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단상 15
‘···사람이 늙으면 금방 이야기한 것도 잊어버립니다. 그렇지만 젊었을 때의 일은 모두 기억합니다. 매번 하는 이야기는 이전의 이야기들뿐입니다. 노인들은 울어봐도 눈물이 나오지 않으나 웃어보면 눈물이 나옵니다. 앉아 있으면 졸음이 오나 누우면 잠이 오지 않습니다. 노인들은 감히 내일을 생각하지 못합니다. 어떤 사람이든 이런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하면 이미 노화된 것입니다···’
어느 중국 철학자의 책에서 본 글이다. 이 글을 읽으며 너무 실감이 나서 혼자 미친 사람처럼 웃었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웃었는데 정말이지 눈물이 났다! 그러니 틀림없이 나는 노인인 것이다. 노인의 특징이 어디 그것뿐이겠는가. 최근 들어 나는 물건을 잃어버리는 일이 잦아졌다. 한 달에 한 번쯤 도봉산 망월사에 가는데 갈 때마다 물건 하나씩을 잃어버렸다. 절 마당에 이르러 보니 목에 걸었던 수건이 없어졌고, 분명히 법당 앞에서 사용했던 휴대용 안경이 산중턱쯤 내려와서 보니 간 곳이 없었으며, 뒷주머니에 꽂아 두었던 수첩이 보이지 않았다. 지난달 가랑비가 오락가락하는 날에는 우산을 잃어버렸다. 산을 내려와 역에 도착할 때까지 우산을 썼으므로 분명히 역 안에까지는 가져왔을 텐데 환승한 전철을 타고 두어 정거장 가다가 비로소 없어진 걸 알았다. 역 화장실이나 환승하기 전 전철에서 잃어버린 것 같았는데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며칠 전에는 탁상용 달력을 잃어버렸다. 회사 입사동기들 모임에서 받은 것이었다. 아들이 치과 병원을 하는 친구가 나눠 준 새해 달력이었다. 요즘은 달력도 귀하고 은퇴하고 나서는 더욱 보기 어려워진 데다 또 내년 달력으로는 처음 얻는 것이라 단단히 챙겼는데 전철에서 내릴 때 손이 허전한 것을 알았다. 전철역 화장실이나 대합실 의자에 놔둔 것 같았다(그날도 비가 내리는 날이었는데 다행히 우산은 잃어버리지 않았다. 아마 지난번 우산 잃어버린 것에 대한 강박증이 있었으므로 우산만은 철저히 챙겼던 것 같다). 아내에게 이런 사실을 말하면 핀잔을 들을 게 뻔해서 아예 입 밖에도 꺼내지 않았다. 몇 달 전에는 신용카드를 잃어버려서 소동을 피우기도 했다. 버스를 탈 때 찍은 신용카드(교통카드 겸용)가 내릴 때 보니 ‘감쪽같이’ 사라진 것이다. 지갑과 주머니를 다 찾아보았지만 없었다. 서 있던 자리 주변을 둘러보아도 없었다. 분명히 버스 안에 있어야 할 텐데 마음은 급하고 할 수 없이 그냥 내려서 분실 신고를 했다.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언젠가 누군가에게 들은 이야기다. 노인들이 서류 같은 소형 물건들을 배달하는 것으로 용돈 벌이를 하는 경우가 있다고 했다. 주로 전철로 이동하는데 상당수의 노인들이 전철 안에서 그 물건들을 두고 내리는 바람에 곤욕을 치르는 사례가 많다고 했다. 그래서 물건들을 끈으로 묶어서 목에 걸고 다니는 사람들도 있단다. 그런 말을 듣고 웃었지만 요즘 내가 하는 꼴이 그렇지 않은가.
