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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효당 Nov 20. 2023

다시 쓰는 일기 27 – 2023.11.XX

대장도大長島에서

큰딸 내외와 고군산군도 대장도에 다녀왔다. 당초는 순천만 습지에 가기로 계획했던 여행이었다. 지난여름 휴가 때 다녀온 순천만 습지가 너무 좋았기에 갈대가 한창인 가을에 다시 가보기로 한 것이었다. 아침 일찍 KTX를 타고 딸네 집에 갔다가 그곳에서 자동차로 가기로 한 것이었는데 간밤에 중, 남부 지방에 눈이 내려 일정이 불투명해졌다. 기온도 많이 내려간 데다 초겨울 눈 치고는 제법 많은 눈이 내렸다. 딸이 사는 곳에서 순천까지는 왕복 7시간 정도가 걸리는 길이어서 당일에 다녀오는 것은 무리였다. 한 달 전에 계획한 일이고 왕복 기차 편을 예매해 놓은 상태라 포기하기는 아쉬워, 대체 장소로 군산을 생각해 놓고 도로 사정으로 그마저 어려우면 그냥 딸네 집에서 놀다가 밤에 올라올 생각으로 예정대로 새벽 기차를 탔다. 아산 역으로 마중 나온 딸의 말로는  눈은 거의 녹았고 도로 사정도 양호하다고 해서 군산에 가기로 했다. 바람이 세긴 했지만 날씨는 맑았다. 하얗게 치장한 산과 들의 풍경은 제법 서정적이었다.       



오래전 가족 여름휴가로 군산의 선유도에 갔었다. 군산항에서 배를 타고 갔었다. 고군산군도의 중심지인 선유도는 낙조와 명사십리 해변, 선유봉 등 아름다운 풍광으로 유명하다. 배에서 내려 한여름 뙤약볕에 무거운 짐들을 끌고, 메고 예약한 숙소까지 걸어가느라 고생이 많았지만(섬에서는 스쿠터가 유일한 이동수단이었는데 ‘몇 푼을 아끼겠다고 걷기를 고집한’ 나를 아내는 두고두고 원망했었다) 선유도에서 보낸 2박 3일은 즐거운 기억으로 남아 있다. 특히 맛조개 잡는 재미에 해가 져서 컴컴해질 때까지 해변을 떠날 생각을 않던 아이들은 지금도 그때의 추억을 되뇌곤 한다. 그때 배를 타고 들어가야 했던 선유도는 이제 육지와 다리로 연결되어 있어 자동차로 갈 수 있다. 2017년에 완공된 고군산대교가 신시도와 무녀도, 선유도, 장자도를 잇는 연결도로가 된 것이다. 군산의 고군산군도는 ‘군산시 옥도면이 관할하는 섬의 무리’로 선유도, 산시도, 무녀도, 장자도, 야미도, 대장도 등 16개의 유인도와 47개의 무인도로 구성되어 있다. 섬을 잇는 다리가 놓였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 나는 고군산군도를 가보고 싶었다. 특히 대장도의 대장봉에 올라가 보고 싶었다. 그곳에서는 고군산군도의 장관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곳이라 했다.

