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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동몬 May 17. 2023

40대에 대기업 부사장이 된 그의 남다른 점

확실히 남들과는 다르더라구요

앞선 이야기


앞선 이야기에선 주로 부사장님, 팀장님과 함께 같은 집에서 어떻게 살았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힘들고 고생한 이야기들만 가득해 마치 나를 너무 부려먹는다고 느낀 분들도 있겠지만 실제로 부사장님은 나를 잘 챙겨주셨다. 누군가는 그런 생활을 한 것에 대해 미쳤다고 생각하겠지만(그때도 직원들이 나를 안타까워 하긴 했지만) 나는 그렇게 느끼지 않았다.


물론 힘들었지만 부사장님 덕분에 내가 이 좋은 도시, 이 좋은 회사에서 일할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했기에 불만보다는 감사함이 컸다. 또, 부사장님에게서 배울 점도 정말 많았다.


부사장님은 좀 남 달랐다.


40대 후반이었던 부사장님은 한국에서 알아주는 회사의 임원이었고 중국으로 넘어와 '부사장'이라는 직함을 달았다는 건 분명히 남다른 점이 있었기 때문에 이 자리까지 왔다고 생각한다. 일을 미친 듯이 하는 워커홀릭이기도 했지만 살짝 남다른 부분이 있었다. 이걸 정확히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남다른 부분'이라고 밖에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다. (나쁘게 이야기하면 음... 상상에 맡기겠슴다)


나는 부사장님의 통역 겸 비서였기에 업무적인 부분에서의 그분의 행동, 말씀 하나하나를 바로 옆에서 지켜볼 수 있었고 한 집에서 함께 살았으니 그분의 생활까지 엿볼 수 있었다.



1. 독서광

부사장님의 방과 사무실은 책이 가득했다. 가방에 책을 꼭 두 권씩 들고 다니셨고 출장을 가면 비행기나 이동할 때 항상 책을 꺼내보셨다. 그리고 출장 기간 동안 그 책을 다 읽으셨다. 책을 통해 자신을 업그레이드해간다고 생각하셨다. 성공한 사람들은 다독가들이 많다고 했는데 부사장님이 정말 딱 그랬다.


부사장님께서 신입사원이었을 때 꽤나 소심(?) 했다고 한다.

자기소개를 하라고 했는데 너무 떨려서 말을 제대로 못 할 정도였다고 한다. 그랬던 그가 자신의 그런 부분을 타파하기 위해 고민하던 중 한 번은 지하철 안에서


제가 너무 부끄러움을 많이 타고 남들 앞에서 이야기하는 것이 어려워
이 자리를 빌려 용기를 내어 보려 합니다!



라며 큰 소리로 이야기했다고 한다.

사람들이 놀래서 그를 쳐다보았는데 그의 이야기가 끝나자 많은 이들이 박수를 쳐주었고 몇몇 사람들은 힘내라며 응원해주었다고 한다. 그때부터 많은 것이 변했다고 한다.


부사장님은 책을 통해 배운 내용들을 업무와 연관시켜 실행하려고 노력했다.

또 책에서 배운 내용들은 메모해 두었다가 회의 때 직원들과 공유했다. 좋은 내용들은 직원들도 알아야 함께 성장한다고 생각하셨다.


나는 항상 부사장님께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런 마음을 전하고자 한국에 다녀오면 부사장님이 읽으실 만한 신간도서를 세 권씩 사서(그 이상은 무겁...) 드리곤 했다.


2. 밥의 힘

당시 40대라는 젊은 나이에 대기업 부사장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으려면 그 정도의 에너지는 있어야 하나 싶을 정도로 에너지가 넘쳤다. 20대인 나보다 에너지가 넘치고 체력이(운동을 열심히 하지는 않으셨는데... 흠) 좋았다. 함께 지내본 결과 그 에너지의 비결은 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부사장님은 무슨 일이 있어도 식사를 거르는 일은 없었다. 

아침식사는 꼭 챙겨드셨고 특히 한식을 좋아하셨다. 이탈리아나 영국 같은 유럽이나 해외출장을 가더라도 꼭 한 번은 한국식당에서 식사를 했다. 그리고 출장을 가면 호텔에서 항상 오전 6시에 조식을 함께 먹어야 했다. 전날 술이 아무리 취해도 다음날 6시에 멀쩡히 조식을 먹으시는 모습에 놀라기도 했다.