물건을 잃어버리는 것만이 아니다. 갑자기 앞이 캄캄해지며 기억이 나지 않는 경우는 또 얼마나 많은가. 하루에도 몇 차례는 열고 닫는 현관문의 도어록 비밀번호 6자리 숫자가 생각나지 않아 난감했던 적이며, 네 단위의 차량번호 숫자와 신용카드 비밀번호를 혼동해서 당황하고, 냉장고 문을 열었는데 정작 내가 무얼 찾으려고 했는지 생각이 나지 않아 한참을 서 있다가 다시 문을 닫거나, 아이디와 패스워드를 모아서 적어 놓은 노트를 찾느라 진땀을 빼고, 소중하다고 생각해서 그것들만 따로 모아 놓은 사진들을 어디에 보관했는지 까맣게 잊은 일(아직까지 찾지 못하고 있다), 아내를 불러 놓고는 정작 내가 무슨 말을 하려고 했는지 생각이 나지 않는 등 사례를 열거하자면 끝이 없을 것 같다. 전철 개찰구 앞에서(특히 나올 때) 교통 카드를 찾지 못해 당황하는 일은 매번 겪는 일이다. 지갑과 상하의 주머니를 다 뒤진 끝에 겨우 찾는다(아마 지난번 분실 사건 때문에 보관에 더욱 예민해진 것 같다). 브런치에 글을 쓰기 위해서도 매번 적어 놓은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확인하지 않고서는 접속을 못한다. 아이들의 생일이나 처갓집 제삿날을 기억하지 못해 번번이 아내에게 잔소리를 듣는다(아내는 이게 기억력의 문제가 아니라 성의 문제라고 하지만). TV에 나오는 어느 유명 정치인이나 연예인의 이름이 도무지 생각나지 않거나 익숙한 장소인데도 그 이름이 떠오르지 않는 경우는 나이 들어갈수록 빈번해지는 것 같다. 오늘 아침에도 그랬다. 외출할 일이 있어 옷을 입고 나오니 아내가 그 옷 말고 얼마 전 산 패딩을 입는 게 좋겠다고 하기에, 패딩?, 무슨 패딩, 언제 패딩을 샀다는 거야, 하는 어리둥절한 표정 때문에 아내에게 잔소리를 듣기도 했다. 불과 채 한 달도 되기 전에 구입한 옷을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이다. 먼 옛날의 일에 대한 기억이 아니다. 익숙하고 사소하고 자잘한 일상사들이 어느 순간 갑자기 머릿속이 텅 빈 것 같은 진공상태가 되면서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 것이다. 프로이트는 자기가 ‘평소에 알고 있는 사람의 이름을 잊어버리거나 또는 아무리 애를 써도 그 사람의 이름을 기억할 수 없을 때는 그 이름의 사람을 원망하고 있어서 생각해내고 싶지 않은 것’이며, ‘물건을 둔 곳을 잊어버리는 상황은 그 물건을 잠시 혹은 오래 어디에 숨겨두고 싶다는 심리가 작용하는 것’이라 했는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런 ‘깊은 의미’에서 연유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이런 현상은 나이 들어서 새롭게 나타나거나 빈도가 잦아지는 것이라 아무래도 노화 현상으로밖에 볼 수가 없을 것 같다.
그런데 묘하게도 앞에서 적은 중국 철학자의 말처럼 어릴 때의 어느 순간의 기억은 생생하게 떠오른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서울로 전학 온 첫날 본, ‘분결처럼 하얀 피부’에 숕 커트한 머리의 부반장 여학생의 얼굴, 동갑내기 사촌이 입었던 ‘옷깃이 차이나식인 파란색 윗도리’(그 옷이 그렇게 입고 싶었다), 작은 아버지 집에서 처음 본 ‘다리 달린 상자 속에 들어 있던’ 텔레비전, 어느 집안 어른에게 설움 받은 기억, 비 오는 날 어느 친척이 준 지폐 몇 장을 받다가 떨어뜨려 진흙탕 바닥에서 줍던 일, 서울에서 대학 다니던 막내 삼촌이 사 보내준 어린이 잡지 표지······. 생각해 보니 잊어도 좋은 일은 잊지 않고 잊지 말아야 할 것들은 잊고 지내는 시간이 지금의 내 시간 같다. 사람이 지나간 모든 일을 기억한다면 미쳐버리고 말 일이지만 그래도 일상생활을 무리 없이 지내기 위한 자잘한 기억들은 유지하고 살아야 할 텐데 그 또한 훈련이나 노력이 따르는 일이 아닐지 모르겠다. 그리고 새해에는 더 이상 물건 잃어버리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잃더라도 작은 물건 몇 가지만으로 한정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