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에서 미를 목표로
이 해도 며칠 남지 않았다. 새해가 다가오면 늘 시조 한 편이 생각난다. 시조라고 했지만 실제 예전에 그런 시조가 있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오래전 어디에선가 읽은 기억이 나는데 누군가의 만화에서였던 것 같다. 대충 이런 내용이었다.
‘창 밖에 아해 와서 오늘이 새해라커늘
동창을 열어보니 옛 돋던 해 솟았구나
아해야 만고한 해니 뒷날에 와 일러라‘
만화에서는 집 안에 노인이 있고 창 밖에 머리 땋은 아이가 있었던 것 같다. 아마 아이가 새해가 되어 동네 어른이나 글방 훈장에게 새배를 온 모양인데 노인이 그 아이를 두고 읊은 것이다. 그때 만화를 보면서 나는 ‘아마 저 노인은 세뱃돈이 없었던 모양이야. 그래서 새해는 해마다 온다는 핑계로 아이를 돌려보낸 거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건 그렇고 아무튼 새해가 다가오니 자연히 지난 한 해를 돌아보고 다가올 한 해에 대한 계획을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계획이라? 말 그대로 ‘계획’이니 실천 여부는 별개고. 작년 이맘때도 올해 각오랍시고 몇 가지를 적은 글을 올렸는데 지금 읽어 보니 올해 성적은 수우미양가 중에서 양 정도 되는 것 같다.
며칠 전 신문에서 ‘80대에 40대의 뇌를 가진 사람 기적의 생활습관 네 가지’라는 기사를 보았다. 이른바 수퍼에이지들의 공통점을 적은 것이다. 수퍼에이지란 80대, 90대에도 20∼30년은 젊은 뇌 기능을 유지하는 사람들을 말한다. 이대목동병원 김건하 교수는 우선 세 가지 생활습관의 특징으로 첫 번째는 악기나 외국어를 배운다든가 뇌를 자극하는 다양한 새로운 활동을 시도하는 습관, 두 번째는 신체활동량이 일반 노인과 비교해 확실히 많고, 세 번째로 친구 친척과의 교류나 봉사활동 등 사회적 네트워크가 많은 것을 들고 있다. 그러니까 독서 · 여행 · 음악 감상 같은 취미든, 사교 활동이든 뭐든 다양한 활동을 많이 할수록 치매 위험은 낮아진다는 것인데 특히 ‘항상 하는 반복적인 일보다 평소 안 하던 것, 새로운 경험을 할수록 뇌에 좋은 자극을 많이 준다’는 것이다. 그동안 여기저기에서 들어온 비결들과 크게 다른 건 아닌 것 같다. 신문에서는 이 세 가지에 덧붙여 ‘숙면’을 추가했는데 이는 올해 8월에 스페인에서 64명의 수퍼에이지와 55명의 일반 노인을 비교한 연구 결과에 따른 것이라고 한다. 김 교수는 ‘숙면은 뇌 네트워크도 튼튼하게 해 주고 치매의 가장 흔한 원인인 알츠하이머병의 아밀로이드도 수면 중에 일부 씻겨나간다’고 설명한다(우리 어머니의 장수 비결 중 하나도 이 숙면에 있는 것 같디).
