솔직한 내 심정을 털어놓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왠지 그 절만큼은 혼자 가고 싶다’ ‘그 절에 가면 위로받는 느낌이다’ 그 절을 위로받는 나만의 장소로 간직하고 싶다'.  '누군가에게 어느 한적한 포구가, 어느 인적 드문 산골 마을이, 도시 길모퉁이의 이쁜 찻집 하나가 그런 위로 받는 장소가 되듯이'. 이어서 몇 가지 비슷한 예를 들었다. 잠시 침묵의 시간이 지난 후 아내는 다소 누그러진 기색이었다. 그럼 진작 그런 식으로 말하면 될 것을 왜 그런 납득할 수 없는 이유를 들어 오해를 사게 하느냐며 마무리를 했지만 깔끔한 기분은 아닌 듯했다. 내 뜻을 충분히 이해한 것 같지는 않았다. 서운한 감정이 여전히 남았음이 분명했다.       



망월사에 가면 늘 반복하는 나만의 시간이 있다. 우선 대웅전 법당에 들어간다. 넓은 법당 안은 고요하다. 촛불을 킨 후 방석을 깔고 삼배를 한다. 절을 하면서 마음에 품은 소원을 기도하고 지나간 잘못을 반성한다. 뜻대로 풀리지 않는 일상의 답답함과 지친 삶을 하소연한다. 가까운 사람들의 얼굴을 떠올리고 그들과 얽힌 사연들을 되새겨본다. 이루지 못한 일들을 아쉬워하고 잘못된 판단으로 어긋난 일들을 후회한다. 때로는 눈물이 난다. 서러운 마음도 들고 외로운 생각도 난다. 그 시간이 20분, 30분쯤 된다. 방석을 정리하고 촛불을 끈 후 법당을 나온다. 법당 앞마당에는 소원을 적은 초가 타고 있는 유리 상자가 있다. 초 세 자루에 아이들의 이름과 생년, 소원을 쓰고 불을 붙여서 들여놓는다. 건강을 빌고 원만한 사회생활을 비는 (돈도 많이 버는) 남들 다 하는 소원이다. 유리문을 닫고 촛불이 잘 타고 있는지 확인한 후 영산전으로 간다. 영산전은 망월사의 전각들 중 가장 높은 곳에 있다. 좁고 가파른 돌계단을 올라가야 한다. 영산전에서는 멀리 도봉동의 아파트들과 도로가 보인다. 도봉산의 수려한 산세도 한눈에 들어온다. 잠시 아득한 기분에 젖은 후 마지막으로 다시 대웅전으로 내려와 촛불이 잘 타고 있는지 확인한 후 산을 내려온다. 내려오는 길은 올라갈 때보다 한결 수월하다. 내리막길이니 당연한 것이지만 몸뿐만 아니라 마음도 그러하다. 무언가 위로받고 가는 기분이다. 발걸음이 가볍다. 그렇게 1시간 남짓 걸려 망월사역에 이른다. 다음 달 다시 이곳에 올 기대에 마음이 설레며 전철을 기다린다.     


 

며칠 전 가깝게 지내는 선배 세 사람과 송년모임을 가졌다. 30년 넘게 인연을 맺어온 직장 선배들이다.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망월사 가는 문제로 아내와 다툰 이야기를 했다. 디테일은 빼고 줄거리만 이야기했는데 그것도 내 주장을 유리하게 부각한 것이었다. 두 사람은 별 말이 없었는데 한 선배가 호된 질책을 했다. 당연히 같이 갔어야지 내 처사가 잘못되었다는 것이었다. 매정하고 이기적인 태도라고 했다. 선배의 ‘의외의’ 반응에 나는 서둘러 ‘사람이 다른 누군가의 마음을 어찌 다 이해하겠습니까?’ 하는 옹색한 말로 이야기를 끝맺고 화제를 다른 것으로 돌렸다. 집으로 돌아오는 전철 안에서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 선배의 말이 맞을지도 몰라. 아무래도 나는 빵점짜리 남편인 게 분명해. 그런 반성이 들면서도 뭔가 뚜렷하지 않은, 허전한 기분이었다.


(표지는 LAN란의 작품 <겨울의 외로움>임)

작가의 이전글 잃어버리고 잊어버리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