11시 반쯤 새만금방조제에 이르렀다. 바람이 거세게 불었다. 바다는 파도가 거칠었다. 흔한 표현대로 포효하듯 했다. 언젠가 들었던 기억이 있다. 새만금은 ‘로운 경과 (김)제’를 줄인 말이라고. 예로부터 만경과 김제는 곡창지대로 유명한 곳이었다. 그래서 방조제를 만들어 그와 같은 비옥한 농토를 만든다는 의미를 담으려고 한 모양이었다. 신시도, 무녀도, 선유도, 장자도를 지나 대장도에 도착했다. 안내판을 보니 장자도는 힘이 센 장사가 나왔다고 해서 장자도라는 이름이 붙었다는데 일출과 일몰을 다 볼 수 있는 아름다운 섬이라 했다. 섬이면 으레 그렇듯이 해산물 식당이 많았다. 또 특이한 것이 호떡집이 많은 것이었다. 좁은 동네 곳곳이 호떡집이었다. 이 섬과 호떡이 어떤 인연이 있는지 모르겠다. 여기저기 식당을 기웃거리다 (짬뽕을 잘한다고 광고한) 중국집에 들어갔다. 여기까지 와서 중국집이라니, 하고 생각하기도 했지만 맛은 기대 이상이었다. 대장봉으로 오르는 길은 등산로와 계단데크 길이 있어 각각 30분 내외면 도달할 수 있다. 우리는 등산로로 올랐다가 내려올 때는 계단데크를 이용했다. 대장봉 정상은 142.8m로 낮지만 그곳에서 내려다보는 고군산군도의 풍경은 아름답다. 저 멀리로 우리가 지나온 다리들이 그림처럼 걸려 있다. 구름 사이로 쏟아지는 햇빛이 바다를 시시각각 다른 풍경으로 변모하게 한다. 산재한 섬들은 제각기 독특한 모습으로 제 고유한 역할을 하는 것 같다. 더 이상 섣부른 비유로 절경을 표현하는 것보다는 사진 한두 장으로 대체하는 일이 옳을 듯하다. 계단데크는 길고 경사가 매우 가파르다. 그렇지만 계단데크 길을 이용하면 할매바위도 볼 수 있고 어화대漁火臺도 볼 수 있어 꼭 이 길을 거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장자할매바위는 마치 ‘여자가 애기를 업고 밥상을 차려 들고 나오는 형상‘이다. 할매바위에는 전설이 있다. 안내문에 따르면 ’그 옛날 장자할머니는 장자할아버지가 글공부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전념을 다했다. 장자할머니가 고생한 보람이 있었는지 할아버지는 과거에 급제해 집으로 돌아온다. 혹여 배고플까 밥상을 차려 들고 마중을 나가던 할머니는 할아버지 뒤에 있는 소첩을 보고 기가 막혀 몸을 돌려버렸는데 서운한 마음에 그대로 굳어져 바위가 되었다. 그러자 이상하게도 할아버지와 함께 따라온 무리들도 굳어져 바위가 돼버렸다. 그런데 사실 할머니가 본 소첩은 여인이 아니라 할아버지가 서울서 데려온 역졸이었다는데 아직도 할머니는 화가 풀리지 않았는지 여전히 바위로 남아 있다’는 이야기다. 할매바위에서 조금 더 내려오면 어화대가 있다. 어화漁火란 장자도 앞바다에서 밤에 조업하는 어선들의 불꽃을 이르는 말이라고 한다. 과거에 이곳에서 많이 나던 조기를 잡기 위해 수백 척의 고깃배들이 밤에 불을 켜고 작업하면 주변의 바다는 온통 불빛에 일렁거려 장관을 이루었다고 한다. 어화는 고군산군도 선유 8경의 하나로 꼽는다. 오래전 여름휴가 때 제주에서 어화 풍경을 본 적이 있는데 바다 한가운데 대낮처럼 불을 밝힌 배들의 풍경은 장관이었다. 어화란 말이 풍기는 고풍스러움도 인상적이다.       



돌아오는 길은 내내 딸아이가 운전했다. 십수 년 동안 장롱 면허였던 딸은 최근 한두 달 집중 훈련을 한 뒤로 운전에 재미를 붙였는지 어지간한 길이면 제가 운전하겠다고 한단다. 아직 커브 길에 대한 대처가 불안해 보였지만 제법 침착한 모습이었다. 고속도로와 시내 운전도 무난하고 주차도 무리가 없어 보였다. 사위 말로는 요즘은 옆좌석에서 꾸벅꾸벅 졸기도 하고 핸드폰도 보는 호사를 누린다고 했다. 오랜만에 딸네 집에 온 아빠라고 저녁상이 푸짐했다. 영덕에서 주문했다는 홍게 요리에 조개탕, 비빔국수에 후식까지 포식을 했다. 오후 늦게 배달된다던 홍게가 집을 비운 사이 너무 일찍 배달되어 저으기 걱정했으나 돌아와서 열어 보니 아직도 살아서 움직이고 있었다. 역까지 바래다준 딸 내외와 작별하고 열차가 움직일 때 ‘그래, 역시 딸이 최고야!’ 하는 생각으로 기분이 흐뭇했다.      


(표지 사진은 대장봉 정상에서 바라본 고군산군도

풍경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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