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동동몬 May 16. 2023

군대 보다 힘든 회사의 합숙생활

저보다 더 빡쎄게 회사 생활 해보신 분?

이전 이야기


입사 첫날, 회사에 출근했을 때는 아무도 없었다.


7시 반 밖에 안된 시간이니 누가 출근했으랴.

팀장님은 나를 데리고 사무실 구경을 시켜줬다. 사무실은 꽤 좋았다. 33층 건물에 우리는 고층에 있는 두개의 층을 사용했고 바로 앞에 바다와 작은 섬이 보이는 곳이었으며 이 도시에서 가장 중심가였다. 책상은 크고 넓었으며 특히 우리 부서는 넓은 공간을 사용해서 더 널찍한 느낌이었다. 회사 안에는 당구대도 있었는데 직원들과 가끔 당구를 치곤 했다.


2층 스타벅스에서 찍은 사진


8시부터 직원들이 조금씩 출근하기 시작했고 8시 반에 팀장 회의가 열렸다.

9시까지 출근이었지만 부사장님은 팀장 미팅을 매일 아침 8시반 부터 했다. 그날은 내가 첫 직장인으로써 데뷔하는 날이었고 중국어로 내 소개를 유창하게 했다. (훗 이쯤이야...라고 생각했지만 나의 활약은 거기까지였다 ㅠㅠ)  그 뒤부터 부사장님의 말씀이 시작되었다. 나는 부사장님의 말씀을 중국어로 통역하고 직원들의 보고 내용을 한국어로 통역해야 했는데 도무지 무슨 말인지 하나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중국어에는 외래어가 거의 없다.

전문용어도 순 중국어로 사용한다. 이렇다 보니 중국인조차 전문용어를 못 알아듣는 경우도 있는데 갓 대학 졸업한 내가 알아들을 리가 없었다. 더군다나 업계에 대한 경험과 기초지식이 전혀 없다 보니 한국어로 하는 말도 이해가 되지 않았고 한국 전문용어는 외래어가 많다보니 정말 대환장 파티였다. 머리 속은 하얘지고 눈앞이 캄캄했다. 한국에서 중국어 잘한다고 뽑아온 애가 통역을 제대로 못하고 땀만 뻘뻘 흘리고 있었다.


학교에서 항상 우수한 성적에 매년 장학금까지 받았던 나였다.

그러나 첫 번째 회의시간에 벙어리가 되어버렸다. 다행히 조선족 직원들이 있어 그들이 통역을 도와줬고 나는 그들에게서 전문용어들을 번역한 단어집을 하나 얻어 퇴근하여 밤 늦게까지 공부를 하곤 했다. 모든 것이 처음이었고 낯설었다. 그러나 나는 빨리 적응해야했다.




부사장님은 엄청난 워커홀릭이셨다.

출근시간은 이른데 퇴근시간은 늦었다. 7시 반에 회사에 도착하여 업무를 시작하고 항상 밤 10시에 퇴근했다. 정말 하루도 빠짐없이 밤 10시에 퇴근했다. 집에 가면 거의 11시였다. 가끔 6시, 정시에 퇴근하는 날도 있었다. 그땐 항상 손님접대가 있었는데 마치는 시간은 대부분 10시였고 집에 오면 대부분이 11시였다. 이러나 저러나 집 도착시간은 밤 11시였다.


입사 후 첫 번째 주말, 토요일 오전에 좀 늦게까지 쉬고 싶어 7시 반이 넘어서까지 방에서 나가지 않고 있었다. 그랬더니 부사장님이


방에서 나와라.


나와 팀장님은 방에서 나왔고 아침식사를 하자고 하시길래 아침을 준비했다.

그 뒤의 일정은 평일과 같았다. 우리는 9시까지 출근했고 평소처럼 회사에서 일했다. 나는 그날만 그럴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매주 주말, 심지어 공휴일까지 모두 출근했다. 그나마 주말, 공휴일은 평소보다 출근시간이 좀 늦어진 오전 7시 30분이 아닌 9시였다. (24시간을 직장상사와 붙어있고 365일 다 출근한다고 생각해보십시오 여러분…)


그래도 주말이나 휴일은 퇴근을 조금 일찍 했다.

오후 4시쯤 되면 퇴근했고 남자 셋이서 사우나나 마사지를 받으러 가기도 했다. (운전기사는 무슨 죄냐고 ㅋㅋㅋ)


나는 막내였기에 모든 집안일을 도맡아 했다.

아침식사, 청소, 설거지, 빨래. 내 것뿐만 아니라 두 분의 빨래까지(빨래 3인분이요~) 모두 다 했다. 빨래는 세탁기를 돌리기만 하면 끝이 아니라 털고 널고 개고 옷장에 까지 넣어야 한다. 속옷은 말할 것도 없다. 내가 막내일(?)을 하는 사이 두 분은 주로 바둑을 두시거나 각자의 시간을 보냈다. (가끔 팀장님이 청소를 도와주셨다) 누가 뭘 하라고 한건 아니지만 우리는 각자의 역할이 있었다.


세 명 분의 빨래다 보니 양이 엄청 났다.

우리 세 명 다 그 날 입은 옷은 무조건 그날 빨았다.(깔끔한 남좌~) 그렇다면 적어도 티셔츠, 바지, 각자의 속옷과 양말만 해도 12벌이다. 거기에 아침, 저녁으로 샤워를 하니 수건도 6장이다. 그런데 세탁기는 조그만한 것이었다. 이러니 하루에 두번은 빨래를 돌려야 했다. 만약 셋이서 출장이라도 같이 갔다 온 날이면 빨래양이  정말 어마어마했다.

보이십니까, 이 어마어마한 빨래들이

빨래에 관한 에피소드도 있다.


어느 날 직원 한 명이 나에게


세 명한테서 같은 냄새가 나.
쉰내


우리 셋은 전혀 모르고 있었는데 옆에 있던 다른 직원들도 본인도 그렇게 느꼈단다.

나는 항상 빨래를 밤에 돌리거나 아침에 돌려놓고 다음날 아침이나 퇴근 후에 널었는데 날씨가 덥고 세탁기 안이 습하다 보니 냄새가 난 것이었다. 나름 깨끗하게 산다고 생각했는데 충격이었다(띠로리...) 나는 그날 이후로 무조건 세탁기는 밤에 돌리고,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널고 자는 버릇이 생겼다. (지금도 그런다;) 그러니 나의 취침시간은 더 늦어졌다.


군대와 다를 게 없는 생활이었다.

아니, 오히려 군대보다 더 힘들었으면 힘들었다. 군대는 밤 9시가 되면 잔다. 주말에 그나마 쉰다. 여기서는 평일도 주말도 일했고 두 분이 중국어를 전혀 못하셨기에 나는 그들의 입과 귀가 되어야 했다. 그래서 항상 붙어 다녔고 나의 개인적인 시간은 전혀 없었다. 함께 살았기에 프라이버시도 없었다. 오로지 일만 했다.


그러나 나와 팀장님 둘 다 (그다지) 불만을 가지지는 않았다.

물론 힘들었지만 일을 하러 중국 땅에 넘어온 것이었고 우리는 어쩌면 용병이자 외국인 노동자이기에 성과를 내지 않으면 필요 없는 존재였다. 부사장님은 대기업에 온 첫 외국인 임원이었기에 그 압박감은 더욱 컸을 것이다. 어떻게든 성과를 내야 했고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우리는 고군부투하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다음 이야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