초기에 부사장님이 회사에서 한 일은 모든 부서 직원들과 식사를 하는 것이었다. 

영업팀, 마케팅팀, 인사팀 등 모든 부서 사람들과 점심식사를 했고 나는 통역으로써 따라갔다.(직원들이 전부 중국인인지라...) 사실 나는 부사장님이 중국인 직원들과 점심을 먹으러 갈 때가 가장 힘들었다. 밥 먹으면서 계속 말씀을 하시니 한 숟가락 먹으려다 내려놓고, 먹으려다 내려놓고를 반복했기 때문이다. 통역하면서 밥을 제대로 먹은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그래도 뭐 어쩌겠나 그게 내 일인데. (ㅠㅠ)


식사를 하면서 업무적인 일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하고 자신의 경험이나 농담으로 그들을 재밌게 해 주었다. (사실 가끔은 이해되지 않는 개그도 하셨다... 그걸 통역하는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아십니까 여러분!!) 카리스마 있고 말에 힘이 있는 분이었지만 그런 자리에서는 직원들을 편하게 해 주었다. 남자직원들끼리 있을 때는 가끔 야한 농담도 했는데 직원들이 굉장히 재밌어했다.(통역하는 나는 곤란했지만ㅎㅎ) 그들은 한 번도 이런 상사를 본 적이 없다는 듯, 부사장님과 함께 하는 시간을 즐거워했다. 부사장님과 밥을 먹고 나면 그들은 부사장님에 대한 호감도가 높아졌다.


나는 그때 밥을 함께 먹는다는 것이 인간관계에 얼마나 큰 영향이 있는지를 알게 되었다.

훗날 부사장님이 했던 말씀이 기억난다.


돌아가신 아버지께서 살아생전에 '반드시 밥은 꼭 네가 사라'라고 하셨다.


누군가와 밥을 먹는다면 '밥값은 네가 내라'라고 아버지가 말씀하셨는데 그 이유는


네가 낸 밥값은 너에게 10배, 100배로 돌아온다.


라고 말씀하셨다고 한다. 부사장님은 그런 아버지의 말씀을 깊이 새기고 누군가를 알게 되면 꼭 함께 밥을 먹으려고 했고 밥값은 본인이 계산하셨다.


3. 적절한 보상

부사장님은 선물이나 어떤 일에 대한 합당한 보상을 항상 적절하게 해 주었다.


직원들이 밤늦은 시간까지 회식을 하거나 하면 꼭 택시비를 사비로 챙겨주셨다. 

일을 열심히 잘하는 직원들은 고급스러운 식당에 가족까지 불러 대접했다. 그리고 가족들이 보는 앞에서 그 직원에 대한 칭찬을 많이 했다. 그 직원들의 월급과 진급을 시켜주는 건 말할 것도 없었다. 그러니 직원들이 열심히 할 수밖에 없고 믿고 따를 수밖에 없었다.


회사직원들은 물론이고 사무실을 청소하는 아주머니나 운전기사에게도 선물을(혹은 현금) 주었다. 우리가 일찍 출근하기에 사무실에서 일을 하고 있으면 아주머니가 청소를 하는데 부사장님은 가끔 건강식품이나 꽤나 좋은 것들을 선물하기도 했다.


운전기사도 부사장님이 워낙 아침 일찍 출근하고 저녁 늦게 퇴근하여 주말도 없이 일하다 보니 정말 고생이 많았는데(와이프가 얼마나 싫어했을지 상상이...) 그 어떤 비싼 식당에 가더라도 기사도 함께 먹자고 했다. 그리고 그의 가족이 먹을 음식까지 포장해 주셨고 고생한다 싶으면 현금까지 꽤 많이 주시곤 했다. 운전기사는 속된 말로 좀 성깔 있었는데(나와는 정말 잘 지냈다) 부사장님 앞에서는 순한 양이 되었다.


거기에 한국에서 우리 회사로 출장을 오거나 회사에 방문하는 업체 사람들에게도 돌아갈 때는 꼭 양손 무겁게 선물을 줘서 보냈다. 나와 팀장님에게도 해외 출장을 다녀오면 가끔 선물을 사 오기도 하셨다.


이 모든 것들은 평판이 되었고 청소하시는 아주머니조차 한국인 부사장님은 좋은 사람이라며 엄지 손가락을 추켜올릴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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