이 기사를 참고 삼아 내년 계획으로 크게 세 가지를 생각해 보았다. 예전 학생 때 자주 듣던 말 중에 ‘지知 · 덕德 · 체体’라는 말이 있었다. 그에 빗대서 나는 올해 목표를 ‘지 · 금金 · 체’라고 정하기로 했다. 덕 대신에 쇠금 자를 넣은 것인데 물론 금자는 ‘돈’을 염두에 둔 것이다. 짐작하시겠지만 ‘지’는 지식과 정서의 함양이나 지혜로운 생활 같은 정신적인 측면을 염두에 둔 것이고, ‘체’는 신체적인 건강을 말하는 것이다. 몸이 아프면 우선 내가 괴롭지만 가족에게 폐가 되니 부지런히 몸을 움직여 적어도 잔병치레는 하지 말아야겠다(큰 병은 내 맘대로만 되는 일은 아니겠고). 우선 ‘지’에 해당하는 것으로는 비교적 꾸준히 해오던 일이라 크게 보탤 건 없을 것 같다. 일주일에 한 번 붓글씨 쓰러 가는 일은 (비록 연습하는 데는 게으르지만) 내년에도 계속할 일이고 동네도서관에서 책 빌려 보는 것도 변함없이 할 일이다. 특히 내년에는 『주역』을 꼼꼼하게 읽어보고 싶다. 올해 도올 선생의 『주역강해』를 읽긴 했지만 언제나 그렇듯 그저 건성으로 읽은 것이라 머리에 남은 것이 없다. 지난주 어느 신문에 장석주 시인이 쓴 글에 인상적인 대목이 있었다. 시인의 오랜 친구가 은퇴 후 도서관에 나가 한 ‘철학자의 책을 필사’한다는 내용이었다. 나도 은퇴 후 한때 『논어』와 『장자』를 필사해 본 적이 있어(지금 머리에 남은 내용은 거의 없지만) 새삼 그때 기억을 되새기게 했다. 장석주 시인의 글에 자극받아 내년 한 해는 『주역』을 꼼꼼히 읽어보며 인간과 우주, 삶과 운명 같은 것에 대해 생각해 보아야겠다. 비록 안목은 없지만 갤러리나 박물관에도 열심히 구경갈 예정이다. 다음은 ‘체’에 관한 것이다. 동년배 친구들 가운데 가장 열성적인 분야가 바로 이것이다. 경제적 여유가 있는 친구들은 열심히 골프 치러 다니고, 그만한 형편이 안 되거나 다른 사정이 있는 친구들은 산행을 다니거나 적어도 하루 만보, 이만 보 걷는 것을 생활화하고 있다. 본시 게으르기 짝이 없는 나도 최근 들어서는 아내의 성화에 못 이겨 두어 시간 정도 동네 산이나 공원 산보를 하고 있으니 새해에도 이런 습관은 특별한 일이 없는 한 거르는 일이 없이해야겠다. 또 한 달에 한 번 도봉산 망월사를 다녀오는 일도 빠뜨리지 말아야겠다. 그 또한 더없이 훌륭한 운동이기도 하니 말이다. 이제 남은 건 ‘금’인데(즉 돈에 대한 것이다), 이건 무슨 말인가? 이제 와서 어디 일자리가 생길 리도 없고, 노모나 아내가 지금껏 숨겨 놓은 것이라며 갑자기 어디 '땅문서나 패물' 같은 것을 내놓을 리도 없을 텐데 어디서 돈이 들어온단 말인가. 그런 걸 새해 계획에 포함하다니, 하고 생각할지 모르겠는데, 그건 ‘주식투자’에 관한 것이다. 얼마 전에 그에 관해 쓴 바도 있지만 주식 투자(비록 소액이지만)를 시작한 지 꼭 5개월 반이 지났다. 5개월 반의 성과는 ‘크게 잃지는 않았다’라고 할까?. 벌 수 있는 기회가 꽤 있었지만 과도한 욕심에 눈이 멀어 평상심을 잃고 내질러서 손해를 보았다. 만 원을 따고 만 오천 원을 잃는 식이었다. 이내 후회했지만 다음날이면 또 같은 짓을 반복했다. 그런 가운데 주식 공부를 많이 했다. 거의 하루 종일을 주식 생각으로 지냈다. 차트 보는 법을 배우고 유튜브 주식 강의를 듣고 실습을 하고, 매매일지를 적고···. 아직 어설프긴 하지만 검색기라는 것을 배우는데도 적잖은 시간과 노력을 쏟았다. 아이들이 ‘아빠는 뭐 하나 꽂히면 집요하다’면서 너무 무리하지 말도록 당부한다. 내년 한 해는 더 집중해서 주식 공부를 해보려고 한다. 적어도 한 달에 ‘경조사 비 정도’는 벌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다만 신문에서 열거한 특징 중 한 가지만큼은 자신이 없다. 숙면이다. 남들은 운동량이 많으면 밤에 잠이 잘 오니 낮에 열심히 몸을 움직이라고 한다. 그런데 낮에 녹초가 된 날(예를 들어 도봉산 다녀온 날)에도 늦도록 잠이 안 오고 겨우 잠이 들면 두세 시간이 못 되어 잠이 깬다. 또 자다가 깨다가 반복하다 이상한 꿈을 꾸는 일이 내 수면의 특징이다. 수면의 중요성은 말하지 않아도 다 아는 일이니 이 일을 어찌 해결할지 고민거리다.
여기까지 써놓고 나서 처음부터 읽어 보았다. 그런데 내년 이맘때 또 다음 해 계획 운운 하는 자리에서 나는 어떤 점수의 성적표를 내놓을까? 적어도 미 정도는 되어야 할 텐데. 특히 ‘금’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